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렌즈>에서 누굴 제일 좋아하세요?

저는 챈들러가 그렇게 멋있던데요

by 비안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는 말이 있다. 인생이란 태어나서(Birth) 죽음(Death)에 이르기까지 치킨, 아 아니 선택(Choice)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삶에 대한 수많은 철학적 정의 중 아마 반론의 여지가 거의 없는 말이 아닐까 싶다. 아침에 일어나서 뭘 입을지, 커피를 마실지 말지 하는 자잘한 선택부터 어떤 진로를 택할지, 어떤 사람과 결혼을 할지와 같은 중차대한 결정까지. 매 순간 우리는 무언가를 고르고 대신 나머지를 포기한다.


선택에는 집중이라는 말이 패키지로 따라붙는다. 선택과 집중. 결정을 했으면 거기에 최선을 다해 신경을 써야 하고, 내 선택이 최선이 되게끔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꾸 포기한 다른 옵션들에 기웃대다간 손에 쥐고 있던 것마저 놓쳐버리기 일쑤다. 우유부단하게 굴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된다는 경험을 다들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이런 선택과 집중이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단순히 기회비용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이 어려운 것을 넘어, 때로 선택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집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모를 때도 많다. 특히 인간관계처럼 복잡한 역학 관계의 맥락에서라면 그 난이도는 배가 된다. 한 달 만에 연인을 보는데 친구가 헤어졌다며 술 한 잔 하자고 전화를 걸어올 때, 상사와 유관 부서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게 되었을 때, 누군가 답이라도 알려주면 좋겠는 심정이다.


얼마 전 다시 미드 <프렌즈>를 정주행 했는데 여기에서 그 어려운 일을 너무 훌륭하게 해낸 에피소드가 있었다. 워낙 유명한 드라마라 다들 알겠지만 프렌즈는 뉴욕에 사는 남녀 6명의 이야기로, 주로 동네의 작은 카페와 모니카의 집이 이들의 아지트다. 특히 보라색 벽지와 큰 창의 모니카네 집은 이 친구들에게 추억의 장소라는 말로도 모자란, 이들의 역사 그 자체인 곳이다.


청춘 여섯 명이 함께 지내는데 사랑이 빠질 수 없고, 모니카는 친구 오빠인 챈들러와 친구에서 연인이 되고, 이후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다. 결혼을 하고 모니카 부부는 뉴욕 중심의 이 작은 아파트가 아닌 교외의 마당 딸린 집에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한다. 마침내 마음에 쏙 드는 집을 발견한 모니카와 챈들러는 매입을 앞두고 친구들에게 집을 알아보고 있다는 걸 들켜, 결국 이사 계획을 실토하게 된다. 나머지 친구들은 당연히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엄청나게 반발을 하고, 서운한 마음에 아이들도 여기에서 키울 수 있지 않느냐며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한다. 그때 마침 부동산 중개인으로부터 전화가 오고, 챈들러는 통화 끝에 제시한 금액이 적어 집을 살 수 없다는 소식을 친구들에게 전한다. 실망을 감출 수 없는 모니카에게 친구들은 위로를 전하면서도 이 아지트가 당분간은 변치 않으리라는 안도 속에 돌아갔다. 문이 닫히고 난 후, 챈들러는 실망해서 풀이 죽은 모니카에게 사실은 방금 거짓말이었다고, 집을 샀다고 싱글벙글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게 정말이냐며, 모니카가 뛸 듯이 기뻐하면서도 그에게 왜 거짓말을 했냐며 묻자, 챈들러는 이 기쁨을 온전히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고 답한다.


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내를 얼마나 사랑해야 저런 상황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최소 10년 지기 이상인 친구들이 잔뜩 흥분해서 화를 내는 건 챈들러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다. 하지만 일단 그들의 서운함은 뒤로하고 모니카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것.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순간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챈들러가 이 에피소드 하나로 내게는 프렌즈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이 되었다. 특히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을 해서 깊은 인간관계를 두려워하고 갈등을 싫어하던 챈들러가 이렇게까지 성장한 걸 보는 건 감동이었다.


인간관계에서의 선택과 집중이 어려운 이유는, 대개 선택되지 못한 이들로부터의 비난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네가 나한테, 우리한테 이럴 수 있어? 하는. 하지만 내가 앞으로 삶에서 누구와 함께 더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은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런 비난은 감수해야만 한다. 어떤 선택이든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상대도 나도 그로 인한 영향을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나를 정말 아끼는 사람이라면 결국 내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해 줄 거다. 물론 제대로 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게 있고. 반대로 생각해 보자. 누군가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해 주는, 챈들러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지. 좋은 선택을 하는 용기, 그리고 이어서 집중할 수 있는 책임감이 있다면 B에서 D로 가는 길이 마냥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내가 정말 원하는 삶에 좀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금 잘 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