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꽃잎에 머문 빛과 봄

이번 주말에 진달래꽃을 만나러 가보자

by 이른아침

밤새 비가 내렸다. 겨울의 마지막 흔적을 씻어내며 봄을 앞당기는 비다. 생강나무꽃은 시들어가겠지만 막 돋아나는 새잎은 크게 펼쳐질 테고, 단풍나무도 어린잎에 남은 붉은빛을 벗어던지고 연둣빛으로 짙어지겠다. 아직 새싹을 내지 못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들도 생명의 기운을 올리느라 분주해질 것이다.


하지만 비가 그친 뒤에 다시 마주한 마을 야산의 진달래는 한풀 꺾인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 주말만 해도 산길을 따라 연분홍빛으로 화사하던 진달래꽃이었다. 잎보다 먼저 피어 멀리서 보면 나무 전체가 꽃인 듯했다. 벌은 그 꽃들을 하나하나 모두 찾아갈 기세로 바삐 날아다녔다. 그런데 아침까지 이어진 비에 꽃잎은 젖고 빗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당단풍나무 어린잎> <웅웅거리던 호박벌> <비에 젖은 꽃잎>


이른 봄부터 늦봄까지 꽃이 피는 진달래

이렇게 진달래꽃의 짧은 봄이 끝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진달래꽃은 지역과 고도에 따라 피는 시기에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남부 지역부터 피기 시작해서 북쪽 지방으로 올라갈수록 늦어진다. 남도에서는 3월 중순부터 피고 졌고 내가 사는 충청지역은 지금이 절정이다. 수도권은 아마 이번 주말쯤 그리고 중부 산간지역은 조금 더 늦어지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같은 산에서도 한꺼번에 피지 않는다. 낮은 골짜기에서 먼저 핀 꽃은 산꼭대기까지 차례대로 피면서 올라간다. 산허리를 너머 더 높은 곳에는 여전히 찬바람을 견디며 꽃봉오리 상태로 때를 기다린다. 분홍 꽃잔치는 막을 내린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이어가는 중이다. 하룻밤 비로 막을 내릴 진달래가 아니다.


실제로 이름난 진달래 명소들은 저마다 꽃이 피는 시간표를 가지고 있다. 여수 영취산에서 시작된 분홍 물결은 창원 천주산과 강진 주작산, 창녕 화왕산, 대구 비슬산, 부여 옥녀봉을 거쳐 부천 원미산, 강화 고려산으로 북상한다. 이곳 말고도 전국 여러 산에서 시차를 두고 주말마다 진달래꽃 축제가 이어진다. 그 시기에 맞춰 산에 가면 분홍빛으로 물든 산등성이를 마주할 수 있다. 그마저도 놓쳤다면 또 한 번의 기회가 남아있다. 다소 힘들더라도 5월에 설악산이나 지리산, 한라산, 덕유산에 오르면 하늘과 맞닿은 능선에서 그때까지 우리를 기다려 꽃이 피는 털진달래를 만날 수 있다.


그러니 집 앞 야산의 진달래꽃이 시들었다며 안타까워 말자.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꽃소식에 마음 졸일 이유도 없다. 꽃은 저마다의 속도로 피어나니 그 시간에 맞춰 찾아가면 되고, 산은 제 나름의 높이가 있으니 그 품에 맞게 오르면 그만이다.


민초의 삶이 담긴 진달래꽃

이렇듯 진달래는 우리 산 어디에서나 쉽게 마주하는 가장 친숙한 봄꽃이자 시대를 넘어 사랑받아 온 꽃이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는 아이들에게는 간식거리가 되고 어른들에게는 화전이나 두견주의 재료가 되었다. 먹을 수 있는 꽃이라 하여 참꽃이라 불렸고 먹지 못하는 철쭉은 개꽃이라 했다.


척박한 바위틈이나 위태로운 산비탈은 물론 바람 거센 산마루에서도 누가 돌보지 않아도 꿋꿋하게 자란다. 또한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이나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로 시작하는 노래 「봄이 오면」 등 수많은 문학과 노래에서 우리 민족의 한과 정의 정서를 대변하는 꽃으로 자리 잡았다. 예나 지금이나 꽃 이상의 존재인 셈이다. 민초(民草)라는 말에 어울리는 꽃이다.


진달래꽃을 더 아름답게 보는 법

<속눈썹을 닮은 암술과 수술> <꽃과 마주봄> <햇살에 빛나는 꽃>

이토록 소중한 진달래꽃을 온전히 마음에 담기 위한 나만의 감상법 몇 가지를 가져보면 어떨까. 먼저 가까이 다가가 꽃을 살펴보자. 끝이 다섯 갈래로 갈라진 꽃잎은 주름이 잡혀 손으로 공들여 매만져 빚어 놓은 듯하다. 위쪽에 찍힌 반점들은 곤충을 부르듯이 내 눈을 매혹한다. 그 사이로 길게 뻗어 나온 암술과 수술은 끝이 위로 솟아 우아하게 다듬어진 속눈썹 같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꽃과 내가 서로 눈을 마주하는 착각에 빠진다.


햇살이 비스듬히 기울어지는 아침이나 해 질 무렵에 만나보자. 꽃잎은 투명하듯 얇아 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햇볕이 꽃잎을 투과하며 빚어내는 색감을 표현할 말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다. 역광으로 마주하면 스스로 빛을 발하는 듯 신비롭다.


바람이 부는 날은 어떨까. 진달래는 대개 바람이 잘 통하는 계곡의 비탈이나 능선에서 자란다. 무리를 이룬 진달래가 봄바람에 일제히 흔들리면 산이 춤추는 듯 경쾌하다. 능선 위라면 눈을 감아본다. 서로 몸을 부대끼며 내는 낮은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지금 한창이다. 이번 주말에는 진달래꽃을 만나러 산으로 가보자. 가서 시선의 거리를 달리해서 바라보기도 하고, 산이 추는 춤도 함께 하며 눈도 감아보자. 생각에만 머물지 말자.


<소백산 국망봉과 천동삼거리 능선의 털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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