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밟혀도 되살아나는 봄

출근길에 마주하는 민들레의 삶도 다를 게 없다

by 이른아침

앞을 보고 걷던 발밑에 뭔가 밟히는 느낌이 전해졌다. 겨우내 신던 경등산화 대신 올봄부터 스니커즈를 신은 덕에 발바닥의 감각이 살아났다. 발밑을 살폈다. 보도블록과 배수시설 사이에 어긋난 높낮이 차이 때문에 느낌이 달랐다. 그 틈새에 민들레 한 송이가 있었다. 방금 내 발에 밟힌 녀석이다. 잎맥은 짓이겨져 하얀 진물이 살짝 배어 나왔고 노란 꽃은 바닥에 납작하게 눌려있다.


잠시 멈춰 서서 지켜보았다. 눌렸던 꽃줄기는 비스듬히 누웠고 꽃은 생기를 잃지 않았다. 조심스레 손으로 눌러보았다. 한 번 더 눌렀다. 손을 떼니 이전처럼 서서히 일어났다. 잎과 꽃줄기는 마치 형상기억합금처럼 원래의 제모습을 기억하듯 고개를 들었다. 이번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수많은 발길이 지나는 길목에서 매일 같이 밟히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해 왔을 민들레였다. 보도블록 틈바귀에서 되풀이되었을 부활의 현장이었다. 수십 번을 밟혀 해진 잎은 땅에 붙었고 꽃줄기도 허리를 세우지 못한 채 누워있다.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선택한 낮은 자세였다.


더 이상 앞만 보고 걸을 수 없었다. 시선은 발밑의 보도블록 좁은 경계로 향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은 정부청사가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민들레를 만났다. 역시 손바닥만 한 틈에 몸을 끼워 넣고 있었다. 보도블록 위로 뻗어 나온 잎은 찢긴 채 바닥에 붙어 있다. 그러면서도 좁은 틈새 흙 위에 자리한 잎사귀는 초록빛을 잃지 않고 생생했다. 먼저 핀 꽃은 시들어 열매를 맺을 준비 중이었다. 씨앗을 바람에 날려 보낼 기대를 품고 있었다. 발밑에서 벌어지는 생존의 흔적은 단단하고 분명했다.


저쪽 너머에도 노란 꽃이 핀 민들레 무리가 보였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 사이를 지나 꽃잎이 떨어지는 벚나무 가로수 가까이 갔다. 조금 전에 본 보도블록 틈바구니의 삶과는 달랐다. 여기에선 잎을 넓게 펼치고 꽃줄기를 높게 세운 민들레가 자랐다. 철제 울타리 옆도 비슷했다. 다른 풀들과 경쟁하며 더 많은 태양 빛을 받기 위해 더 높이 자라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었다. 족히 20~30cm는 되어 보였다.


같은 보도블록 틈이라도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는 거침이 없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클 수 있을 만큼 키를 키웠다. 보도블록 사이에서 스스로 몸을 낮추고 있던 녀석들과 달리 긴 꽃줄기가 봄바람에 한들거렸다. 어딘가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도심 도로변에 똑같이 뿌리를 내렸음에도 한 발짝 차이로 나뉜 환경이 이토록 다른 삶의 모양새를 만들어냈다.



보도블록 틈새는 가혹하다. 흙은 얕고 물도 쉽게 마른다. 크게 성장하는데 제약이 있지만 이곳에 자리 잡은 민들레도 처음에는 멋모르고 본능에 따라 높이 자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무심한 발길에 차이고 짓눌리는 시련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높이를 고집하다가는 죽음으로 이어지는 현실을 깨달았을 게 분명하다. 생존을 위해 높이를 포기하고 낮음을 선택했다.


반면에 가로수 주변의 민들레는 반대의 전략을 펼쳐야 할 조건이었다. 흙과 물은 풍부해도 햇빛은 나무에 가려 부족한 환경이었다. 풍족한 자원을 기반으로 조금이라도 빛에 더 가까이 닿기 위해 필사적으로 더 높이 자라야 했다. 밟힐 염려보다 가려질 걱정이 큰 환경에 높이가 곧 생존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같은 민들레이면서도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른 삶을 택했다. 이를 생물학에서는 “표현형 가소성”이라고 한다. 같은 유전형질을 가졌더라도 환경에 반응하여 외형이나 생리적 특징을 바꾸어 살아가는 능력이다. 이런 적응 사례는 곤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네발나비는 빛과 온도 같은 계절적 요인에 따라 날개 색깔이 달라진다. 여름에 발생한 개체는 밝고 선명하여 번식에 유리하고 가을형은 진한 갈색으로 낙엽 밑에서 월동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색깔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여 유지되고 강화된다.


보도블록 틈에서 몸을 낮춘 민들레도, 그늘 속에서 키를 키운 민들레도 모두 충분히 살아낸 모습이다. 같은 씨앗이더라도 뿌리내린 자리가 달랐을 뿐이다. 나비 역시 계절에 따라 다른 색을 띠지만 어느 하나가 더 완성된 삶이라고 할 수 없다. 태어나 지나온 계절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까.


내일 아침 출근길에 발밑을 한번 살펴보자. 어제는 미처 보지 못했던 혹은 무심코 밟고 지나갔을 낮은 민들레 한 송이가 보일지도 모른다.


<도시나 근교에서 만나는 민들레는 '서양민들레'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공해에 강하며, 가을까지 꽃이 피고 또 수정 없이 무수정생식으로도 씨앗을 맺어 번식력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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