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예민한 날에는

파고 들지 않기

by 비채

이상하게 예민한 날이 있다.

별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자꾸 가라앉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괜히 날카로워지는 날.

그럴 때면 나는 늘 먼저 나를 검열한다. 왜 또 이러지, 왜 이렇게 예민하지, 왜 이 정도도 잘 넘기지 못할까.

감정보다 먼저 나를 다그치게 된다.


어쩌면 예민한 것 보다 예민한 나를 못 견뎌하는 마음이 더 힘든 건지도 모르겠다.


어제부터도 그랬다.

잠도 잘 오지 않았고, 아침에는 일어나기 싫었다. 괜히 모든 게 무겁고, 다시 우울 속으로 가라앉는 건 아닐까 무서웠다.


이럴 때 나는 늘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늦잠을 잤기 때문일까, 일이 바빠서일까, 잠을 못 자서일까, 밥을 잘 못 챙겨 먹어서일까.

물론 이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들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감정까지 더 커질 때가 있다.


이제는 그 이유에 먹이를 주며 예민함과 우울함을 키워나갈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부터라도


오늘은 그래서 이런 나를 추궁하기보다, 돌보려고 해보았다.

아침부터 출근하기 바쁜 날이었지만 회사 건물 1층에 들려 아침으로 먹을 빵이랑 에그타르트를 샀다. 계산하면서 주고받는 인사에 조금 긴장이 풀어졌다.


선물용 과자가 있길래 그것도 하나 샀다. 사람들이랑 나눠 먹어야지 싶었다.


비싼 커피도 하나 샀다. 마침 건물 안에 친구가 일하는 카페가 있어서 고향 친구를 만나서 인사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3만 원과 맞바꾼 우울한 감정인지, 충동소비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 종일 예민할 뻔했는데 뭔가 기분이 나아진 것 같다.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다. 감정을 꼭 다 이해해야만 지나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어떤 날은 이유를 파헤치기보다 나 오늘 조금 예민하구나, 하고 지나가게 두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다는 걸.


앞으로도 이렇게 순간의 감정을 너무 오래 붙잡아 두지 않고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흘려보내는 법을 하나씩 찾아가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엄마와의 휴전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