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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방황해도 괜찮아요

김 부장도 그렇게 성장한걸요

by 비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한국인의 삶의 목표를 20자 내외로 서술하시오”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같은 구절이다. 제목만 봤을 때는 부러울 것 없을 중년 아저씨가 무슨 할 말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나 원작 소설이 웹툰으로, 그리고 드라마로 제작된 건 한 번쯤 귀 기울여 볼 만한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논어>에서 공자는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10년 단위로 나이를 정의했다. 서른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된 이립(而立), 마흔은 주위에 미혹되지 않는 불혹(不惑), 그리고 쉰은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다 해서 지천명(知天命)이라고. 어릴 때는 그 나이에 이르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줄 알았다. 서른쯤 되면 번듯한 사회인으로서 성인 한 명의 구실을 하고, 마흔이 되면 웬만한 세상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쉰이 되면 인생의 지혜에 통달하는 삶. 이립과 불혹 사이에서 겨우 걸음마를 뗀 채 유혹으로부터 안전거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지금 보니, 공자의 삶을 거저먹으려고 했던 욕심이 지나쳤다.


드라마 초반의 김 부장 역시 지천명을 갓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불혹에도 못 미친 모습이다. 그의 악벽은 숨 쉬듯 남과 비교하는 것. 옆 팀 부장의 명품 가방에 질세라 아직 쓸만한 가방을 명품으로 바꾸고, 국산 세단으로 출퇴근하며 팀원의 외제차를 못마땅해한다. 연대생 아들에게는 서울대에 못 가서 아쉬운 마음을 감출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스펙트럼도 다양하게 이모저모를 남과 견주어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 보다 마무리로 서울에 자가 있는 대기업 25년 차 부장이 어디 쉬운 줄 알아? 하며 자존감을 채우는 게 그의 일상이다.


김 부장이 이렇게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어릴 때부터 잘난 형의 등쌀에 못 이겨 집에서 제대로 된 애정을 받지 못한 것. 5개짜리 바나나 한 송이를 사 온 날, 형은 세 개를 먼저 받고도 김 부장 것 하나를 더 먹었다. 왜 내 거를 먹냐며 화를 내는 김 부장에게 형은 따귀를, 엄마는 형이 먹을 수도 있지! 하는 야단만 쳤다. 부반장에 당선 돼서 기쁜 마음에 한달음에 집에 달려온 날에는 고작 부반장 된 거 가지고 자랑하는 거냐는 형의 핀잔이 돌아왔다. 이렇게 컸으니 어쩌겠나. 성취와 물질 만능주의 꼰대 대마왕 김 부장이 될 수밖에.


25년 대기업 근속의 대단한 우리 김 부장의 요원한 꿈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상무 승진. 임원은 달아봐야지 하는 마음은 애가 닳지만, 그게 그렇게 또 쉬울 리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사건 사고에, 관리직으로서는 사실 그다지 능력이 출중하지 못했던 김 부장은 상무 자리가 멀어져 가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발버둥을 쳤지만 결국 좌천 끝에 희망퇴직으로 회사 생활을 마무리한다. 여기까지만 했어도 좋았을 것을. 무슨 근거인지 모를 자신감으로, 김 부장은 자신의 재테크 감각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월 천 건물주를 꿈꾸지만 퇴직금은 날려 버리고 빚만 잔뜩 진 채 상가 매매 사기를 당한다. 돈은 남자가 벌어오는 거라며, 사랑하는 당신 고생 안 시킬 거라며 아내에게는 비밀로 한 채. 하지만 조금이라도 벌어 보려고 대리운전을 하다 공황발작으로 인해 교통사고가 나면서 가족도 모든 상황을 알게 된다.


도대체 어디가 끝일까 싶은 추락이었을 거다. 하도 미끄러지기만 해서, 이게 꿈은 아닐까 싶기도 했을 거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상가를 사지 말았어야 했나, 희망퇴직 하지 말고 버텼어야 했나,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했어야 했나. 그때는 그 선택들이 옳았다고 믿었는데. ‘대기업 25년 차 김 부장’으로서의 자신을 마주하며, 그는 지금의 상황이 모두 자신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남보다 나아야 한다고 항상 증명해야 했던 자존심. 이제는 그만 그 자존심을 내려놓자고, 그는 넉다운이 되어서야 두 손을 들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열심히 숨 가쁘게 달려온 스스로에게 너무 고생 많았다고 위로한다.


김 부장이 바닥을 쳤을 때, 그를 배신했던 전 상사는 다시 한번 복귀의 동아줄이 될지도 모를 제안을 한다. 데면데면했던 팀원들도 그를 찾아와 그 제안이 무엇이든 들어달라고 읍소한다. 자신들의 명운이 김 부장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그는 고민 끝에 거절한다. 내려놓았기 때문에. 그리고 예전 같았으면 내가 무슨 저런 일을 하냐며 무시했을 세차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잔뜩 힘주었던 머리도, 먼지 한 톨 없던 양복도 없이 그는 이제 힘 좀 빼고 걸어가자는 아내의 손을 잡고 맨발로 황톳길을 걷는다.


드라마 초반부의 김 부장은 등장한 지 단 5분 만에 밉상도 저런 밉상이 없을 것 같은 전형적인 직장 상사로 그려진다. 어디엔가 있을 법한, 내 상사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 가족에게도 권위적이고 자기 말은 항상 옳은 아버지, 남편으로서의 김 부장도 그다지 달갑지 않다. 드라마의 한 절반은 계속 왜 김 부장 아내가 김 부장이랑 결혼했을까, 도대체 뭐가 매력이었을까가 의문이었다.


하지만 김 부장 이야기가 울림을 주는 건, 어른의 성장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어른이라고 하면 뭐든 할 줄 알고, 웬만한 어려움은 노련하게 헤쳐나가는 경지에 다다른 사람 같다. 마흔이면 이제 좀 주변에 덜 흔들려야 하고, 쉰쯤 됐으면 삶의 이치에 통달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어른. 그러나 어른도 방황을 하기 마련이다.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마흔도 처음이고 쉰도 처음인데. 스무 살까지야 대학만 가면 될 것처럼 다들 이야기하는데 그 이후가 진짜 본 게임이라고 아무도 말을 안 해준다. 그러니 도리가 있나. 어른도 부딪혀 가는 수밖에.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지금까지처럼 목표만 바라보며 열심히 사는 건데, 언젠가 그렇게 사는 게 또 답이 아니라는 순간이 온다.


서럽게도, 사춘기 십 대에게 방황은 당연한 것이지만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어른에게 방황은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소리에 이어 ‘얼른 멘탈 잡고 극복해야 할 문제’ 정도로 치부된다. 하지만 공자도 나이에 붙이는 이름이 계속 바뀌어 간 것처럼, 삶은 변화의 연속이며 변화는 결코 잔잔할 수만은 없다. 그러니, 어른에게도 방황해도 괜찮다고 말해주자. 지금 이렇게 아프고 힘든 건 당신이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삶이 당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을 바꿔야, 앞으로 더 잘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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