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잘못 배운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법도 모른다.

왜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고있었을까

by 비채


산책을 하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돈을 벌고 싶어 했을까.


돌아보면, 내가 정말 원했던 건 돈 그 자체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공무원이셨던 부모님은 늘 저축하느라 돈이 없다고, 돈을 벌어야 해서 바쁘다고 말했고, 나는 그 속에서 자주 혼자 외로웠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엄마아빠와는 다른 방식의 삶이 존재한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미래만을 위해 현재를 견디는 삶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내면서도 미래를 잃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집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고, 좋은 회사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했으니, 빠르게 많이 벌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컴퓨터공학을 택했고, 개발을 좋아했기에 직업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개발자가 되는 것이 곧 내가 원하는 삶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돈도 많이 벌 수 있으리라 믿었고, 그래서 취업은 기대되고 행복한 일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막상 내가 마주한 건 내가 상상하던 삶과는 조금 달랐다. 내가 원하던 개발자의 삶이라기보다, 그저 공장 로봇처럼 돌아가는 직장인의 삶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곳, 더 나라는 사람을 드러낼 수 있는 곳이 바깥 어딘가에 있을 것 같다고 믿었다. 나는 여기서 멈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더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그렇게 이직을 했고, 더 열심히 일하고, 성과로 나를 증명하고, 월급을 올리고, 돈을 모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1억이 모이고, 돈이 더 쌓이고, 투자를 하고, 자산이 조금씩 불어나기 시작했는데도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느낌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전 회사나 지금 회사나, 직장인으로서의 삶은 생각보다 비슷했다. 더 이상 일 잘하는 나로, 어떤 결과로 나를 증명해내는 것도 큰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번아웃과 허무가 동시에 오고 나서야 질문이 시작됐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악착같이 살았지?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버티고 밀어붙이며 살아갈까?

더 벌고 더 모으는 것만으로 정말 충분한 걸까?


그리고 그 무렵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사회도 지쳐 있었고, 사람들도 무너지고 있었고, 작은 실수로 만들어진 파멸을 바로 옆에서 보게 되기도 했다. 나 역시 번아웃과 함께 아주 긴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그때 조금씩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진짜 찾고 있던 건 돈이 아니라, 돈으로 얻고 싶었던 어떤 감각이었다는 걸. 불안하지 않아도 되는 감각, 버려지지 않을 거라는 안심, 그리고 온전히 내 편이 있다는 믿음 같은 것들.



나는 그리고 왜 그렇게 사랑을 갈구했을까


아마 그래서 나는 사랑을 그렇게 갈구했던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누군가 내 편이 되어주는 감각을 간절히 원했다. 엄마아빠가 안정적으로 나를 품어준다고 느끼지 못했고, 맞벌이 부모님 대신 나를 키워주셨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그 결핍은 더 커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단짝을 찾았다. 컴퓨터 속에서도, 학교에서도, 어디에서든 한 명의 “온전히 내 편”을 원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도 온전히 소유할 수 없었다. 친구는 나의 전부가 아니었고, 내가 바라는 방식 그대로 나를 사랑해주지도 않았다. 실망하고, 삐지고, 멀어졌다. 관계를 맺는 법을 잘 몰랐던 나는 학창시절 친구관계에서 한걸음 물러났고, 온 마음을 주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나는 그 사랑에 모든 걸 걸었다. 그 사람이라면 나를 온전히 사랑해줄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진짜로 주고받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몰랐으면서, 한 명의 확실한 내 편이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먼저 사랑하려 했다. 어떤 사람이든 사랑해주면 되는 줄 알았다. 참는 게 사랑이고, 질투가 사랑이고, 통제가 사랑이고, 퍼주는 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많이 다쳤다. 힘들었지만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는 왜 그런 사람을 만나냐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그 관계를 놓지 못했다. 대학교 때 동기에게 왕따를 당하며 나를 부정했던 시간들까지 겹쳐, “이런 나를 사랑해줄 사람은 유일하다”는 믿음이 너무 깊었기 때문이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기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왜 이런 사랑을 하는 걸까 싶어 수많은 연애 이야기와 조언을 찾아봤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 나를 먼저 사랑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데 사랑을 올바르게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은, 사실 그 말을 바로 이해할 수가 없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모르니까.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보여주는 방식이 내가 알 수 있는 사랑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정말 사소한 것들로부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시간을 쓰고, 쉬고, 옷을 입고, 집을 꾸미고, 웃고, 작은 취향을 돌보는 일들. 너무 사소해서 이게 무슨 사랑인가 싶었던 것들. 그런데 그렇게 조금씩 해보니 알 것 같았다.


아, 이게 사랑이구나.


나를 돌보고 아끼는 일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아주 작은 선택들의 반복이라는 걸.



그 뒤로도 나는 여러 형태의 사랑을 겪었다.

엄마와의 어긋난 사랑, 직장 동료와의 우정, 전 남자친구와의 파멸적인 사랑. 그런 시간들을 지나면서 겨우 알게 됐다.


이런 사랑은 사랑이 아니구나.

나도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되는구나.

꼭 누군가에게 나를 맞추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렇게 살아오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씩 나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무서웠다. 사람들은 다 힘들게 살아가는데, 혹시 나만 너무 약한 건 아닐까. 내가 유난인 건 아닐까. 엄살은 아닐까.


시간이 지나며, 주변 사람들과 상담 선생님과 책과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천천히 배웠다.

약해도 된다는 것.

엄살이어도 된다는 것.

비교의 기준을 남에게 둘 필요가 없다는 것.

사랑은 꼭 뭔가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다정한 눈빛으로 곁에 있어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아직도 나는 모든 답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분명한 건, 나는 더 이상 돈을 모으기 위해서만 일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결국 내게 필요했던 것은 돈으로 나를 증명하는 삶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올바르게 사랑하는 삶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예전처럼 사람들을 더 찾아다니고 싶지는 않다. 있는 사람들을 잘 지키고 싶고, 남는 시간에는 나를 다듬고 싶다. 그게 지쳐서일 수도 있고, 드디어 나를 찾기 시작해서일 수도 있다. 아마 둘 다일 것이다.



그런데도 한 가지 갈망은 계속 남아 있다.

내가 위로받았던 방식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는 마음.

찌질하고 약하고 흔들려도 괜찮다고. 모두가 생각보다 더 힘겨운 일을 겪고 쓰러지지만 그래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들과 함께 하며 다시 회복될 수 있을거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



그래서 자꾸 묻게 된다.

이 마음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예쁜 순간을 공유하면 되는 걸까.

글을 써야 할까.

작품처럼 만들어야 할까.

그냥 일기처럼 솔직하게 남기면 되는 걸까.



정답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더 이상 나를 증명하는 삶만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올바르게 사랑하며, 내가 받았던 위로를 다시 건네는 삶.

어쩌면 이제 나는 그런 삶을 이루기 위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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