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쓰며 참 즐거웠지만 그만큼 시간도 빨리 가서 마침내 입대를 하게 되었다. 좀 편해 보자고 공군에 지원했는데 정신차려 보니 힘들기로 유명한 취사병(밥하는 군인)이 되어 있었다.
평소 제대로 된 알바는 물론 자취도 해 본 적 없던 내게 취사의 세계는 말 그대로 이세계였다. 일단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부터 달랐다. 나는 다른 병사와 달리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 준비를 해야 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일어나 300인분의 재료를 거대한 솥에 부어 조리하는 게 어렵고 힘들었다. 군대에 가면 삽질을 한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내가 삽으로 음식을 조리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또 위험하고 시끄러운 주방 특성상 선임들은 항상 고성으로 의사소통 했는데 그것도 무서웠다. 난 주방일을 정말 못했기에 많이 혼났고 선임이 내 이름을 고성으로 부를 때면 잔뜩 쫄아 달려갔다.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스러웠다. 처음엔 울며불며 보직을 바꿔달라 떼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보직은 바뀌지 않았고 난 적응할 방도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힘이 되어 준 것이 일기였다. 일하면서 힘들었던 점, 선임 욕을 일기에 쓰며 고된 마음을 달랬다. 당시 일기장은 군대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와 다름없었다.
근데 매일 그렇게 무언가를 쓰는 행위를 하다 보니 문득 예전에 썼던 소설이 떠올랐다. 내 첫 소설을 다시 읽어 보고 싶어졌다.
당시의 여자친구에게 면회올 때 소설을 뽑아 와달라고 부탁했다. 여자친구와 소설이 함께 올 거라 생각하니 면회가 더 기다려졌다.
여자친구의 면회 후 생활관에 돌아와 나의 첫 소설을 다시 읽었는데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빈틈도 많아 첨삭이 절실해 보였다.
그 뒤로 일과가 끝나면 글을 고치러 연등실(자습실)에 갔다. 마침 취사병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여서 다행이었다.
매일 저녁마다 연등실에 들어가는 나를 보며 선임과 동기들은 날 선비라 놀렸다. 그러면서 글을 쓰는 모습을 신기해 하기도 했다.
글을 고치며 많은 즐거움과 보람을 느꼈다. 매일 반복되는 군생활 속에서 소설 쓰기는 내게 한줄기 빛과 같았다. 영화 쇼생크탈출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모차르트씨가 친구가 되어줬지.
이 안에(머리) 음악이 있었어. 이 안에도(마음)..
그래서 음악이 아름다운 거야.
그건 앗아갈 수 없거든.
그렇게 안 느껴봤어?
- 영화 <쇼생크 탈출> 중
감옥과도 같은 군생활 속에서 소설을 쓰는 시간만큼은 영혼의 자유를 느꼈다. 시간이 빨리 가는 건 덤이었고.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퇴고를 마무리했다. 뿌듯한 마음에 휴가를 나가 소설을 제본해 왔다. 문방구에 가서 한 스프링 제본이었지만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소설을 제본해서 가져오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같은 생활관의 선후임이 내 글을 읽어 보고 싶다고 해 줬다. 처음엔 예의상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다. 나는 긴장되는 마음으로 제본해 온 소설을 보여 줬고 그들은 내 생애 두 번째 독자가 되었다.
그들은 내가 기대한 것보다 더 진지하게 글을 읽어 주었고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군대 안에 별다른 즐길거리가 없어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내 입장에선 감동이었다.
그들이 읽는 모습을 보며 다른 사람도 관심을 보였고 독자가 더 생겼다. 같은 생활관 사람들이 내 소설의 독자가 되어 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독자분들의 감사한 피드백을 반영하여 다시 소설을 첨삭했다. 작가의 눈에 보이지 않는, 독자의 눈에만 보이는 개선점을 확인하고 고쳐 나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이 즐거움 덕분에 낮에는 삽을, 밤에는 펜을 드는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육체적으론 힘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재밌고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