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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듀발 Jul 12. 2023

주거이전비

피해자가 왜 손해를 봐야 하나요

나의 부모님은 이사를 싫어하셨다. 덕분에 나는 태어나서 독립하기 전까지 한 동네에서만 살았고, 이사를 하긴 했으나 층만 바꾼 정도였다. 독립한 후에는 3번의 집을 경험했는데, 이사를 할 때마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매번 느낀다. 왜 이사를 싫어하셨는지 이제는 좀 알 것도 같달까.


이렇게 이사는 큰 이벤트다. 품도 많이 들고, 돈도 많이 든다. 그렇기에 범죄 피해 과정에서 주거지가 노출된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은 크다. 주거지가 노출되었고, 추가 피해 우려가 있는 경우 피해자에게 이사를 권유하게 되는데 그때 피해자들이 많이 하는 얘기 중에 하나가, ‘저는 피해자인데 왜 제가 이사를 가야 하죠?’이다.


당연하다. 범죄자가 이사를 가야지! 우리가 조두순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고, 피해자가 오랫동안 거주했던 지역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분노했는가.


하지만 현실이 그렇질 않다. 가해자가 이사하게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이사를 권유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전적인 부분 전체를 국가가 도와줄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있는 것이 ‘주거이전비’ 지원 제도이다.


‘주거이전비’ 지원 제도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범죄 혐의가 확인되어 검찰로 넘어간(송치된) 사건의 피해자 중 경제 범죄 피해자가 아닌 경우에 범죄 피해로 인해 주거지를 이전하게 되면 포장이사나 용달 등 실제 이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 100만 원 한도 내 실비로 1회 지원하는 제도이다. 스토킹, 성범죄, 주거침입 등 피해자들에게 유용하게 쓰인다.


하지만 이 지원제도도 사각지대가 있다.


성범죄 피해자인 민지 씨는 가족들과 함께 아파트 13층에 거주하고 있었다. 민지 씨는 대학생이었고 방학 중 아르바이트를 마친 후 밤에 귀가하던 중이었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3층을 눌렀을 때 남자 한 명이 따라 탔고 왠지 찝찝한 마음에 민지 씨는 13층을 취소하고 11층을 눌렀다고 했다. 남자는 층수를 누르지 않고 지켜보다가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자 민지 씨를 바라보고 서서 자위행위를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11층에 도착할 때까지 민지 씨는 죽을 것 같은 공포 속에 있었다고 했다.


가해자는 금방 검거되었고 강제추행으로 사건은 검찰로 송치되었으나 민지 씨는 그때 이후로 엘리베이터를 못 타겠다고 했다. 고심 끝에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구하기로 하고 주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명백한 ‘주거이전‘이지만 용달을 부르지도, 포장이사를 부르지도 않았기에 주거이전비는 전혀 지원받지 못하였다.


민지 씨는 아쉬워하며 혹시 부동산 중개비를 지원해 줄 수는 없냐고 했으나, 100만 원에 한참 못 미치는 그 금액은 지원할 방법이 없었다. 아쉬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임대주택에 사는 경우도 비슷하다. LH의 임대주택 제도로 살고 있던 집에서 범죄피해를 당하는 경우, 이사가 더욱 쉽지 않다. 일단 그 보증금과 월세에 맞는 집을 갑자기 구하기가 쉽지 않고, LH에서도 바로 구해주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럴 때 결국은 당장의 월세나, 중개비를 지원해 주는 게 더욱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현실은 여전히 ‘이전’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애초에 ‘주거이전비’ 지원 제도의 목적은 피해자가 환경을 바꿔 안전을 도모하고 이로 인한 피해 회복을 이루길 바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만 더 융통성 있게 적용하면 어떨까.

몇 억짜리 아파트가 아닌 이상 중개비가 100만 원을 훌쩍 넘는 일은 없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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