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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잘 살고 있나요?

성우 클래스가 남긴 것

by 비안

지난 두 달간, 취미로 성우 클래스를 들었다. 소위 “노잼 시기”를 지나고 있던 차에 일상에 활력을 줄 만한 것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클래스를 발견하고 냉큼 신청했다. 간간히 목소리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혹시 알고 보니 내가 숨겨진 성우 인재? 하는 김칫국을 마시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향형 인간에게 연기는 버겁지만 목소리만 내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웬 걸, 몸풀기로 감정을 표현하는 스피드 퀴즈 게임을 시작하더니 매 수업 때 연기를 했다. 직장 상사에게 깨지는 수습사원, 질리도록 싸우는 연인, 재난 현장에서 도망치는 상황까지. 그리고 떠오른 말이 있었다. 어떤 일이 쉬워 보이면 그 사람이 잘하는 거라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땐 몰랐는데 배우들이 정말 연기를 잘하는 거였다.


이 클래스를 들으며 두 가지를 깨달았는데 하나는 연기란 단순히 예술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 연기는 막연히 배우가 어떤 예술적 감각으로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디테일을 얼마나 잘 살리는지가 기본이라는 것을 배웠다. 예를 들어 하루 종일 밥도 못 먹고 일만 하다가 이제 겨우 김밥 한 줄 처음 먹는 수습사원이 그 순간에도 상사에게 혼난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 당황스러움과 내가 이렇게까지 일을 못하나 하는 자괴감, 한편으로는 그래도 오늘 나의 노력을 조금은 알아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억울함과 서운함, 그리고 상사가 애초에 지시를 잘해줬어야 하는 것도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분노까지 다양한 감정이 몰아칠 거다. 이 보이지 않는 감정을 대사 한 줄 속에 목소리의 크기와 떨림, 그리고 몸짓으로 어떻게 녹여내는지가 재능의 영역이 아닐까 싶다. 막연히 소비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던 연기에 대해 이렇게 이해할 수 있구나 하는 걸 알고 나니, 연기와 극에 대한 해상도가 올라가는 느낌이다.


두 번째 깨달음은 스스로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이렇게 감정적이지 못한 사람이었나? 하는. 연기를 하며 분석을 한 다음 단계는 필요한 감정을 끌어오는 것이었는데 이게 너무 어려웠다. 어떻게 감정을 만들어서 진짜처럼 보이게 하지? 관객에게 진정성 있게 느껴지게 하려면 감정을 어떻게 써야 하지? 아마추어다 보니 개인적인 경험을 떠올리며 감정을 가져오려는데 뭐랄까, 저장고에 쌓여 있는 양질의 감정들이 얼마 없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렇게 텅 빈 삶을 살았나?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꽤 오랜 시간,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의미’였다. 나는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고 그렇기 때문에 내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고, 말 한마디 해도 가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받는 인풋은 분석하려고 했고, 나의 아웃풋은 정제하려고 했다. 어떤 경험에서든 항상 내가 얻을 수 있는 배움이 무엇인지 생각했고 심지어는 내 감정의 원인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파악하려 애썼다. 그래야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앞으로 더 바람직한 선택을 할 수 있으니까. 과거에 했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으니까. 나아가 거시적으로, 장기적으로 우상향 하는 삶의 궤적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런 삶의 태도는 무척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분석과 이해, 그리고 인사이트라는 키워드로 점철된 삶은 언젠가부터 진정성이 누락되어 있었다. 감정을 해체하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까지 이해하는 건 좋은데 반대로 어떤 일을 겪을 때 온전히 그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완전히 기뻐하지도 마음 깊이 슬퍼하거나 분노하지도 못했다. 마치 감정에 범퍼를 끼운 듯. 매사에 일희일비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했는데 부작용으로 감정의 밀도를 잃어버린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사는 게 왜 문제냐면, 다 떠나서 행복하지가 않다. 눈에 띄게 실질적인 문제는 없지만 어딘가 살아있지는 않다는 느낌, 고여 있는 듯한 느낌이 어쩌면 이런 사고방식 때문이 아니었다 싶다. 내 손에 쥐어진 건 48색 크레파스였는데 너무 밝은 색이나 너무 어두운 색들을 안 쓰겠다고 서랍에 넣어둔 꼴이니, 삶이 어느새 비슷한 색들로만 채워져 있는 거다.


해를 거듭해 가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제 나름 삶의 웬만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해답을 알았다고 생각을 해 왔다. 마치 시험에서 2점짜리 문제들은 거저먹고, 3점짜리들 중에서도 응용문제가 나오면 아 이거, 하면서 넘길 수 있게 된 경지처럼. 그런데 그렇다가도, 이따금씩 세상이 네가 아는 게 전부인 줄 알았지? 하며 판을 흔드는 듯한 순간들이 찾아온다. 지금처럼. 꼭 무슨 큰 문제가 있거나 엄청난 역경이 찾아와서가 아니라, 알던 대로, 쉽고 편한 공식처럼 여태까지 써 온 방법대로 살려니 영 이상한 곳을 붙들고 있는 느낌일 때. 그럼 정말이지 방법이 없다. 공책 가득 써내려 온 풀이 방식을 미련 없이 지워내고 내 방식이 정말 맞는지를 봐야 한다.


감정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도구처럼 다루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이 방식도, 결국 한계가 있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감정을 자유자재로 다뤄야 하는 연기를 하면서 진정성 있는 감정의 가치를 깨닫게 된 것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어쩌겠는가, 깎아내고 정제된 감정으로는 결국 연기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을. 언젠가 막은 내려지게 마련이니, 연극을 계속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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