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용어 토막 정리] 신용도
직장인이 되고 신용카드를 발급 받으면 신용도를 더 자주 확인하게 된다. 요즘엔 신용도를 쉽게 조회할 수 있는 핀테크 앱들이 있어 더 그런 듯하다.
근데 신용도를 보다 보면 한 가지 궁금점이 생긴다.
도대체 누가 내 신용도를 평가하는 걸까?
그래서 오늘은 신용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다음과 같은 목차로 신용도에 대해 한번 살펴보자.
1장. 2003년 카드 대란
2장. PCR과 CB
3장. 신용도의 현재와 미래
우리가 알고 있는 신용도는 언제 생겼을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선 2000년 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봐야 한다. 당시 발생했던 카드 대란이 지금의 신용도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IMF 직후 정부는 소비를 활성화하고 세수를 확대하기 위해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당시 국내 카드사들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마구잡이로 고객 유치 경쟁을 펼쳤다.
때문에 정부의 의도대로 카드 사용액은 급증했다. 98년 63조였던 사용 금액이 2002년엔 622조가 되었다. 4년 만에 10배 가까이 급증한 셈이다.
하지만 고객 심사 없는 무분별한 카드 발급으로 금세 대란이 터졌다. 카드값을 갚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2002년~2003년 사이엔 약 100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증가했다.
카드 대란으로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액의 자금이 투입됐고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다.
사건 후 금융당국은 재발 방지를 위해 카드 대란의 원인을 분석했다. 정부, 카드사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잘못이 있었지만 가장 주요한 책임은 카드사에게 있었다.
카드사는 리스크 관리는 생각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카드 회원을 모집했다. 금융당국은 만약 카드사가 고객 심사를 제대로 했다면 카드 대란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보았다.
그래서 리스크 관리와 관련하여 살펴보니 각 카드사들에 위험 관리 부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들이 잘 나가는 영업팀에 밀려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면 만약 카드사의 리스크 관리 부서에 힘을 줬다면 카드 대란이 발생하지 않았을까? 또 그렇지도 않았다. 그들에겐 리스크를 심사할 효과적인 데이터가 부족했다.
데이터 부족 문제는 카드 대란 당시 1,400만 명이 카드 돌려막기를 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났다. 카드사 간에 고객의 신용정보 공유가 안되니 카드 돌려막기를 방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금융당국은 신용정보 공유 인프라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카드사 간에 신용정보가 잘 공유되면 고객 심사를 효과적으로 하게 되어 리스크가 줄어들 것이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신용 평가에 따라 고객을 다르게 대우하면 사람들이 더 신중하게 카드를 쓰게 될 터였다. 마치 지금의 우리가 카드값이 연체되지 않게 주의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금융당국은 어떻게 신용정보 공유 인프라를 만들었을까? 다음 장에서 한번 알아보자.
금융당국은 2004년 신용정보 공유 인프라를 형성하며 그것을 크게 두 갈래로 나눴다. 첫 번째는 PCR이고 두 번째는 CB다. 둘 다 어려운 말이니 하나씩 살펴보자.
PCR은 사람들의 신용정보를 모으는 기관으로 신용정보 집중 기관이라고도 한다. 초기엔 전국은행연합회를 포함한 5개의 금융협회가 PCR로 선정되었다.
정부는 PCR이 법률에 의해 금융 회사로부터 금융 거래, 카드 개설 등의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세금 체납, 파산과 같은 공공 기록 정보도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래서 PCR엔 사람들의 수많은 신용정보가 쌓이게 되었다. 이전에 각 카드사에 분산되었던 신용정보가 한 곳에 모인 것이었다.
하지만 PCR은 금융 회사를 감독하는 공적인 역할도 맡고 있었기에 데이터를 제대로 가공하여 활용하지 못했다. 때문에 수집한 데이터는 보통 Raw Data, 즉 날 것 그대로인 상태로 남아있었다.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신용정보를 전문적으로 가공하는 민간 신용정보 회사, 즉 CB가 설립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코리아크레딧뷰로(이하 KCB)'라는 CB가 2005년에 설립되었다. 국내 은행/카드/보험사 등 19개 법인이 주주로 참여한 형태였다.
CB는 PCR은 물론 개별적으로 계약한 회사로부터도 신용정보를 확보했다. 신용정보를 가공하기 위해선 더 상세한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말한 '코리아크레딧뷰로'의 경우 국내 20~59세 경제 활동 연령 인구의 거의 모든 거래 내역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처럼 광범위한 데이터를 기반에 두고 CB는 사람들의 신용을 평가한다. CB마다 세부적인 평가 기준은 다르지만 기본적인 틀은 다음과 같다.
위와 같은 요소로 사람들의 신용도를 산출한 뒤 CB는 결과물을 제휴처, 보통은 금융 회사들에게 보낸다. 흐름을 간략하게 도식화해본 그림을 살펴보자.
은행, 카드사와 같은 금융 회사들은 CB로부터 받은 신용 평가 자료를 그대로 활용하거나 아니면 내부적으로 재가공을 한다.
그러니까 결국 정리하면 우리의 신용도(신용등급/점수)는 CB라는 곳에서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카카오뱅크와 같은 곳에서 신용조회를 할 때 아래와 같은 문장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어디서든 손쉽게 신용도를 파악할 수 있는 시대에 살게 됐다. 그리고 그 덕분에 실제로 신용카드의 연체율이 상당히 줄기도 했다. 2003년에 28%였던 연체율이 지금은 2% 이내다.
그러면 이제 거의 고지에 다다른 걸까? 그렇지 않다. 아직 신용도 평가엔 갈 길이 멀다.
카드 대란의 여파로 신용 평가의 초점은 리스크 최소화에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국내 CB는 주로 카드 연체 이력과 같은 부정적 정보를 기초로 신용도를 보수적으로 산출해왔다.
시간이 지나 연체율도 많이 떨어진 지금은 어떨까?
아쉽게도 큰 변화는 없다. 왜냐하면 개인정보 관련 규제로 CB의 발이 묶여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규제로 국내 CB는 수집한 신용정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특히 해외에선 활성화된 신용정보 빅데이터 분석이 국내에선 불가능하다는 점이 컸다. 국내 CB는 개인정보 관련 규제는 물론 겸업 금지 조항으로 빅데이터 분석과 관련해 돈을 벌기 어려웠다.
이런 문제로 그동안 국내 CB 시장은 침체되어 있었다. 규제 때문에 돈 벌기 어려우니 새로운 기회에 투자할 동인이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결국 '코리아크레딧뷰로'와 'Nice신용정보'가 과점하고 있던 국내 CB 시장의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두 회사가 시장의 95% 이상을 양분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국내 전체 CB 수도 겨우 6개에 불과하다. 미국에선 400여 개의 분야별 특화 CB가 경쟁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커보인다. 그만큼 시장의 활성화 정도가 다르다는 얘기겠다.
그런데 CB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게 무슨 문제일까?
바로 우리와 같은 금융 소비자가 더 발전된 신용 평가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용 평가 시스템의 발전이 둔화되면 내게 더 알맞은 금융 상품을 제안받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로 지금도 금융 이력이 부족한 사회 초년생이나 주부 등은 신용 평가가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개인 사업자에 대한 신용 평가도 쉽지 않다고 한다.
그들의 신용을 평가하기 위해선 다방면의 데이터를 확보해 분석할 필요가 있는데 각종 규제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원하는 금융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래도 데이터 활용 관련 규제를 어느 정도 완화해줘야 할 것이다.
다행히도 요근래 국회 및 정부에서 그와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해 1월 국회에서 데이터 활용과 관련된 데이터 3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은 신용정보를 비롯한 다양한 데이터를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고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더 많은 회사들이 CB에 도전할 수 있도록 CB 사업에 대한 인가 문턱도 낮췄다. 침체되어 있던 CB 시장의 경쟁을 촉진시킬 의도다.
이번 개정안을 계기로 기존 CB 회사들은 물론 핀테크 기업들까지 CB 시장에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토스, 카카오 등이 자체 데이터 수집 및 분석에 기반하여 독자적인 신용 평가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다.
만약 개정안이 자리 잡으면 앞으로 신용 평가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기존의 금융 정보뿐만 아니라 쇼핑, 소셜 미디어 등의 다양한 비금융 정보까지도 신용 평가에 반영되는 것이 가능하다.
또 각 분야에 특화된 CB들도 나타나 보다 더 세심한 신용 평가를 해줄 수도 있다. 현재 T맵의 운전 점수가 발전하면 차량 관련 신용도가 되지 않을까? 실제로 지금도 점수에 따라 보험료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미래엔 금융 소비자들이 자신의 신용도를 더 잘 파악해서 더 좋은 금융 서비스를 누리게 해주는 곳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 즉 지금보다 금융 소비자의 선택권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물론 개정안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개인정보가 여기저기서 활용되다 보면 그것을 악용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주장이다. 정부, 기업 혹은 개인 누구에 의해서든 말이다.
그래서 데이터 3법엔 데이터 관리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조항도 추가되어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100% 사고를 방지할 수는 없는 법이니 관련해선 진지한 고민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은 신용도 그리고 그것을 산출해내기 위한 신용 평가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다. 제법 얘기가 길었으니 한번 정리를 하고 마무리해보자!
1. 카드 대란으로 신용정보 공유의 필요성 인식
2. PCR과 CB로 신용정보 공유 인프라 형성
3. CB가 신용 평가하고 신용도 산출
4. But 규제로 정체된 CB의 신용도 시스템
5. 데이터 3법 개정안으로 개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