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역치.

by JunWoo Lee

과학 시간에 역치라는 개념을 배웠다.


생물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것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


첫 소설을 통해 나의 역치에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마법이라도 일어난 듯 첫 소설을 통해 창작에서 얻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기쁨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창작의 기쁨

독자가 생긴 기쁨

창작물이 인정 받는 기쁨


돌아보면 부족한 내 첫 소설에 과분한 기쁨이 주어지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든다. 근데 어쨌든 나의 역치는 첫 소설 이후 높게 치솟았다.


홀인원을 친 사람이 그 감각을 잊지 못해 골프에 더 빠지는 것처럼 나도 창작에 더 몰두하게 됐다. 그 외의 것은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시시한 일로 느껴졌다.


높아진 역치는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고 있는데 장단점이 있다.


단점부터 말해 보자면 현실 상황과의 괴리로 공허감을 자주 느낀다는 것이다. 그때는 행복했는데 지금 나는 뭐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에 우울해질 때가 있다.


제대하고 복학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괴리에서 오는 우울감을 특히 많이 느꼈다. 내가 지금 학교에서 시간 보내고 있을 때가 아닌데라는 생각에 자퇴 생각도 몇 번 했다.


그때는 아직 첫 소설로 이룬 성과에 취해 있던 상황이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심지어는 거만해져서 학우들이 공부하고 취준하는 모습이 시시하게 보인 적도 있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 아래와 같은 대사가 있는데 당시의 내 모습을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자신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것을 거울을 탓해 무엇하랴.

-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중


사실 내 일그러진 마음 탓에 세상이 성에 차지 않게 느껴진 거였다. 당시엔 그걸 몰라서 나 스스로는 물론 소중한 사람에게도 상처를 줬다.


이런 시시한 삶은 살아 봤자 의미가 없다고 하거나, 누구처럼 살고 싶지는 않아와 같은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더더욱 뼈아프다.


다행히 이제는 일그러진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난 여전히 종종 공허감에 빠지고 어쩔 땐 허우적거릴 때도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역치가 높아진 것의 장점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홀인원의 순간에 느낀 기쁨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정진하게 된다는 것이다.


첫 소설의 성과가 운의 작용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그때의 감각을 잊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트라우마만큼 역치의 최고점을 형성한 긍정적인 경험도 심리적으로 크게 작용한다고 믿는다.


다시 한 번 그때의 감각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 나에게 주요한 원동력이 된다. 아마 지금 내 삶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근데 이런 강한 동력이 있더라도 첫 소설로 느낀 정도의 기쁨을 다시 경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만큼 내게 첫 경험은 강렬했다.


물론 비슷한 정도의 기쁨은 앞으로 살며 몇 번은 경험할 것이다. 근데 죽기 직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나 첫 소설 때의 기억일 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 계속 괴리감 속에 살아야 하나라는 걱정도 된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내 삶에 북극성이 하나 생긴 것 아닐까.


닿기 어려운 요원한 거리에 있지만 변치 않고 나의 길잡이가 되어 주는 북극성. 항상 밝게 빛나며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한지 일깨워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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