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이라는 말이 있다. 한자로는 '至賤'이며 "더할 나위 없이 천함"과 "매우 흔함"이라는 2가지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흔하다는 뜻으로 대개 사용하며 특히 꽃이 무리 지어 핀 경우에 쓴다. 국어사전에서도 지천의 사용 예시로 "봄이 한창이라 들에는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를 들고 있다. 나는 여름철 들판에 핀 개망초꽃을 보면 지천이라는 단어를 곧잘 생각한다. 개망초는 한번 자리를 잡으면 군락을 이루며 그곳을 마침내 개망초밭으로 만드니 지천이 어울린다.
개망초꽃이 빛나는 여름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햇볕이지만 개망초에게는 더 특별하다. 개망초는햇볕이 뜨거워지면 꽃이 피기 시작하고 햇살에 부딪혀야 더 하얗게 반짝이며 눈부시다. 한낮 해가 내리쬐는 기운이 뜨겁다. 꽃을 보러 나간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햇살에 지천으로 핀 개망초밭에 서야 제대로 꽃을 즐길 수 있고 그래야 행복하다. 목덜미에 땀이 맺혀 흘러도 더운 줄 몰라야 마음먹은 대로 즐기고 행복한 것이다.
개망초꽃은, 가운데 노란 부분은 가늘고 작은 대롱처럼 생긴 꽃들이(대롱꽃, 관상화 管狀花) 빽빽이 모여있고 가장자리 하얀 부분은 혀처럼 긴 꽃들이(혀꽃, 설상화 舌狀花) 빙 둘러 있는데, 이 개별 꽃이 한데 뭉쳐 꽃다발을 이루어 마치 꽃 한 송이처럼 보인다. 대롱꽃은 씨앗을 맺는 생식기능을 하고 혀꽃은 길고 화려해 곤충을 불러들이는 역할까지 더한다. 많은 꽃이 한꺼번에 모여있어 곤충이 자주 찾는 밀원식물이며 수정도 한 번에 많이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렇게 수많은 대롱꽃과 혀꽃이 모여있는 모습이 마치 머리 같아 머리모양꽃차례라 하며 국화과 식물이 가지는 특징 중 하나이다. 그리고 꽃잎 아래에는 꽃받침 대신 갓털이 있다. 갓털은 씨앗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도록 돕는 기능을 한다. 꽃받침 대신 꽃을 보호하는 역할은 머리모양꽃차례를 둘러싸고 있는 총포(總苞)라는 부분이 한다.
<국화과 식물의 꽃 구조>
이런 특징 때문에 국화과 집안 식물은 씨앗을 많이 생산할 수 있고 또 멀리 보낼 수 있어 난초과 식물과 함께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다. 가장 진화한 식물이기도 하다. 국화과 식물이 모두 대롱꽃과 혀꽃을 함께 갖지는 않는다. 코스모스, 해바라기, 구절초, 곰취는 대롱꽃과 혀꽃 모두 있으나 엉겅퀴, 지칭개, 삽주는 대롱꽃만 있고, 민들레, 씀바귀, 고들빼기는 혀꽃만으로 꽃을 이룬다.
개망초는 깊은 산속에서는 자라지 않고 공원 주변이나 도로변처럼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곳은 물론 빈터나 버려진 땅 어디든 자란다. 거기다 인간의 간섭이 없으면 대부분 큰 군락을 이룬다. 개망초는 뿌리에서 다른 식물의 성장을 억제하는 물질을 내뿜는다. 이 때문에 다른 식물은 잘 자라지 못하게 되고 개망초는 무더기로 자랄 수 있다.
이렇게 화학물질을 이용해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다른 식물의 성장과 생존을 방해하는 현상을 타감작용이라 한다. 소나무와 편백은 잎과 나무껍질에서 타감물질이 나온다. 이 물질이 공교롭게 사람에게는 건강에 이롭고 이들 나무숲 밑에는 풀이 많지 않게 하여 산림욕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 된다.
호두나무, 가죽나무, 단풍나무, 벼도 뚜렷한 타감작용을 보이며 강도에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식물이 여러 가지 타감물질을 만든다. 타감물질은 식물이 만드는 천연 제초제라 할 수 있고 실제로 이런 물질을 이용한 제초제 연구개발이 이루어지고 관련 특허도 출원된단다.
개망초꽃을 보고 있으면 많은 곤충이 찾아와 꿀과 꽃가루를 따간다. 꽃이 크지 않아 작은 곤충들이 주로 찾아오며 간혹 나비도 꽃에 앉아 꿀을 빤다. 진딧물은 줄기에 붙어서 즙을 빨아먹으며 그 진딧물을 먹이로 하는 무당벌레도 여기서 살아간다. 남색초원하늘소는 애벌레와 성충 모두 잎과 줄기를 먹고 줄기 속에 알도 난다. 여러 곤충에게 개망초는 소중한 삶터가 된다. 우리에게도 먹을거리도 된다. 맛이 순해 봄에 어린잎을 데쳐 나물로 먹는다.
뜨겁던 햇살이 무뎌지고 개망초가 씨앗을 바람에 날리더라도 내 마음에 개망초꽃이 있는 한 여름은 가지 못하고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