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강아지 엄지 척

굳은살이 머문 자리

by 이른아침

쪽, 쪽, 쪽......

새벽녘에 익숙하고 낮은 소리가 들렸다. 여섯 살 손녀가 오늘도 어김없이 엄지손가락을 입에 넣고 빨고 있다. 언제부터 무엇이 계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쪽쪽이보다 제 손가락을 더 좋아했다. 이유식을 먹고 빠는 욕구가 줄어들고 뛰어다니게 되면 자연스럽게 잦아들 줄 알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작은 습관은 생각보다 큰손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손가락을 빨지 못하면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깊이 잠들었다가 선잠으로 돌아선 순간이면 어김없이 손이 입 속으로 찾아들었다. 집에서뿐만 아니라 차를 타고 이동하다 잠깐 꾸벅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어린이집에서도 놀이하다가 엄지손가락을 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때의 버릇으로 여겼던 생각은 걱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물건을 만진 손이 입으로 들어갈 때마다 온갖 세균들도 따라서 들어갈 듯했다. 기침이라도 하면 그 때문이라 여겨졌다. 오래도록 이어져 치열이 흐트러지거나 손가락 마디가 변할 것만 같았다.


손녀에게는 평안을 가져다주는 행동이 할아버지 눈에는 하루빨리 고쳐야 할 나쁜 습관으로만 보였다. 손가락이 촉촉하게 젖어 있을 때가 많았고 어느덧 엄지 두 번째 마디 위쪽에는 굳은살이 불쑥 돋아나 있었다. 외갓집에 잠시 온 것을 기회 삼아 고쳐보려고 나섰다.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을 '문어 다리'라 부르며 짓궂게 핀잔도 주고 일회용 밴드를 붙여 보기도 했다. 그때뿐 소용이 없었다. 아이는 밴드를 떼어내야만 잠이 들었고 깊은 잠에 빠진 뒤에 몰래 붙여두어도 뒤척이거나 밴드가 붙여진 채로 입에 넣었다.


그 무렵 손녀는 손 빨기를 고쳐야 할 버릇으로 어렴풋이 알아차리는 듯했다. 거기다 참아보려는 의지가 생겨나고 있었으나 아직은 빨고 싶은 욕구를 이기지는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 손녀를 지켜보면서도 딸은 서두르지 않았다. 억지로 끊어내기보다 때가 되기를 기다리며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버릇을 자각한 아이에게 이겨내려는 내적 갈등이 시작되었음을 딸은 눈치채고 있었다. 본능과 싸우느라 이미 고단할 텐데 엄마와의 갈등이라는 짐까지 얹지 않으려는 속내였다. 주 양육자인 딸의 깊은 마음을 읽고 나니 놀리거나 반창고를 붙인 행동이 미안해졌다. 달에 한두 번 만나는 할아버지가 어설프게 나설 일이 아니었다. 조급한 마음을 꾹 누르고 지켜보기로 했다.


영상통화를 할 때면 그 버릇은 어떠냐고 묻곤 했다. 딸은 여섯 살이 되면 그만두기로 손녀와 약속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반년이나 남은 시간이 길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냐는 말로 은근히 조급함을 또 내비쳤다. 한참 만에 본 굳은살은 여전했다. 하지만 손녀의 태도는 달라져 있었다. 손가락을 보자는 말에 예전처럼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순순히 보여주었다. 딸은 이제 유치원에서는 빨지 않고 저녁 잠자리에서만 빤다며 기특해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무렵에 딸은 선물과 함께 손가락 빨기와 헤어지는 조촐한 기념식을 열어주었다고 했다. 그날 밤에 손녀는 손가락을 빨지 않고 잠들어 보려 애쓰느라 한 시간이 넘도록 뒤척였는데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 뒤돌아 누워 몰래 손을 빨자. 딸은 "어디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라며 나직하게 물었고, 엄마의 말에 손녀는 "어떻게 알았어"라며 민망함에 웃음을 더해 대답했단다.


그리고 설을 한 달 앞두고 다시 외갓집에 왔을 때도, 손녀는 잠들기 전이나 새벽녘에 선잠이 들 무렵이면 여전히 손을 찾았다. 하지만 횟수는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케이크에 촛불을 켜며 아이의 노력에 다시 한번 축하하고 응원했다. 손녀는 어느 때보다 밝은 얼굴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뿜으며 촛불을 껐다.


설을 쇠러 온 손녀를 보자마자 내 눈길은 엄지로 향했다. 여전히 잠들기 전에는 손가락이 필요해 보였지만 마디에 단단히 박혀 있던 굳은살은 옅어져 있었다. 굳은살을 없애는 것은 곁에서 보태는 염려나 조급함이 아니라 밤마다 홀로 견디며 애써온 아이 마음의 힘이겠구나 싶었다.


"내 강아지 최고"라며 내가 엄지손가락을 세우자, 손녀도 마주 보며 제 엄지를 곧게 치켜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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