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냄새는 왜 이렇게 진한가
아침부터 민원인과 전화로 언성을 높인 일이 있었다.
민원인은 임대인이고, 사건은 화재였다. 민원인이 월세를 준 집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임차인이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당사자가 사망한 상황이라 가스레인지 위에 물을 올려두고 깜빡 잠든 것 같은 실수로 난 불인지, 고의로 낸 불인지 알 수가 없어서 사건 수사는 종결되었다. 문제는 그 뒤부터였다. 전소에 가깝게 타버린 집을 마주한 집주인은 황망했을 것이다. 날벼락도 유분수가 아닐까. 현장에 갔을 때 까맣기만 한 집에 금줄처럼 쳐져있던 경찰의 테이프가 기억이 난다.
경찰에는 범죄 발생 현장에 오염이 심각한 경우 그 현장을 청소해 주는 제도가 있다. 원래 취지는 유가족 등이 사건 현장을 치우다가 외상을 입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자신의 가족이 사망한 흔적을 치운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는가. 이 취지를 기반으로 현장이 훼손된 경우에 특수청소 업체를 선정하여 그 비용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살인, 강도, 중상해, 방화 등의 강력범죄로 인해 범죄피해자의 집 등이 훼손되었거나 혈흔, 악취 등 오염이 발생한 경우가 대상이 된다. 원칙적으로만 보면 위의 사건은 지원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집주인이 죄가 있나! 하지만 날벼락을 맞았고, 사망한 세입자의 가족은 집을 청소할 경제적인 여력이 되지 않았다. 당장 유족이 되어버린 것만으로도 황망할 상황이었다. 그래서 특별승인이라는 제도가 있다. 원칙 외에 예외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경우에 특별히 승인을 받아서 시행하는 것인데, 여기에 실화(=실수로 불이 난 것)가 포함된다.
청소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집이 전소되다시피 타버린 상황이라 치워도 완전히 새것처럼 되지는 않았다. 골격만 남기고 모두 치우는 걸로 이야기가 되었다. 안타까운 점은 업체 선정이다. 특수청소를 하는 업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혈흔이나 악취는 누구나 기피하고 싶은 일이고, 개인 간 거래라면 서로 견적 내고 돈 내면 끝날 일이지만 경찰이 끼는 순간 해야 할 서류 처리가 늘어난다. 귀찮을 수밖에!
어떻게든 업체를 2군데 이상 구하고, 견적을 받아서 선정하고, 청소를 시행하고, 돈을 지불한다.
하지만 늘 싫은 소리를 듣는다. 민원인도 그런 이유로 전화를 한 것이었다.
1. 내게 직접 그 돈을 줬으면 더 좋게 청소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 된다. 돈을 직접 줄 수 없다.
2. 현관문을 비용은 왜 지급을 해주지 않는가!
인테리어 비용이라 그렇다.
3. 내가 피해자인데 왜 피해자가 아니라고 하는가, 피해자가 아니면 왜 도와줬느냐!
…………..휴.
내 돈은 아니지만 도와주고도 욕을 먹으니 기분은 좋지 않다. 나도 사람이니까.
반면 현장정리가 도움이 된 피해자도 있다.
피해자는 살인 사건의 유족이었다. 피해자는 사무실에서 가해자로부터 습격당하여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피해자의 혈흔이 사무실과 건물에 여기저기 남았고, 이는 온전히 유족의 책임이 되었다. 막말로 가족이 살해당한 것도 서러운데 청소를 하라고 사무실 임대인으로부터 계속 연락이 오는 것이다.
최대한 빨리 업체를 선정하고, 청소를 시작했다. 수사를 위해 여기저기 뿌려진 과학수사팀의 약물도 닦고, 사무실 밖 공용통로에 뿌려진 말라붙은 혈흔도 닦았다. 혹여 냄새가 날까 봐 탈취와 소독도 함께 진행했다. 유족이 이 과정을 참관할 필요는 없었다.
이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흉기로 머리를 때린 특수상해 사건이었는데, 피해자의 집 안에서 일어났다. 피해자는 급히 응급실로 이송되었고 치료 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자신의 피로 어지럽혀진 집을 마주했다. 그 뒤로 코에서 피 냄새가 사라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피 냄새는 왜 이렇게 진할까.
오늘도 00구 특수청소를 포털에 검색해 본다.
누군가는 피 냄새에 좀 둔감했으면 좋겠는데, 나부터도 그렇지가 않아서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