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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른아침 Jun 15. 2024

왜가리 육추 관찰기록

관찰은 어설펐으나 행복했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학마을이라는 동네가 있다. 이름만으로도 학 서식지와 연관이 짐작되는 데다, 동네 뒤에는 낮은 구릉지에 소나무와 참나무 같은 키 큰 나무가 우거지고 앞에는 먹이 활동을 할 수 있는 논이 넓게 펼쳐지고 큰 강과 지류가 멀지 않게 위치해서 새가 둥지를 틀기 맞춤하게 보이는 마을이다.

    

마을 앞을 지날 때마다 어디쯤 학이 사나 살피곤 했다. 두루미라고도 부르는 학은 겨울 철새이고 멸종위기종이라 쉽게 보이지 않았다. 차로 지나가면서 찾아본 정도로 보일 리 또한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학마을이나 이를 한자로 표현한 학동, 학촌, 학산이라는 지명이 많은데 지형이 학을 닮았거나 학 서식지가 있는 경우에 길조로 여겨 그렇게 부른다는 설명이었다.

    

또한 왜가리와 백로는 여름 철새로 우리나라에서 번식하고 큰 나무에 둥지를 틀고 개체수도 많아 학마을에 이들 새도 흔히 서식한단다. 학마을인 이 동네도 노거수 옆에 세워진 마을 유래비에 '백로마을'이라 새겨있다. '오래전부터 백로와 왜가리가 살았고 많이 찾아온 해에는 풍년이 들고 적을 때에는 흉년이 들었다'는 설명도 함께 기록되어 있을 뿐 학과 관련된 글귀는 없었다.

    

봄에 야생화를 보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나뭇가지를 물고 날아가는 왜가리를 우연히 보았다. 어디로 가는지 눈으로 따라가니 동네 뒷산 어귀에 큰 나무로 날아갔다.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둥지도 새도 많았다. 그동안 왜 찾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많았다. 며칠 뒤 관찰 망원경을 들고 관찰에 나섰다.

      

2024.4.2. 둥지 틀기

왜가리가 집을 짓고 있었다. 긴 목을 줄이고 늘여가며 뾰족한 부리를 요리조리 움직이며 나뭇가지를 엮었다. 부지런히 움직이다가도 털을 고르거나 암수로 보이는 한 쌍이 부리를 맞대가며 호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결혼하고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일은 사람에게나 새에게나 바쁘면서도 즐겁고 행복한가 보다. 새가 알을 낳고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며 키우는 육추 과정을 처음 지켜보기 시작한 흥분이 일었다.

<새로운 시작의 차분함과 들썩임>

2024.5.9. 알 품기

한 달 만에 다시 방문했다. 나뭇잎에 가리지 않아 가장 잘 보이는 둥지를 주된 관찰 대상으로 했다. 포란 중이다. 가끔 서서 주위를 둘러보기도 했다. 포란 기간이 보통 25일 정도라고 했고 4월 초에 방문하고 조금 지났으니 알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뭇잎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둥지도 더 자세히 살폈어야 했다. 치밀하게 관찰하지 않고 금방 철수한 것이 잘못의 시작이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실패는 네 잘못이 아니야 내년도 있어>

 2024.5.25. 어미와 새끼의 구분

주 관찰대상으로 삼은 둥지에서 나뭇가지를 물고 서성이고 있었다. 둥지를 손질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다. 다른 둥지에서는 큰 새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둥지를 틀기 시작한 날이 3월 말경이었으니 25일 정도의 포란 기간과 부화 후 4주 정도면 몸이 어미 크기만큼 성장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쯤 어미 못지않게 커져 있을 시기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도대체 새끼들은 어디 있는 거지?

     

집에 와서 오늘 찍은 사진과 지난날 사진을 비교하고 도감을 다시 꺼내 보았다. 어미는 부리 색깔이 주황색인 반면 새끼는 아랫부리는 주황색이나 윗부리는 검은색이고, 어미는 뒷머리에 긴 댕기깃이 있으나 새끼는 없단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이제 보니 사진에서도 부리와 댕기깃으로 어미와 새끼를 충분히 구분할 수 있었다. 몸도 새끼들이 이미 어미만큼 성장했다. 어미와 새끼의 생김새 차이를 몰라서 관찰을 제대로 못했다.

<부리와 댕기깃 비교해 보기>

2024.6.1. 날갯짓과 사라진 둥지

다른 둥지의 어린 새들은 날개를 퍼덕이며 곧 날아오를 듯했다. '와아악' 소리도 나고 간혹 '가라락' 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는데 제법 우렁찼고 눈매도 사냥의 명수 가문에 어울리게 날카롭게 빛났다.

     

주 관찰대상이던 둥지는 흔적조차 없었다. 허망했다. 주 관찰대상이었던 왜가리는 이번 번식에는 실패했고 나는 사전 공부를 게을리하여 관찰에 실패했다. 사진을 비교해 보니 5.25일 사진의 둥지는 5.9일 둥지보다 나뭇가지가 확연히 줄어있는 것도 이제야 보였다. 관찰하기 전에는 사전 지식을 충분히 쌓아야 하고 관찰할 때는 세심하고 느긋하고 끈질겨야 하며 관찰 후에도 더 따져보고 더 궁금해야 함을 깨달았다.

<희망과 허망 사이>

2024.6.12. 이소와 사냥

날이 더웠다. 어린 새들도 더운지 입을 벌리고 길게 늘인 목을 연신 쿨렁거리며 몸의 열을 뿜어내는 듯 보였다.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이 어미를 기다리는 느낌보다는 어디 날아갈 곳을 모색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볍게 날개를 치더니 공중을 날아 동네 앞 논에 내려앉았다. 모내기 이후로 제법 자리 잡은 벼 사이를 겅중겅중 걷더니 굽혔던 목을 길게 뻗었다. 재빨랐지만 부리에 잡히는 건 없다. 어미는 사냥할 때 긴 시간 꼼짝하지 않고 기다리는데, 어린 새는 연신 걸음을 옮기며 먹이를 찾아다녔다. 머지않아 어미의 인내심을 따라 익힐 시간이 오기 마련이고 강력한 일격을 가할 날도 마찬가지다.

<다 큰 줄 알지~ 근데 아직ㅎㅎ>

이렇게 첫 육추 관찰이 끝났다. 4월부터 6월 중순까지 2달 반 동안 5번 방문했다. 준비와 지식이 부족해서 어설프고 실패에 가까운 결과였지만 느끼고 배운 것이 많은 과정이었다. 즐겁고 행복했다. 그러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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