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수양 없는 성취란
2024년이 어느덧 이틀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연초에 새해 결심을 하듯 연말에는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올해도 스펙터클했다. 이전 해에는 상상도 못 한 한 해를 보내는 것이 디폴트 신년 목표인데 24년에는 제대로 이뤘다.
2024년 1월의 나에게 12월의 나는 지평선 너머의 존재다. 1월의 난 12월의 내가 뚝섬에서 고독의 서재를 운영하고 있을 거라 상상이나 했을까.
정주하지 않고 지평선 너머의 세계로 나아가서 만족스럽다. 여행자로서의 삶을 잘 살고 있다.
이번 여행의 의미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 취향이 움트기 시작한 것, 오프라인 기획 일에 도전한 것 등 셀 수 없이 많다.
일상이 많이 바뀌었다. 주말마다 서재가 있는 뚝섬에 가서 청소를 하고 손님을 받는 게 보통 일이 됐다. 뾰족한 관심사가 생겨서인지 눈에 들어오는 것도 많아졌다.
서재를 준비하고 운영하면서 어떤 걸 얻고 잃었는지는 에세이 두문즉시심산(杜門卽是深山)에 정리해 두었다. 여행기라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한 해를 돌아보니 내가 정리하지 않은, 아니 정리하기 꺼린 이야기가 있었다. 지평선을 넘었더라도 달라지지 않은 내 모습에 대한 이야기.
출판전야라는 고독의 서재를 준비하며 바뀌길 기대한 내 모습이 있다. 타인의 시선과 관심에서 벗어나 고독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나는 이에 실패했다.
미셸 드 몽테뉴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세상사에 집착하는 한 수도원에 가든 사막에 가든 그것은 언제나 우리를 따라다닌다.
서재를 만든 이유. 늪과도 같은 성취 욕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성취욕.
수도원을 만들면 수도사의 마음가짐을 지니게 될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는 부분도 없지 않다. 수도사의 마음을 이해해야 수도원도 잘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출판전야를 준비하며 고독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 고독의 서재를 운영하려면 누구보다 고독에 대해 잘 알아야 했다.
나를 포함한 현대인에게 고독이 결핍되어 있다는 말이 와닿았다.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되어 있기에 그만큼 희소해진 고독의 가치를 출판전야를 통해 발굴하고 싶었다.
그간의 탐구 덕에 근사한 서재가 탄생했다. 밑줄이 잔뜩 그어진 책들이 서가에 꽂혀 있다. 고독과 관련된 글귀도 이곳저곳에 배치되어 있고. 다녀간 손님들의 반응도 좋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나는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났는가?
앎과 실천은 다르다. 메리앤 무어가 외로움의 치료 약은 고독이라 했는데 모순적이게도 서재를 시작한 후 나는 더 외로워졌다.
짝이 아닌, 나 자신의 결핍에서 비롯된 외로움. 책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에서 언급된 외로움에 나는 시달렸다. 난 고독이 아닌 고립에 빠졌다.
내가 혼자 있든 누구와 함께 있든 나 자신이 내게 결핍되어 있을 때, '내게 결핍되어 있는 그 누구'가 다름 아닌 나 자신일 때, 이런 상태는 고립이다.
외로움이라는 결핍은 과시로 드러났다. 서재 홍보용이라는 포장지를 씌웠지만 알맹이엔 과시 욕망이 들어선 게시글을 인스타그램 개인 계정에 올렸다. 서재 홍보용이라면 서재 계정에만 올려도 충분했을 것을.
대학생 때 배운 이야기 플롯이 떠오른다.
어떠한 결함을 갖고 있는 주인공.
그는 심각한 문제에 휘말려 여정을 시작한다.
고군분투를 거쳐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하여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에게선 전에 갖고 있던 결함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저 성취를 더 잘하는 사람이 되어 돌아온 게 아닐까. 관심을 받기 위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한 건 아닐까. 여정을 통해 내 결함이 오히려 강화된 건 아닐까. 완전히 부정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여정에서 드러난 스스로의 민낯. 고독의 서재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울 따름이다. 수도원을 만든다고 수도사가 되는 게 아니었다. 수도사(修道士)가 되기 위해선 스스로를 갈고닦아야(修道) 했다.
스스로를 표리부동한 사람이라 여기니 앎과 실천이 대동한 사람 앞에 서면 움추러든다. 내 민낯이 간파당할까 봐 두렵다.
고독의 서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서재지기인 내가 자리 잡지 못했으니까. 관심을 갈구하며 밑 빠진 독에 성취를 들이붓는 미련한 행동을 반복했다. 거듭된 실수로 밑에 뚫린 구멍이 더 커졌을지도 모른다.
연말에 호되게 자기반성을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고된 여정을 거치고도 고쳐지지 않는 억센 습성을 발견한 것도 수확이라면 수확이겠다. 어쩌면 가장 의미 있는 깨달음일지도.
내년에는 성취보다 자기 수양이 먼저다. 밑 빠진 독을 고독으로 고치는 일. 글렌 굴드의 가르침에 따르기로 한다.
고독 속에 '머무른다는' 것, 이것이 어려운 점이다.
계속해서 존재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유지하기.
존재하기.
상대방이 그곳에 없을 때조차 존재하기를 멈추지 말 것.
그리고 정체감 보존하기.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기.
다행이다.
수도원은 준비되어 있으니 이제 핑곗거리는 없어졌다.
+
어쩌면 나는 이 글조차 타인의 관심을 얻기 위해 썼을지도 모른다.
내년 연말 회고 글은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