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의 나래.

by JunWoo Lee

어디에선가 소설가가 만족도가 높은 직업이라는 글을 봤다. 실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체감한 적이 있다.


중국 광저우로 교환 학생을 갔을 때 시간이 남아 소설을 하나 썼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을 소재로 한 SF 소설이었다.


어느 날 소설의 다음 전개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환기도 할 겸 기숙사 앞 운동장을 걸었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걸으니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갔다.


어떤 갈래의 전개가 제일 재밌을까. 이야기는 어떤 가능성으로든 이어질 수 있었다. 갈래 하나 하나를 살펴보며 고민하는 게 참 즐거웠다.


그때 문득 내가 소설 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소설을 쓸 때 느끼는 한창 때의 기분을 좋아하는 거였다.


무엇이든 꿈꿀 수 있던 초등학생 때의 나처럼 소설 속 인물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세상이 창조된다.


물론 소설 또한 이야기가 막바지에 이를수록 선택지가 좁아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설렘은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면 내가 쓰고 있는 소설 자체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나의 소설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고 그 누군가가 출판사의 편집자일 수도 있다. 어쩌면 베스트 셀러가 될지도 모른다.


대학, 취직 등 점차 선택지가 좁아지는 나에게 소설은 한창의 나래를 펼치게 해 줬다. 교환 학생 이후의 일로 걱정이 많을 때였지만 소설을 쓸 때만큼은 자유로웠다.


사실 이건 소설 쓰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모든 창작에서 난 한창 때를 경험한다.


글을 쓰든 앱 서비스를 기획하든 무언가를 만들 때 뻗어 나가는 여러 갈래의 가지들. 이 가지들에서 잎사귀가 돋아나고 난 그것들을 통해 광합성을 한다.


한창의 나래를 펼친 결과물이 하나둘 쌓이다 보니 그것들이 발하는 싱그러움이 내게도 번진다. 나의 창작물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도 여러 갈래의 가지가 자라난다.


취준, 직장인... 이것 이외의 다양한 선택지가 희미하지만 보이기 시작한다. 요새는 나 자신에게서도 한창의 나래를 펼쳐 볼 때가 있다.


내가 작가 혹은 강사 또는 숙소 주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낳은 자식들이 불어 넣은 바람에 마음이 살랑거린다.


물론 현실이 그렇게 바람대로 이뤄질 정도로 쉽지는 않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어쩌면...'으로 시작하는 문장이 있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설렘이다.


나로부터 뻗어 나간 가지에서도 푸른 잎사귀가 나고 열매가 맺기를 바라며 열심히 가꿔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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