6. 제2차 북미 정상회담

파국이다

by 아나스타시아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한미 정상회담, 1차 정상회담까지 순풍에 돛 단 듯 흐르던 남·북·미 관계가 급작스럽게 틀어진 지난 2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제 드디어 막바지구나 하며 점심을 먹다가 다 같이 포크를 집어던졌던 그 날. 2019년 2월의 마지막 날.


한국언론진흥재단 분들이 선발대로 출발 후, 곧 나도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준비를 하노이행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국제미디어센터 안에 별도로 한국미디어센터를 구축했다. (일반적으로 국제미디어센터[IMC], 특히 타국가의 양자회담을 위해 IMC가 제3 국에 생기는 것도 이례적일뿐더러, IMC 안에 특정 국가의 미디어센터가 '입주'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음향, 조명, 네트워크 구축, Press Pass발급, 전문가 토론회 토론자 섭외 및 프로토콜, 인터뷰 관리, 한국 생방송을 볼 수 있는 TV까지 프레스센터 운영을 위한 모든 것들의 준비가 차근차근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모든 작업들이 수월하게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처음 며칠은 Press Pass를 주지 않아 개구멍으로 출입을 해야 하기도 했고, 오기로 했던 연사는 비행편 취소를 핑계로 FOX와 인터뷰를 동시에 잡아두고 저울질을 하다가 나타나지 않는 몰상식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시작 전부터 김정은은 베트남으로 넘어오던 열차가 갑자기 운행을 멈추고 버티기도 하고, 김정은의 숙소를 프레스센터로 쓰겠다고 버티고 있던 백악관 출입기자들이 호텔에서 쫓겨나 IMC로 대거 몰려오면서 한국프레스 센터도 본의치 않게 문전성시를 이루어 정신이 없기도 했다.


2월 28일 아침부터 사실 프레스센터에는 수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갑자기 9시경 IMC의 모든 스크린에는 오후 2시에 열릴 트럼프의 브리핑에 비 백악관 기자 100명을 선착순으로 접수받겠다는 문구가 떴다. 순식간에 뜬 공지와 주소에 바쁘게 기자들은 접수를 하기 시작했다. 국내 기자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접속할 수 있도록 한국프레스센터 푸시에 링크를 띄우고 접수창이 닫히자마자 상황 파악에 들어갔다. 백악관 브리핑에 비 출입기자를 들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데다 협상 결과도 없을 두 시에 브리핑이라니. 거기다 트럼프 숙소로 출발하는 100명의 기자를 태운 버스의 출발을 위한 집합 시간은 오전 11시. 상황이 수상해도 너무 수상했다.


그 순간을 복기해보면 결국 트럼프는 처음부터 이 회담을 엎을 요량이었던 것이다.


11시. 기자들을 태운 버스를 떠나보내고, 오후 두 시에 있을 전문가 패널토론 (참고로 당시 공식 발표된 일정은 오찬 후 오후 4시 회담 결과 발표가 예정돼있었다.)을 얼추 준비해두고 점심식사를 하고 있던 중 청천벽력과 같은 속보가 떴다.


회담은커녕 오찬조차 결렬되고 김정은과 트럼프는 제 갈길을 가버렸다는 것이다. 급히 먹던 수저를 던지고 프레스센터로 복귀를 했다. 속보가 뜬 열두 시 반부터 두 시까지의 프레스센터 공기는 삼엄하고 무겁고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일을 관두는 순간까지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던 프레스센터의 광경이었다.


14시 15분 IMC는 고요한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오후 2시 15분, 트럼프의 공식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작 그 순간 IMC를 가득 메운 건 베트남어로 더빙된 트럼프의 목소리 었다. 그 순간부터 전속력으로 베트남 방송 조정실로 달려갔다. 지금 당장 사운드를 바꿔야 한다고 부탁하고 조정 확인을 완료했다. (베트남어가 나오는 순간 전 세계 언어로 어떤 욕을 쓰는지 배울 수 있는 뜻깊은 기회도 가졌다.)


1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됐던 싱가포르와는 달리 국제행사 경험이 현저히 낮아 열악한 환경을 자랑하는 하노이에서 열흘간 준비했던 한국프레스센터의 대부분의 것들이 수포로 돌아갔다. 트럼프의 전용기가 문을 닫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까지도 믿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부터 날아온 한국에 머무는 특파원들은 마주치자마자 나에게 F로 시작하는 단어와 함께 허망하다 못해 화가 나는 상황을 토로했다.


그렇게 아무런 소득도 어처구니도 없는 행사를 마무리짓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무엇을 위하여 달린 걸까?라는 허무함에 젖어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또다시 정신 승리를 하며 한국땅을 밟았다.


이런 순간 조차 겪으며 배워나갈 수 있는 이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무쓸모 하지만은 않으니 그런 거겠지?

라고 수십 번을 되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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