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앞으로 다시는 ‘내 마음이 상할 수는 있을지언정 몸까지 해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게 나의 새로운 구직 기준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일을 관두기 직전 순간까지도 나는 일을 너무 사랑했고,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원치 않는 이별을 일과 했던터라 ‘내 한 몸 부서져라 일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쩌면 일을 하면서 내 몸이 상해가면서 까지도 일을 해내는 나 자신을 되려 조금은 뿌듯해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며 살았다.
퇴사 직전 프랑스 주간지 Le Point의 홍콩 특파원이 한국의 방문취재를 원한다는 급한 연락을 프랑스 대사관과 문화원에서 받게 되었다.
3월, 코로나-19는 전 세계에 팬데믹을 선언케 하고 항공편은 계속해서 갑자기 취소가 되는 그 어느 해의 봄보다 차갑게 얼어붙던 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당장 나흘 안에 한국에 들어와 취재를 원하니 취재원을 섭외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평소라면 적어도 2주는 되어야 인터뷰이도 질의서를 검토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취재가 어려운 곳은 대신 공문을 보내어 취재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며, 죄송하지만 정말 에센셜한 취재가 아니면 기자가 코디네이터와 함께 직접 취재를 하라 안내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소극행정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소극행정이 아닌 ‘현실행정’이다.)
하지만 이 기자는 달랐다. 한국의 방역시스템과 함께 시민의식을 함께 다루려는 의지가 확고한 기자였다. 그런 기자의 요청을 차마 뿌리칠 수는 없었다. 드라이브스루 취재지를 섭외하고, 교수님을 섭외하고, 복지부에서 받을 수 있는 서면 인터뷰 자료는 모두 받았다.
병원을 섭외하고 그들이 직접 자비로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이 과정을 취재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모든 취재가 끝난 후 출국을 하루 앞둔 날. 정말 고마웠다며 함께 미팅을 했다.
나 역시도 KTV의 외신의 한국 방역 취재 모습을 담고 싶다는 요청에 국내외 순환 홍보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판단되어 그들의 취재에 KTV팀이 하루 동안 동행하는 그들의 배려를 받았기에 취재팀도, 나도 모두가 짧은 10분이었지만 서로의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나누고, 다음날 있을 코로나-19 관련 정세균 총리 외신기자간담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이었지만 그 기자들의 고마움이 나에게 힘을 주었고 나의 노동이 나를 사람답게 만드는 것 같아 더욱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취재진의 코디네이터 (한때 나의 인턴 실습생으로 내가 대사관은 물론 기자, 문화원에도 강력하게 추천을 했다.)가 새벽부터 전화가 왔다. 취재진중 한 명이 무증상 확진자라 본인은 역학조사과정에서 검사를 받으러 가고 있고, 나 역시 미리 검사를 받는 게 좋겠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일단 회사로 나가 혹시 모를 격리를 대비해 모든 자료를 옮기고 팀장님과 과장님께 보고를 드렸다. 그리고 나는 그토록 열심히 준비했던 총리 브리핑은 현장지원도 하지 못한 채 지역 보건소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음성 판정이 나오기까지 무섭진 않았다. 오히려 내 판정 결과를 자꾸만 물어대는 동료직원에게 오히려 화가 났다.
'당신 담당지역 매체인 프랑스 매체 지원을 내가 하다가 걸렸는데, 지금 조카 만난 게 걱정되니 결과 나오면 본인부터 바로 알려달라는 말이 나오나요?'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렇게 음성판정 후에도 사무실 직원들의 반대로 강제 재택격리를 당하며 기다리가 드디어 마주한보도 내용은 성공적이었다. '국뽕'에 취해서가 아니라 정말 '시민'들의 협조적인 모습과 시스템, 특히 유럽 국가에서 개인 사생활 침해로 우려가 많았던 역학조사까지도 너무나 훌륭하게 전달을 해주었다. "K-방역"따위의 오글거리는 말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며칠간 겪었던 마음고생은 사라지고 얼른 기사 원본만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와중에 선물과 같이 과장님은 내신에 이렇게 고생한 취재, 보도 한 번 해주십사 억지로 격리를 당하고 있는 내게 링크를 보내주셨다.
이번 정부에 너무 시달렸던 나는 국뽕 따윈 없다. 그냥 성실하고 고장 없는 톱니바퀴가 되어 이런 소식들을 전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아무도 모르는 숨은 곳의 불가촉천민이지만 나의 작은 힘이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것. 일과 사랑에 빠지는 즐거움은 이토록 풍성한 기쁨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