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의 맛.

by JunWoo Lee

첫 소설을 쓰고 나는 달라졌다. 무기력에 지배 당했던 과거와는 달리 활력과 기대감이 생겼다. 해 보고 싶은 게 이것저것 많았다.


그 중 하나가 소설 쓰기를 공부해 보는 거였다. 멋대로 글을 쓰니 구성이 엉성했고 제대로 하는 게 맞는 건가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서점에서 글쓰기 관련 책을 사서 읽었다. 힘 있는 글쓰기, 유혹하는 글쓰기 등등. 이때만큼 글쓰기 책을 많이 읽은 적이 없다.


어설프게라도 소설을 한 번 써 보고 관련된 책을 읽으니 내용이 눈에 더 잘 들어왔다. 실제로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이라는 생각에 더 흥미로웠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책에 밑줄을 치고 중요한 내용을 받아 적고 있었다. 공부가 재밌을 수 있다니. 처음 해 보는 경험이었다.


입시 공부와는 무슨 차이일까 싶어 고민해 봤는데 답은 단순했다. 바로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습득한다는 점에서 입시 공부와는 달랐던 것이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단순 관심을 넘은 더 고차원적인 흥미였고, 그런 흥미를 바탕에 둔 공부는 재밌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살아 있는 지식, 즉 활자(活字)의 맛을 느낀 후 학습관이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면 형성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전에는 학습관이라는 게 없었을 테니까.


이후 내게 학습은 창작에 뒤따라오는 일이 되었다. 어떤 것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 후 그에 필요한 지식을 학습하는 흐름이 자연스러워졌다.


예를 들어 꿈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 꿈에 대해 공부해 보는 식이다. 이러면 공부할 때 글자가 눈에 더 잘 들어온다.


배운 걸 실제로 써먹으니 머리에 더 잘 남기도 한다. 시험이 끝나면 날아가는 휘발성 지식과 달리 지식이 몸에 배는 게 느껴진다.


이 학습관은 지금까지도 잘 유지하고 있는데 생각지 못한 장점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지식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게 해 준다는 점이다.


요새는 시대가 빨리 변하는 만큼 갖가지 지식이 밀어 닥친다. 입시 시절의 나였다면 나중에 어떤 문제를 풀지 모르니 손에 잡히는 대로 공부하다 탈진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도 물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불안감을 느끼곤 한다. 그래도 손에 잡히는 대로 무언가를 배우려 하지는 않는다.


대신 만들고 싶은 게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본다. 만들고 싶은 게 있다면 그것과 관련된 지식을 습득하고 작은 결과물을 하나 내놓는다.


그렇게 첫 번째 마침표를 찍으면 새로 보이는 게 생긴다. 첫 문장을 쓰면 그 다음 문장의 방향이 잡히는 것처럼.


무언가를 만들고 배우는 과정을 거듭하며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식의 홍수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번 방주를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자기 몸보다 조금 더 큰 서핑 보드를 타고 거센 파도를 이겨 내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중요한 건 내가 가진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대하는 태도였다.


지금의 내 학습관은 지식의 홍수를 즐길 수 있는 파도로 느껴지게 해 준다. 한 번에 한 물결씩 파도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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