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과 포부를 가득 안고 제대했다. 기대했던 것처럼 제대 후의 삶은 입대 전과는 달랐다. 적극적으로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
소설뿐만 아니라 중국 관련 글도 쓰기 시작했고 IT 창업 동아리에도 들어갔다. 이때가 내 사이드 프로젝트 역사에서 태동기가 아닐까 싶다.
작지만 다양한 결과물을 하나둘 만들었다. 다 만든 후에는 가족과 지인에게 부지런히 공유했다. 내게는 그게 문장을 쓰고 마침표를 찍는 일처럼 당연한 마무리 과정이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신기해 하는 지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글을 쓰더라도 남에게 보여 줄 만한 게 못 되어 혼자서만 간직하게 된다고 말해 줬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뒤 내가 막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진지하게 글을 읽어 준 사람들에게 더 감사하게 됐다. 그 분들 덕분에 결과물을 주위에 공유하는 게 내게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으니까.
결과물을 주변에 공유하며 참 많은 걸 얻었다.
우선 독자의 반응에서 오는 즐거움을 얻었다. 독자의 반응을 기대하면서 오는 설렘과 실제로 반응을 확인했을 때 느끼는 보람이 크다.
그 다음으론 인연을 얻었다. 내가 세상에 내놓은 결과물은 나의 분신이 되어 세상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나의 분신 덕분에 새롭게 만나 인연을 맺게 된 사람이 있다.
이런 장점으로 결과물을 주위에 공유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 요새는 친구들에게도 결과물을 공유하는 걸 적극 추천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꾸준히 결과물을 공유하며 한 가지 느낀 점이 있다. 바로 나의 결과물에 대부분의 사람이 피상적인 관심만을 갖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글을 썼다고 하면 99%의 사람이 나의 글을 실제로는 읽지 않는다. 그냥 얘가 글을 썼네라는 정도의 사실만 인지할 뿐이다.
사람들의 피상적인 관심이 처음엔 아쉬웠다. 근데 지인을 만나 얘기를 들으며 피상적인 관심이 오히려 좋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지인들은 내 글을 읽지는 않았지만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꾸준히 무언가를 만드는 행동 자체를 좋게 봐 준 것이다.
피상적인 관심에서 비롯된 피상적인 평가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큰 힘이 되었다. 내 껍데기도 나의 일부일 테니까.
만약 많은 사람이 내 결과물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면 부담이 컸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그러면 나 스스로의 만족보다는 타인의 평가를 더 신경쓰게 되었을 것이다.
처음 무언가를 만들 때 스스로의 목소리를 듣는 게 중요하다고 믿기에 피상적인 관심 정도가 딱 적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나가며 어깨 몇 번 두드려 주고 가는 느낌.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말처럼 결과물을 공유하는 이 창작버릇은 어디 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좋은 버릇을 갖게 해 준 독자분들과 관심가져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