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 너머 피해자의 이야기
범죄피해자를 돕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서 강의할 때마다 꼭 강조하는 지원제도가 범죄피해평가다.
https://m.blog.naver.com/polinlove2/223046322339
안녕하세요, 경찰청 구독자 여러분! 경찰이 범죄 척결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범죄 형...
blog.naver.com
피해자는 대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수사관이 인간이길 기대한다. 그래서 자신의 고통을 알아주고, 이해해 주고, 도닥여주길 바란다. 그렇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하는 게 범죄수사인데!
드라마나 영화 같은 매체에서도 수사관은 늘 정의롭고 피해자의 편이다. 피해자를 의심하는 수사관을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보통 그 사람 빌런이다… 나중에 감찰 조사받아서 옷 벗고 감옥 가고 그러는….
아무튼 우리는 정의로운 사회를 기대하기 때문에 형사절차에 포함되는 순간 큰 실망을 피할 수 없다. 현실 형사절차에서 피해자는 주인공이 아니다.
형사절차는 국가(경찰, 검찰)와 범죄자의 싸움이다. 피해자는 검찰이 범죄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돕는 ‘살아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는 국가가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언제,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지 말이다. 그렇기에 수사관은 피해자에게 해당 정보를 제공받길 원한다. 경찰서에 담당 수사관과 약속을 잡고 진술해 본 사람이라면 아마 굉장히 건조했던 경험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피해자와 면담해 보면 피해자가 경찰에, 특히 담당 수사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보통 그 하고 싶은 말은 사건에 대한 객관적 정보를 넘어선 피해에 관한 이야기이다. 범죄의 결과일 때도 있고, 범죄의 역사일 때도 있다. 피해자는 이런 이야기가 경찰의 수사와, 더 나아가 범죄자 처벌에 큰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위로도 필요하다.
범죄피해평가는 어떻게 보면 이러한 진술로는 부족한 피해자의 욕구를 충족하고, 향후 범죄자 처벌에서의 양형에 반영할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피해자는 피해평가전문가(으레 심리상담사)와 두 번의 만남을 갖는다.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의 간격을 두고, 각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장소는 경찰서로 고정되어 있어 편의에 따라 카페 등에서 만날 수 없다. 경찰서 오기 싫은 피해자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안전과 비밀보장 등의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두 번의 면담 중 첫 번째가 중요한데, 이때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2차 피해에 대해 청취하고, 심리검사 2가지를 실시한다. 그래서 1시간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이 시간 동안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와 이로 인한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치료적 효과도 있고 피해자전담경찰관에게 필요한 지원 설계에 대한 정보도 제공해 주게 된다. 그래서 피해자전담경찰관과 피해평가전문가 사이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면담에서의 내용을 기반으로 전문가는 피해평가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감수위원(보통 교수급)에게 감수받은 후 2차 면담 때 심리검사의 결과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고 혹시 1차 때 말하지 못한 내용이나 변경된 사안이 있는지 확인하여 최종 보고서를 확정하게 된다.
보고서는 피해자전담경찰관에게 제출되고, 피해자전담경찰관은 이를 담당 수사관에게 제출, 담당수사관은 보고서를 수사기록에 포함시켜 향후 검사, 판사가 범죄자 처벌 시 양형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
최근에는 피해평가 전문가가 법정에 증인으로 소환되어 진술을 하기도 하고, 보고서가 증거로 채택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피해자의 이야기에 조금씩 더 많이 귀 기울이는 세상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피해평가가 있었다면 원한 가진 귀신이 좀 없지 않았을까? 사람 죽고 나서 무슨 소용이냐고? 그건 맞다..
좀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어제 본 드라마 ‘악귀’에서 자살한 사람의 유가족 역할이 한 대사가 생각난다.
‘그때 제가 그렇게 말했을 땐 들어주지 않더니’
점점 저런 대사가 안 들렸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