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와 함께 한 이틀 밤

헛구역질하거나 커플 바지를 입거나

by 이른아침

설 연휴가 끝나고 큰딸이 돌아갔다. 어린 두 손녀를 외갓집에 맡겨둔 채였다. 아이들도 엄마와 헤어지는 순간 잠시 아쉬워했지만 두 밤만 자고 만나자는 말에 씩씩하게 손을 흔들었다. 끄덕 없이 잘 놀다가 밤이 되면서 조금씩 흔들렸다. 잠자리에 든 큰손녀는 평소보다 엄지손가락을 오래 빨았고 둘째 손녀는 애착 인형인 너구리를 더 꼭 품에 안았다. 그뿐이었다. 엄마의 빈자리가 채워진 건 곁에 있는 이모 덕분이다.


사실 둘째 딸이 처음부터 조카들을 예뻐했던 건 아니었다. 이모가 된 순간 낯선 존재에 대한 생경함이 있었다. 아기의 신비로움이나 귀여움을 알아채기까지 정 붙일 시간이 필요했다. 사랑은 한 번에 커지지 않고 살을 맞대고 숨을 나누며 서서히 스며들었다. 어릴 적부터 후각이 예민했던 딸은 아기의 체취에 먼저 마음을 열었다. 입가에 감도는 달큼한 젖내와 정수리에서 풍기는 풋풋한 과일 향에 문을 열었다. 이제는 조카들을 만나거나 헤어질 때는 물론 수시로 아이들을 품에 안고 머리카락 사이에 코를 묻는다. 아이들도 그것이 이모만의 사랑임을 아는지, 이모가 팔을 풀 때까지 가만히 안겨 그 순간을 함께 나눈다.


게다가 첫째 손녀는 자랄수록 이모를 쏙 빼닮아간다. 어린이집 하원 길에 엄마를 대신해 맞으러 가면 주변에서 이모와 조카가 닮았다는 소리를 곧잘 듣는다. 내 눈에는 지금보다 딸의 어릴 적 모습 속에 손녀가 더 남아있다. 손녀에게 이모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주며 누구냐고 물으면, 어김없이 제 이름을 넣어 대답했다. 오랜 세월을 지나온 사진 속 이모 얼굴에서 자신의 지금을 발견한 것이다. 딸도 그런 말을 들으면 은근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휴대폰 사진첩에는 조카들로 가득하고 프로필 사진 역시 아이들 차지다. 서로 영상통화를 즐기고 기회만 생기면 언니 집으로 간다. 두 아이를 낳고 기르느라 2년을 쉬었다가 복직한 언니에게도 든든한 버팀목이다. 직장 일로 바쁘거나 아플 때마다 둘째 딸은 달려가 아기들을 맡아 돌본다. 연차의 절반을 조카들에게 쓴다는 말은 과장은 아니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에 직장에서 반차를 내야겠다고 하자 동료는 낭만적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제설 작업에 동원되어야 할 언니를 대신해 조카들을 돌보러 가야 하는 사정이 있었다.


이 같은 이모의 사랑에 아이들도 온몸으로 화답한다. 어디서든 이모를 마주하기만 하면 “이모~”를 합창하며 달려와 안긴다. 밤에는 엄마 품을 찾다가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이모를 찾는다. 이모와 함께 놀면 거실은 금세 종이와 장난감으로 가득한 놀이터가 된다. 인형을 한아름 들고 와 이름을 부르며 역할놀이에 빠진다. 이름이 중성적이라 평소 이름에 관심이 많은 둘째 딸은 재치 있고 쉬운 이름을 인형에 붙여주었다. 이번 설 선물로 받은 새 인형을 들고 와 이모에게 내밀며 이름을 지어달라고 한다. “이름 뭐야”라 묻는 아이의 목소리에는 이모가 지어줄 이름에 대한 설렘이 가득하다.


아이들에게 이모는 든든한 엄마 같고 다정한 놀이 친구가 되면서도 때로는 짜릿한 일탈의 공모자가 된다. “웃긴 것 보자”라며 이모 귀에 속삭이고 스마트폰 게임을 할 때면 셋은 방문을 닫아둔다. 슬쩍 문을 열면 셋이 맞대고 있던 머리를 동시에 들어 쳐다보는 여섯 개의 눈초리라니. 이번에 서울로 먼저 올라가는 엄마를 손녀들이 큰 아쉬움 없이 떨어졌던 것도 사실 사전 공모 덕분이었다. 엄마를 보내고 나면 평소 한 편으로 제한되었던 애니메이션 <옥토넛>과 <티시태시>를 많이 보여주겠다고 이모가 미리 약속해 둔 이유도 있었다. 엄마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을 허용해 주는 이모는 조카들에게 뒷배가 된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이모 덕분에 예쁘게 옷을 입는다. 떨어져 지내면서도 조카들의 옷장 속을 다 꿰고 있다가 코디할 옷을 추천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엄마가 입혔을 때보다 세련된 태가 난다. 계절에 맞추어 어울릴만한 옷을 검색해 두었다가 언니에게 소개하거나 직접 사준다. 이번 설에는 줄무늬 바지를 조카들에게 선물하고 자신도 똑같은 무늬의 바지를 준비해 입고 왔다. 셋이 나란히 줄무늬 바지를 맞춰 입고 나서던 뒷모습은 유쾌했다. 민무늬 바지를 입고 뒤를 따르는 엄마가 오히려 이모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둘째 딸의 사랑이 엄마의 사랑과 똑같진 않다. 조카들의 생일은 기억하면서도 태어난 연도는 매번 헷갈리고, 유난히 발달한 후각 탓인지 조카들 똥을 치울 때면 어김없이 헛구역질을 해댄다. 엄마라면 잊지 않고 하지 않을 것들 앞에서 고전한다. 그래서 둘째 딸이 더 대단해 보인다. 엄마라는 본능의 힘이 아닌 오직 제 마음만으로 이토록 지극한 정성을 쏟으니 말이다. 못 견디는 것을 참아내며 건네는 사랑이다. 이런 이모의 품 안에서 조카들은 엄마 없는 이틀 밤을 슬픔이 아닌 또 다른 색깔의 사랑으로 채워진 잠에 들었다. 아이들은 꿈속에서 셋이 함께 맞춘 줄무늬 바지를 입고 강둑에서 또 신나게 놀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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