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은 인형에게, 한 발은 세상으로
오늘은 어디로 데리고 다녔을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인형을 찾아 안으며 웃음 짓던 얼굴을 떠올리면 손녀와 인형의 하루가 궁금해진다. 밥을 먹을 때도 식탁 위에 앉혀 두고, TV를 볼 때도 옆자리에 챙겨놓고,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집 안을 돌아다닐 때나 밖에 나갈 때나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둘 사이엔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된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보기엔 작고 오래된 인형일 뿐이지만 손녀에게는 세상에서 엄마 다음으로 든든한 내 편이 되었다.
서너 달 전만 하더라도 이 인형은 여러 동물 인형 가운데 하나였다. 첫째 손녀가 가지고 놀던 인형에다, 둘째 손녀가 크면서 이제는 두 손녀에게 하나씩 챙겨줘야 하는 상황이 되자 인형은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그렇게 하나둘 모이다 보니 어느새 한 바구니가 되었다. 호랑이나 개처럼 그림책이나 주변에서 자주 보아 친숙하지도 않고, 시선을 단번에 끌 만큼 크거나 반짝이지 않아 눈길을 사로잡지도 않았다. 바구니 밑바닥에 묻혀있었고 큰 인형 엉덩이 밑에 깔려 기억되지 않는 존재였다.
그리고 처음엔 어느 하나만 좋아하기보다 골고루 마음을 주는 편이었다. 어느 날은 동화 속 개미와 베짱이 인형이 선택을 받았고 또 며칠은 동화 구연이나 손인형극에 쓰는 귀여운 토끼 인형을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하나에 오래 머무르지 않고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오늘의 친구를 골라 놀았다. 외출할 때는 들고 다니기 편한 작은 인형을 권해주면 그대로 선택하기도 하면서도 어느 땐 제법 진지해져서 인형들 앞에서 이것저것에 손을 뻗어 본다. 이 인형이 좋을지, 저 인형이 괜찮을지 제법 신중한 선택의 시간이 지나고 품에 안고서 현관으로 향한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어떤 인형에 손이 갈지 궁금하기도 해서 옆에서 지켜보면서 숨을 죽이게 된다.
이렇게 신중하게 선택한 작은 토끼 인형을 데리고 나갔다가 한 번은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손에 인형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고 마음이 상한 손녀를 달래느라 작은 소란이 시작됐다. 아기 나들이 가방을 뒤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차해 둔 차까지 찾아보았으나 인형은 보이지 않았다. 곰곰이 떠올려 보니 밥을 먹을 때 식탁 옆에 인형을 앉혀 두었던 기억이 났다. 급히 식당에 전화하니, 주인은 CCTV까지 돌려보며 아이가 인형을 손에 꼭 쥔 채 식당을 나갔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 후로 놀이방과 옷가게를 차례로 들러 돌아다닌 끝에 토끼 인형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을 벌여 되찾은 인형인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다른 인형을 골라 들었다. 또한 친하게 데리고 놀던 인형도 서울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는 말끔히 잊고 떠났었다.
그랬던 그녀가 어느 날 달라졌다. 한 달쯤 전에 독감으로 엄마와 잠시 떨어져 외갓집에 다시 와서 지낼 때였다. 무엇이 눈에 끌렸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날은 그동안 한 번도 고르지 않았던 작은 너구리 인형을 손에 넣었다. 그때 손녀는 몸살로 기운이 없었고 무엇보다 늘 곁에 있던 엄마가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말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 어린 마음 안에는 분명 빈자리가 있었을 것이다. 대신 기댈 무언가가 간절했고 아마도 그 작은 너구리 인형이 빈틈을 채워주는 존재이지 않았을까. 아픈 몸이 나아지는 동안,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함께 해준 인형에 애착이 형성된 듯싶다.
그 이후로 다른 인형을 기웃거리지 않고 그 인형만 꼭 쥐고 다녔다. 이전처럼 망설이지 않았고 이미 마음은 정해져 있는 듯이 보였다. 아픈 몸을 달래듯 인형을 품에 안았고 잠이 들 때도 이불을 함께 덮었다. 주말에 엄마가 온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몸이 회복되어 서울로 되돌아갈 때도 별다른 고민 없이 그 인형을 챙겨 갔다. 너구리 인형은 외갓집에서 함께한 시간을 넘어 손녀의 일상 속으로 들어갔다.
딸이 보내주는 사진 속 손녀 곁에는 여전히 너구리가 함께 있다. 어린이집에서도 손에 들려 있어 친구들과 노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을지, 걸을 때나 유모차에 앉아 있을 때도 한 손밖에 쓰지 못해 혹시 불편하지는 않을지, 오랫동안 헤어지지 못하고 심해지진 않을까, 사진을 볼 때마다 이런저런 염려가 앞선다. 하지만 손녀에게 그 인형은 손을 하나 내어줄 만큼 기꺼이 자신을 맡길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손잡이인 셈이다.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손에서 놓게 될 때까지 손녀가 엄마와 떨어져 한 발 더 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줄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한 손쯤 너구리에게 내어주어도 괜찮아.
오늘은 또 어디까지 데려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