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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15도, 봄의 15도

by 비안

벌써 다음 주면 올해의 마지막 달. 11월 마지막 주면 제법 겨울의 자락으로 들어오고도 남을 법 한데 쉽사리 추워지지 않은 날씨에 안도해야 할지 아쉬워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날들이다.

오늘도 영상 15도의 기온을 확인하고 코트를 입기에는 날이 너무 푹한가 - 아니, 밤이 되면 또 추워질 터. 후회하느니 외투를 들더라도 일단 가져가자 하며 올해의 첫 코트를 개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약속이 파한 뒤 발끝에 스며드는 추위에 코트 옷자락이 고마워졌다.

생각해 보면 온도라는 건 언제나 그랬다. 15도는 항상,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정도의 온도일 텐데. 겨울로 접어드는 시기의 15도와 봄을 맞이하는 날의 15도는 사뭇 달랐다. 지난주의, 아니 고작 어제의 기온과 다른 것이 더 쌀쌀하게, 혹은 더 따스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올 한 해의 삼백 하고도 예순 닷새 중 15도인 날들을 꼽았을 때, 각 일자에 느껴진 온기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눈앞에는 제법 화려한 파장이 보일지도 모른다.

사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어떤 날은 삶에서 유독 좋게, 혹은 더 안 좋게 기억되곤 한다. 그즈음 겪었던 다른 일 때문에 혹은 그 기간이 온통 좋지 않았던 시기였어서, 그 어떤 날 마저 색이 바랜 채 기억되는 거다. 사실은 오늘의 하루와 별 다를 게 없는 날일지도 모르는데.

한동안 삶이 내가 세운 모든 계획과 꿈을 보란 듯이 비웃는 것처럼 지나치던 시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Plan A와 B가. 그리고 이후의 많은 계획들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되뇌던 다짐은 어느새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냐는 분노 섞인 반문으로 이어지던 날들이었다. 삶은 한 번도 내게 이해를 구한 적이 없었는데 나 혼자 삶에게 작금의 사태에 대해 나를 납득시켜 보라며 악을 쓰던 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뭄에 콩 나듯 웃을 수 있었던 날들도 있었다. 대단한 일에 웃은 것도 아니었다. 문득 인터넷에서 본 글이 웃겨서. 처음 시켜 본 메뉴가 생각보다 맛있어서. 커튼을 젖혔는데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어쩌면 이렇게 웃을 수 있었던 날들은 더 많았을지도 모른다. 무심코 지나친 카페의 음악이 취향에 꼭 맞았을 수도 있고, 늘 작성하는 보고서에 마지막 문장이 꽤 잘 쓰였을 수도 있고. 손 닿는 대로 입은 오늘의 코디가 생각보다 잘 어울렸을 수도 있다. 내가 분노에 눈이 가려지지 않았다면 한 번씩은 더 웃고 지날 수 있었던 날들. 그리고 그런 날들을 놓치지 않았다면 터널 같았던 그 시간이 더 빨리 끝나지 않았을까 싶다. 출구를 향한 유도등이 되어.

물론 이것도 터널을 지나오고 한참을 달려서야 아 그 시간이 지났구나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돌아보니 끝이 있는 시간이었구나, 그 사이에 점처럼 희미하게나마 반짝이던 날도 간혹 있었구나 하며 반추해 볼 수 있는 거다. 그렇게 멀리서 본 작은 점들이, 사실 숨 쉴 구멍이었구나 깨닫게 됐다.

흔히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는 말을 사회생활의 격언처럼 많이 쓰는데 어쩌면 이건 우리 스스로를 위한 말일 수도 있다. 내 기분이 오늘을 집어삼키게 두지 말자. 코트 깃을 여미는 대로 봄옷을 꺼내는 대로, 어제에 견준 날이 아니라 오늘을 오늘로 대하자. 먼지가 덮이려거든 쓸어내 보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는 지나가리라는 생각으로. 혹시 또 모르지. 이렇게 모은 오늘이 내일을 어떻게 만들어 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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