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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May 06. 2024

유혹하는 봄

고들빼기 꽃의 유혹은 쓴맛만큼 강렬하다

5월이 되자마자 여름에 버금가는 더위가 왔다. 한낮 기온이 30° 가까이 오른다. 연둣빛 신록은 어느새 초록으로 진해졌고, 듬성듬성 하얗게 산비탈을 물들였던 산벚꽃은 꽃잎을 떨어뜨렸고 이제 아까시나무 꽃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산어귀에도 아파트 화단에도 공원 빈터에도 풀들이 무성해지기 시작했다. 날씨와 풍경의 변화를 따라가기 벅찰 지경이다.


이즈음에 피는 꽃이 고들빼기다. 여러 식물이 경쟁적으로 꽃을 피우는 시기지만 내게는 유난히 잘 보이고 애정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꽃이다. 크게 자라면 무릎을 넘어 엉덩이 높이까지 자라는 데다 아직 다른 풀들은 키를 한창 키우는 시기인지라 우뚝 솟아있다. 큰 키에 꽃이 윗부분에 고르게 모여 피어 시선을 잡기에 충분하다.


꽃은 노랗다. 샛노랗다. 비스듬한 아침 햇살에는 맑고 산뜻하게 빛난다. 한낮의 햇볕은 꽃에 반사되어 눈으로 사납게 달려꽃은 빛보다 더 강렬하게 눈부시다. 석양에는 노을을 닮아가며 붉은 기운을 더하고 저녁에는 꽃잎이 닫혔어도 달이 뜨면 달빛과 함께, 달이 지면 별빛과 함께 노랗다. 내일은 더 샛노랗게 빛날 것이다. 그대로 매혹적이다.

     

꽃을 가까이 보면, 다른 풀꽃 모양과 조금 다르다. 꽃 가장자리에 길쭉한 모양의 꽃잎이 빙 둘러 있고 가운데에 암술과 수술이 모여 있다. 가장자리에 난 개개의 꽃잎은 혀 모양을 닮아 혀꽃(舌狀花)이라 하며 끝은 톱니처럼 갈라져 있다. 대략 20개 내외의 혀꽃이 모여 하나의 꽃을 이룬다. 한 송이로 보이는 꽃이 사실은 여러 작은 꽃이 모인 집합체인 셈이다. 혀꽃의 개수를 하나하나 세어보는 재미도 있다.

     

고들빼기와 비슷한 씀바귀가 있다. 잎이 나는 형태로 어렵지 않게 구분되는데, 고들빼기는 잎이 줄기를 감싸고 있어서 마치 줄기가 잎을 뚫고 나온 것처럼 보인다. 반면 씀바귀는 잎이 줄기를 감싸지 않는다. 씀바귀도 종류가 많은데 고들빼기도 이고들빼기, 갯고들빼기, 지리고들빼기, 까치고들빼기, 한라고들빼기, 두메고들빼기, 왕고들빼기 등으로 다양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 피는 시기도 생김새도 삶터도 각기 다르니  곳이라도 찾아다니서로 구별해 보 즐거운 맛도 있다. 

    

고들빼기의 잎이나 가지를 뜯으면 하얀 액체가 나온다. 우유 같은 액체라 하여 유액이라 한다. 민들레도 하얀 유액이 있다. 유액은 색깔이 다양한데, 애기똥풀 유액은 똥처럼 노랗고 피나물은 피처럼 빨갛다. 그래서 이름도 똥이고 피다.

     

유액은 자신을 지키는 물질이다. 상처 났을 때 피가 굳어져 생기는 딱지처럼 균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쓴맛과 떫은맛 같은 싫은 맛을 내거나 독을 품어 곤충 같은 동물이 함부로 먹지 못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동물의 미각은 이런 맛이나 독성분을 감지하여 먹지 않고 뱉어내기 위해 발달했다고 한다. 우리가 쓴맛에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잠재적인 위험물질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본능적인 방어수단이다. 이런 생존을 위한 감각이 때론 먹는 즐거움을 위한 감각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식물의 독은 치명적일 때도 있지만 인간에게 영향을 줄 만큼 독성이 강하지 않거나 소량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데치고 삶거나 물에 우려 쓴맛과 독성을 순화시켜서 먹는다. 이처럼 입맛을 돋우면 나물이 되고 때론 약으로 쓰여 약초가 되고 지나치면 독초가 되기도 한다.

     

입맛을 돋우는 쌉쌀한 맛 때문에 고들빼기는 꽃보다 식재료로 더 알려진 식물이다. 고들빼기는 맛으로 입맛을 사로잡아 김치로 나물로 쌈채로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되고 요즘엔 재배하는 작물이 되었다. 곰삭은 고들빼기김치의 쓴맛과 신맛은 어릴 적엔 그리 입에 맞지 않았어도 지금은 고향을 추억하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맛이 되었다.


<겨울 로제트, 줄기를 감싼 잎, 꽃에 온 한국꼬마감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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