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른아침 Mar 04. 2024

철새의 이동

잘 다녀오길


겨울 철새들이 떠날 준비를 마쳤다. 새끼를 낳고 기르기 위해 번식지로 돌아가고 있다. 이미 시계와 달력에 의존해 살다 보니 무뎌진 감각에도 느껴지는 변화인데 자연의 시간에 맞춰 사는 새야말로 진즉 바람의 변화를 느꼈을 테다.

      

지방도 충분히 축적했다. 먼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장 먼저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일이다. 이동하는 동안에는 먹이활동을 할 수 없을뿐더러 지방은 이동할 때 에너지원이며 추위를 견디게도 해준다.

      

이동에 대비해 내장 주변이나 가슴 여기저기에 지방을 저장하면 몸무게가 최소 50%에서 최대 100%까지 늘어난다. 먼 거리를 날다 지방이 소진되면 근육에 있는 단백질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러면 치명적이다. 급기야 날 수 없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방이 고갈되기 전에 중간 기착지에서 먹이활동도 하고 쉬어간다. 갯벌이 발달한 서해 섬들이 쉼터로 이용되며 서천 앞바다에 자리한 작은 섬 유부도가 알려져 있다. TV의 자연 다큐멘터리나 인터넷을 통해 영상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사진이나 영상으로는 몇 번이나  곳이지만 실제로 가지 못했다. 가보고 싶다.

      

이제 떠날 순간을 가늠하고 있다. 날씨와 기류의 변화를 세심하게 살폈다. 눈이나 비가 언제 올 건지, 바람의 방향을 살펴 순풍을 탈 수 있는지, 상승기류를 타기 적당한 시간은 언제인지를 신중하게 탐색할 것이다.

      

낮과 밤 중 어느 때 이동하는지도 고려한다. 종마다 날갯짓하는 방식에 따라 다른데 많은 종류의 새들이 저녁에 이동하기를 선호한다. 저녁 이동은 몇 가지 이점이 있다.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날갯짓을 오래 하면 열이 발생한다. 밤은 낮보다 기온이 낮아 몸의 열을 식히고 적정 체온을 유지하기에 유리하다.

     

또한 밤에는 난기류가 적어 바람의 방향이 안정적이므로 수평을 유지하면서 날 수 있다. 바람의 흐름이 예측할 수 없이 불규칙하면 비행에 큰 영향을 받고 에너지를 많이 소비할 수밖에 없다. 나는 속도가 느린 작은 새일수록 안정적인 기류가 중요하다.  


기온이 높지도 낮지도 않고 바람은 부드럽고 일정하다. 우두머리 새는 느꼈다. 최적의 조건이다. 오늘 밤, 먼저 힘찬 날갯짓으로 상공에 오르면 다른 새들도 잇따라 날아오를 것이다.

     

어느 저녁 천변을 산책하다가 이동하는 철새무리를 보았다.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큰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하늘을 올려다보았으나 어둡고 높이 날아 새는 보이지 않았다. 철새가 이동하는 모습을 보았다가 아니라 새들이 이동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정도로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기러기 몇 마리가 먹이터와 쉼터를 오가며 내는 “끼룩끼룩 끼루룩” 소리는 짧고 낮아 아름답게 들린다. 그런데 저녁에 긴 거리를 이동하면서 한꺼번에 내는 소리는 우람했다. 낮에 한두 마리가 내는 소리만 들었기에 그런 시끄러운 소리를 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놀랐고 소리도 순식간에 지나갈 정도로 빨라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이동하면서 내는 울음소리의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하나의 사회적 기능이 있는 건 확실하다.

    

우두머리 새와 무리가 상공으로 힘찬 날갯짓을 한 그날이 내가 천변에서 이동하는 철새 소리를 들은 날이었나 보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가 내게 다가온 순간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