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첫 기획 데뷔작
입사 1년 동안은 주어진 일만 따라가기도 벅찼었다. 사수가 기획해둔 프로그램들을 사수의 급한 출장으로 대신 마무리를 겨우 짓는 정도가 내 업무 수준의 한계였다. '창경궁 달빛 기행 취재', '제주 해녀 유네스코 등재 기획 프레스투어' 모두 사수가 기획을 해둔 상태에서 급하게 해외출장이 잡히면 구체화시키고 실무를 보는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공부해서 남줄 일은 없다고 했던가? 입사 후 1년의 반을 사수 없이 일을 해내며 겪은 공부들은 나도 모르게 나만의 방식으로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어렸을 적 나름 6년 동안 바둑을 배우며 자라 바둑계 소식에 꽤나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 건이야 말로 한국 바둑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팀장님께 동양의 게임인 바둑에서 한국의 이세돌이 뽑혔다는 것은 강국이라는 이야기가 아니겠냐 말씀드리자. 팀장님 역시 "빨리 구글에 연락해"라고 하셨다.
이제부턴 내 기획과 협상에 모든 게 달려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구글의 콧대는 높았다. 구닥다리 정부부처에서 하는 연락은 잘 받지도 않았다. 몇 번의 끈질긴 연락 끝에 홍보팀장과 연락이 닿았을 땐 역시나 상주 특파원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저희는 구글 자체 빅데이터를 통해서 홍보효과가 가장 클만한 내외신들은 이미 섭외를 마쳐서 취재 등록이 어려울 것 같네요."라며 단번에 거절을 당했다.
이세돌이 'AI 알파고'를 이겨야 했다면, 나는 '빅데이터'를 이길 '논리'의 급소를 찾아야 했다.
"그 빅데이터가 리스트업 한 매체 중에 메이저 매체도 모두 등록이 되어있나요? 특파원까지 한국에 보낼 정도의 매체면 해당국에서는 주요 매체이고 한국을 주요한 보도 국가 중 하나로 여기는 걸 텐데, 유럽 기자들의 Press Pass 발급 문의가 폭주하고 있어서요. 국내 상주 특파원만 300명인데 이 분들을 통한 홍보효과나 향후 국내 구글 홍보에도 필요하실 텐데 꼭 한 번 검토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 대국을 며칠 앞두지 않은 상황에서 구글 측의 답변이 왔다.
"40명 제한으로 추가 접수받겠습니다."
나이스. 나의 수가 먹혀들었다. 바둑에 그나마 관심이 있을만한 국가만 노렸던 구글의 데이터를 이겼다.
그다음은 한국기원이었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건 결국 구글의 기술력이 아닌 한국 바둑의 우수성이었다. 특히 매번 이세돌이 유달리 약세를 보이는 중국의 프로기사 커제가 뭐라고 할지라도, 대전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라도 한국 바둑 인프라와 우수성은 동북아 3국 중 그 어디에도 밀리지 않는다고, IBM의 딥블루 패배 이후로 퇴보의 길을 걸은 체스처럼 가벼운 문화가 아님을 보여주고 싶었다. (참고로 그렇게 자신 있다고 하시던 커제도 알파고에게 탈탈 털렸고, 한국의 바둑 열풍은 여전히 건재하다.)
한국기원과의 협의를 통해 한국기원 총재 인터뷰, 한국기원 방문 취재, CCTV 생방송 체결까지 모든 취재지원 프로그램을 짰다. 그 20년 전 딥 블루전을 취재했던 내신 기자님과 프랑스 기자가 서로가 서로를 인터뷰할 수 있도록 현장 리에종을 하기도 했다.
그리 대단하지 않을지 몰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한 올 한 올 보도를 짜내려 가고 있었다.
팀장님의 서포팅과 선구안으로 빠르게 움직여서 해냈다는 뿌듯함. 내 머릿속 디자인대로 떠지는 보도들.
대국이 이루어지는 기간 동안 단 하루도 피곤한 줄도, 힘든 줄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즐겁다!"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대국 3일째 장관님의 한국 바둑 홍보 지시가 내려왔다. 과장님은 신이 나서 "OO 씨! 우리는 버~얼써 했다고 자랑 따~악 하고 왔어!"
숨이 턱까지 차오는 순간 들이킨 한 모금의 물처럼 달콤했던 그 한 마디.
내 사랑을 가득 담은 스케치북의 첫 페이지는 즐거움이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