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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乱世)에서 난(蘭)을 보다.

제주한란전시관

by 백검

살다 보면 가끔 애매모호한 것들을 많이 보게 된다.

역사를 뒤척이다 보면 가끔 반전에 놀라기도 한다.


피로 얼룩 찐 강자의 역사

영국의 식민지 압박 정책에 반발하여 미국독립선언을 발표하여, 현대 미국의 정치기반을 닦은 독립선언서를 보면 그렇다.

이런 내용이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창조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사람"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그때 당시 독립선언을 발표한 13개 식민지 전체 인민들.

아닐 것이다. 미국의 국부-조지 워싱톤도 300여 명의 노예를 데리고 있었다고 하며, 지어 노예들의 치아를 통째로 빼서 자기한테 이식했다 하지 않았는가?


노예취급이 공공연히 있는 상황에서 "평등한 창조"와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어디 있는가.

그리고 13개의 주에서 현재 50개의 주로 발전하기까지, 원주민인 인디언에 대한 피비린 탄압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민주 자유와 평등과는 상당한 격리감이 있는 오히려 그 초기의 역사는 종족멸살에 가까운 미국의 근현대사를 보노라면, 역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정책을 펼치면서 전통 우방들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관세 방망이를 흔들고 캐나다와 아이슬란드에 대한 영토 야욕을 공공연하게 내비치는 등등을 보노라면 더욱 그러한 같다. "미국 우선주의 정책"하에서 어찌 보면 모든 게 미국과 미국이 아닌 것 이렇게 이분화되는 같다.


진흙탕 같은 요즘 정세에 한 마디 남기고, 오늘의 문장을 본격적으로 쓰기로 한다.


제주도에서 살면서 올레길도 3번 완주할 정도로 많은 곳을 누볍지만 유일하게 못 가본 곳이 있다. 한란(寒)이다. 제주 시내에서 멀지 않은 한라수목원에 온실이 있어 여러 번 가 보았지만 번번이 헛물켜고 말았다.


꽃 중의 군자, 깊은 산계곡의 가인이라 불리는 "란(蘭)"이라서 꼭 보고 싶었는데, 인터넷에서 우연하게 한란전시관 관련 글을 보고 그대로 직행했다.



공자와 난

동아세아 문화에서 란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유교문화에서 선비들이 선호하는 매란죽국(梅兰竹菊)에서 난은 가장 중요한 꽃으로 인정되고 있다. 유교를 체계화한 공자가 "지초와 난초는 깊은 숲 속에서 자라지만,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향기를 중단하는 일이 없다(生在幽谷,不以无人而不芳)이라면서 난의 향기와 고귀함을 높게 샀다.

또한 착한 사람과 사귀면 지초와 난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되면 그 향기를 맡지 못하니 그것은 그 향기에 동화되기 때문이다.(与善之交,如入芝兰之室,久而久之不闻其香,即与之化矣。)라며 난초에 대한 명언을 남겼다.


공자가 난을 극찬한 덕에, 유교를 숭상하는 동아시아에서는 난의 입지가 4 군자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후세의 사대부들이나 유생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시와 노래로 그리고 그림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나라 잃은 슬픔을 난초에 담은 정사초

남송 유민 정사초(郑思肖) 화백의 묵란도(墨兰图) , 일본 오사카시립미술관 소장

남송이 몽골이 세운 나라 원나라에 의해 멸망된 후, 송나라에 대한 그리움과 국토를 상실한 슬픔을 그림으로 표현한 정사초 화백.


정사초의 자는 所南翁으로 우리말로 해석하면 남쪽을 바라보는 늙은이이다. 남송의 수도가 있었던 항주가 당시 남쪽에 있었다.


송나라 멸망 후 원나라 통치자가 그 명성을 흠모하여 그림을 부탁했으나, 엄격히 사절했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뿌리와 그것을 덮은 흙이 없는 것이 특색인데, 그 원인을 물으니 "나라를 이미 잃었거늘, 난초의 뿌리가 어떻게 땅에 있을 수 있겠는가?(国土不存,兰根焉能着地)"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청나라 도광제때 난초가 그려진 자기

난초가 사대부들의 많은 사람을 받다 보니, 그림뿐 만아니고 일상생활용품 지어는 복장에까지 등장하게 된다.


유교문화가 한 반도에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선비들의 난초에 대한 사랑도 지극했던 모양이다.

조선 말기 난이 그려져 있는 청화백자(靑畫白磁)


제주한란전시관

제주시내에서 차로 1시간 달려간 한란전시관.

옆에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한란서식지가 있어 전시관을 둘러본 후, 잘 정리된 야외산책로를 따라 피톤치드를 마시면서 유유하게 산책하기 좋다.

한란전시관 외경



제주 한란(寒兰)

개화기가 보통 11∼1월로, 추울 때 꽃이 핀다 하여 한란(寒蘭)이라 불린다.

하여 혹시나 추운 겨울날 한라산 등산길에 하얀 눈을 비집고 곱게 핀 난초를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이다.


한라산 해발 700m 미만 시오름과 선돌사이의 상록수림 밑, 그리고 서귀포시 돈내코 입구 근처에서 군락을 이뤄 자랄 정도로 환경에 대한 요구가 까다롭다.

기러기가 날아가는 듯한 모양이 인상적이다.


함초롬한 한란


외부온실에서 본 벽옥처럼 빛나는 춘란(春兰)

봄을 알리는 난초라 하여 보춘화(报春花)라고도 부른다. 비취색 잎과 담담한 꽃이 소박하게 어울려서 , 과하지도 않으면서 부족함도 없는 그런 마음속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꽃이다.


고중을 다니는 그래서 아직 세속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딸내미를 보는 같아서 즐거웠다. 이제 1년 후이면 대학이라니 세월이 빠르긴 빠른 같다.


춘란(春兰)


서식지에서 자라는 한란한테 보호막을 설치한 모습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에서 과거 사대부들과 문인들이 좋아했던 난초, 하지만 지금은 돈 많은 사람들이 키우는 사치품이 되었다.

가격이 백만 원에서 많기는 30억에 이르는 난초가 있다 하니 금초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괜히 옛날 선비들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깨끗하고 청렴하며 고상했던 기개가, 돈거래 속에서 그 빛을 잃어버릴까 저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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