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책이 되기까지
마침내 동아리 활동의 결과물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10개월 동안 참여자들이 각자 쓰고 그린 글과 그림 아홉 편을 묶어 한 권에 담았다. 시청 담당직원으로부터 완성된 책을 건네받는 순간, 주는 사람의 눈보다 책에 시선을 두었고 고맙다는 인사 대신에 디자인이 세련되었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종이 책의 감촉과 무게가 손에 전해지면서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과 시간을 되짚게 했다.
시청에 일을 보러 갔다가 게시판 한쪽에 붙어 있던 출판체험 자율활동 동아리에 대한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우연히 그림책 출판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첫 모임에서는 동아리의 활동 개요와 일정을 함께 나누었다. 이미 이전 1년 동안 함께하며 그림책을 만들어 본 동아리여서인지 처음부터 분위기는 자연스러웠고 논의와 진행도 차분했다. 그때 편안함은 활동기간 내내 이어졌다.
모임은 한 달에 두 번 가졌다. 한 번은 각자가 구상 중인 글과 그림에 담긴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었고, 또 한 번은 다양한 이미지 표현 활동을 함께했다. 참여자 대부분이 글이나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운 경험이 없어 활동에 오히려 더 적극적이었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미술을 전공한 동아리장은 부족한 전문성을 보완하며 활동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이끌었다.
분위기는 줄곧 편안했던 것과 달리 정작 나는 그림책을 직접 써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어떤 주제로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해야 할지 막막했다. 참고 삼아 읽어본 그림책에는 소재와 이야기가 이미 넘쳐났고 세상에 쓸 수 있는 이야기는 모두 한 번씩은 다 쓰인 것처럼 느껴졌다. 고민이 길어졌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맞은 두 번째 모임에서 막막함을 털어놓았다. 그때 들은 말은 의외로 단순했다. 특별한 이야기를 찾으려 애쓰지 말고 평소 마음에 머물던 생각이나 일상에서 소재를 찾는다고 했다. 지난해에도 각자의 삶과 주변을 들여다보는 이야기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자연에서 소재를 찾기로 했다. 그동안 브런치에 썼던 글들을 하나씩 다시 읽으며 이야기로 더 발전시킬 여지가 있는지를 살폈다. 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지, 독자에게도 의미 있는 장면이 될 수 있을지도 기준으로 삼았다. 여러 글 가운데 자연과 식물에 남아있는 바람의 흔적을 다룬 이야기가 눈에 들었다. 조금 덜어내거나 보태면 이야기의 씨앗으로 충분해 보였다. 이 글을 바탕으로 줄거리를 쓰고 다음 모임에서 동료들의 의견을 들었다. 조금 더 다듬으면 될 듯한 반응이었다.
이야기가 자리를 잡자 이제 그림이 문제였다. 가끔 브런치 글에 넣을 그림을 그려주던 둘째 딸에게 도움을 청했다. 정당한 보수를 미끼로 던진 덕분인지 이번에도 딸은 흔쾌히 받아주었다. 대신 그림의 구상은 함께 고민해 보자는 조건을 내밀었다. 초안 글을 먼저 보내 생각할 시간을 준 뒤에 내가 떠올린 대강의 그림 얼개를 전했다. 채색은 시간과 노력이 더 많이 드는 작업인 데다 그만큼 딸에게 치러야 할 비용도 커져 흑백으로 방향을 정했다. 딸은 저녁과 주말의 틈새 시간을 쪼개 그림을 완성해 주었고 몇 차례의 수정과 보완도 마다하지 않았다.
글과 그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책으로 엮는 편집 과정이 남아있었다. 동아리 활동의 일부로 인디자인 편집 강좌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미처 예상하지 못해 다소 당황스러웠다. 쓰고 그리면 끝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제 활동은 페이지 구성과 편집, 인쇄 과정까지 책이 만들어지는 거의 모든 단계를 아우르고 있었다. 글과 그림이 화면 위에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체험하면서 한 권의 책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과 시간이 필요한지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완성된 책을 받는 순간 건네는 사람보다 책에 먼저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 숲에 사는 바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