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어느 날 북경에서-魏公村

이제는 사라진 신강거리

by 백검

사람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학창 시절인 같다. 대학을 졸업하여 사회에 진출한 지도 20년이 지났지만, 그때가 그립고 그 시절 친구들이 그립다. 그래서 그 시절을 상아탑에 비유하는지도 모른다.


북경에서 4년 본과만 다니다 보니 결국 4년이란 여태 살아온 50여 년의 역사에서 10분의 1밖에 안 되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그리워서 북경 간 김에 들려 본다.


오늘 간 곳은 중앙민족학원(中央民族学院,1993년에 중앙민족대학으로 승격되나 습관상 중앙민족학원이라 많이 불림)과 북경이공대학(北京理工大学) 중간에 위치한 위공촌(魏公村)이다. 간혹은 魏公이라 하여, 명나라 만력제 때 국정농단의 주인공-내시 위충현(魏忠贤)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위공촌은 엄격히 얘기하면 위구르 민족과 관계된다. 어찌 보면 초기에는 위구르 민족의 집성촌으로부터 출발했다.


칭기즈칸의 손자 구빌라이가 원나라를 세운 후, 위구르민족의 수령은 원에 굴복하였으며, 그 결과 대량으로 위구르 인재들이 중앙에 채용하게 된다. 지금에 비하면 부총리급에 임명된 자도 있고, 장관이나 대사로 임명된 자도 꽤나 있었는데 이들이 집거한 마을을 당시 畏吾(위구르 고대 명칭)들이 거주한다 하여 畏吾村(WEIWUCUN, 위오촌)이란 불렀다. 중화민국 건국 후 1915년에 측량을 하면서 본래 畏吾村을 魏公村으로 변경하였다.


주로 위구르 민족들이 많았고, 위구르 민족 식당들이 많았다. 위구르 민족은 이슬람을 믿기 때문에 위구르 식당 부근에 다른 민족 식당들은 끼여 들 엄두도 못 냈다. 위구르 민족 친구들이 싸움실력도 대단했겠지만 단합도 잘 되어서

원래 양 옆에 위구르 식당들이 있었던 곳, 유명한 아반티 식당도 있었다. 지금은 양옆에 오피스만 무성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다. 20년이 지나 니 강산이 두 번 변했나, 추억에 남았던 장소들이 가뭇없이 사라졌다. 위구르 식당들이 많아서 신강거리(新疆街)라도 불리 었던 거리다. 필자가 대학 다닐 때에는 거리에 양꼬치 굽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는 데 말이다. 지어는 식당 밖에도 기다란 화로에 연탄불을 피워 놓고 그 위에 양꼬치를 쫙 펼쳐놓고, 왼손으로 부채를 들고 양꼬치를 향해 흔들고, 오른손으로 까끔은 쿠민(孜然)과 고춧가루, 그리고 소금가루를 살짝살짝 뿌리면서 간을 맞추던 위구르 젊은 이들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없다. 폐를 찌르던 양꼬치 냄새도 없고, 하얀 사각모를 쓰던 위구르 젊은 이들도 없다. 조금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구수 했던 호객소리도 사라지고, 콩코리트 건물이 홀연하게 서있다.


북경의 부동산 붐에 신강거리도 허물어지고 새롭게 단장했는 데, 좀 기억도 좀 남겨주시지.

부동산회사나 그놈 회사의 회장이나 돈 밖에 모르는 모양이다. 건물 용적률을 무리할 정도로 합리화한 오피스들이 빽빽하게 서있다.


신강거리 중간쯤에 서 있는 야시장

원래 하나둘씩 있던 식당들이 이 건물 안에 들어갔나 살펴보니 그것도 아니다. 대학 때 식당들도 하나도 안 보이고, 인터넷에서나 이름을 들어 보았을 듯한, 체인점 같듯한 식당들이 옹기종기 들어 가 있는 같다.


내가 왕년의 신강거리에서 가장 좋아하던 도삭면(刀削面)도 없다. 실망이다.

이 거리에 유일한 신강요리점-巴依老爷


돌고 돌아 거의 20여분 만에 찾은 유일한 신강요리점-巴依老爷이다.

오늘 목표가 신강거리에서 신강음식을 먹는 것이라 서슴없이 들어갔다.



巴依老爷 2층 홀 안, 위구르 식으로 인테리어.


히잡을 쓴 이슬람 여성들도 보이고, 은으로 된 주전자도 보인다. 장식도 이모저모로 깔끔해 보인다. 근데 뒤편에 술들이 보인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은 술을 안 마시는 게 아닌가?

혼자서 주문한 위구르 음식: 양꼬치, 산나물, 야채가 풍부한 국수,


물컵에 있는 것은 肚包肉(작은 양의 고기를 위에 보쌈처럼 싸서 삼은 음식)이다.


양꼬치는 역시 위구르 양꼬치가 최고다. 연변에서 먹은 양꼬치와 차원이 다른 맛이 난다. 양자체도 다른 같고, 조리할 때 소스도 좀 다른 같다. 즙도 적당하게 있어서 씹는 감이 배가 되는 같다. 좀 느끼할 까 싶으면 주전자 안에 있는 밀크티를 마시면 된다. ㅎㅎㅎ

위구르 풍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이슬람 풍이라 해야 하나.

위구르의 생활풍습을 수놓은 양탄자

위구르 하면 역시 춤이다. 도이라, 돔브라등에 맞춰 춤추는 여성들.


위구르는 흥이 많은 민족이다. 하여 남자나 여자나 춤에 능한데, 춤의 특성이 어깨를 잘 활용한 다는 것이다. 두 손을 모아지거나 혹은 살짝 올린 채 어깨를 좌우 양옆으로 흔들면서 추는 동작이 많다.


청나라 때 건융제가 당시 위구르왕인 아리화탁왕의 둘째 딸 함향공주를 총애했다고 하는데, 향수냄새도 중요하지만 춤도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춤을 추면서 은은한 향수냄새를 풍겼으면, 그 아무리 산전수전 다 겪은 황제라도 그 미모에 그 향기에 그 분위기에 취해 반하지 않을 수 없을 같다.


중국 유명한 요리 평판을 받은 간판들


이 식당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요리 들이다. 입점할 때 알았으면 다른 고민 없이 그대로 주문했겠는데, 먹고 나오니 보인다. 다행히 메뉴판에 있는 별점표시를 보고 주문했으니 거의 비슷하게 했지만.


魏公村이 많이 변해서 그래서 추억의 魏公村을 찾지 못해서 사뭇 아쉬웠 는데

그런대로 정통 신강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그 아쉬움을 조금이 나마 달랠수 있었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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