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꽃샘추위도 물러가고 햇볕도 한결 따스한 가운데 서귀포 칠십리시공원에서 국제 걷기 대회가 열린다 하여 직행했다. 한 때는 장거리 트레일러닝에 심취되어 있었지만 관절에 너무 무리가 가는 같아서, 요즘은 가볍게 해안도로를 따라 조깅하는 수준으로 줄이고 주말엔 걷기나 등산을 즐기는 편이다.
매화꽃과 유채 꽃이 여기저기 아담하게 핀 칠십리공원을 산책하다가 문뜩 며칠 전 도립공원에서 본 정방폭포를 그린 그림을 보고 충격받았던 생각이 나서 정방폭포를 찾았다.
아름다운 폭포에 너무나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어서 묵념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같아서다.
제주는 예로부터 신선이 살고 있는 섬으로 간주되어 왔다.
설화에 의하면 설문대할망이 치마에 흙을 담아 나르며 한라산을 만드는 중 그중 일부가 흘러내리면서 쌓아져 360여 개 오름을 만들었다고 한다.
혹자는 제주에 일만 팔천의 신령님이 있다고 하다. 물론 신령님이 많으니깐 절도 많고 당도 심방도 많다.
올레길을 다니면서 혹은 해안가에 작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당(堂)들도 많이 보아 왔고, 살풀이나 굿판을 벌이는 장면들도 자주 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한여름 폭우가 스쳐지나 오름에 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면서 그 속에서 유유자작하게 거니는 신선이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중국 도교문화에서 먼바다에 신봉하는 신선이 살고 있다는 봉래(蓬莱), 방장(方丈), 영주(瀛洲) 3개 산이 있는데, 중 영주(瀛洲)는 제주도의 한라산이라는 전설이 있다. 하여 이씨조선 말기 문인 이한우(李汉雨)는 제주도에서 풍경이 가장 빼어난 열 곳을 뽑아 영주십경(瀛洲十景)이라 부르고 시를 짓기도 하였다.
서복(徐福)이 진시황의 어명을 받들고 신선이 살고 있다는 제주도에 상륙하여 장생불로약을 찾은 후 서귀포 정방폭포를 지나면서 서불과지(徐市过之)를 써놓았다고 한다. 서귀포(西归浦) 유래도 이것과 관계있다고 한다.
이씨조선 말기 편찬된 "파한록"에 의하면 1877년 제주 목사 백난연이 서불과지 전설을 듣고 사람을 파견하여 정방폭포 절벽에서 탁본까지 떴다고 하니, 그러한 유래가 훨씬 전부터 전해 내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복이 제주뿐만 아니고 경상남도 남해 금산에도 흔적을 남겼다고 하나 아쉽게도 세월이 흘러 글자인지 그림인지 구분이 안된다는 연구결과가 20년 전에 나온 적이 있다.
춘추전국시대 6국을 통일하여 진(秦)나라를 세운 영정(嬴政)은 시황제(始皇帝)로 자칭할 만큼 자부감이 컸으나 유독 해결 안 되는 게 장생불로였다. 온 천하가 손바닥에 들어오니 천하의 미녀도 자기 것이요 제부도 자기 것이요 권력 역시 자기 것이니 그 영화부귀를 계속 누리고 싶었을 것이다.
트럼프가 고희(古稀) 나이에 천륜지락을 즐겨도 모자랄 판에 미국대통령에 재도전한 것도 어찌 보면 진시황의 그때 심정과 비슷할 까 싶지 않다. 천하를 호령하고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그 쫀쫀한 멋에 맛 들여져 권력을 놓기 싫었고 그래서 찾은 방법이 진시황은 장생불로였고, 트럼프는 대통령 재도전이었다. 물론 현실 가능한 방법만 있다면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대통령 하고 싶을 것이다. 장담컨대.
정방폭포는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주상절리가 잘 발달된 절벽을 따라 물갈기를 휘날리며 떨어지면서 생긴 것인데, 가히 장관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무더운 여름날에 시원한 폭포물에 발을 잠그고, 하얗게 부서지는 작은 물방울을 맞으며 더위가 한방에 날아가는 그 통쾌감이 압권이다. 아마 서복도 거기에 매료 되어 절벽에 글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나도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라는 정방폭포의 멋진 장관에 매료 되어 매번 많은 사진을 담아 오군 한다. 아마 다름 사람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유쾌한 기억으로 남겨져야 할 정방폭포에 대한 생각이 도립미술관에 전시된 <4.3 미술 네트워크 특별전: 빛과 숨의 연대>을 보고 나니 바뀌었다.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색 바탕에 한국 초대대통령인 이승만 입가에 조소 섞인 웃음 같기도 하고 헛웃음 같기도 한 것이 보여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진을 찾아보았다.
사진에서 서 있는 위치로 보았을 때는 이승만 그리고 기타 수행원들이 바다 위를 바라보면서 웃고 있는 모습이다. 정용성 화백의 그림이 그 웃음 그리고 그때 당시 화면을 완벽하게 재현하였다.
왠지 마음이 침울함을 벗어나서 답답하다. 그 답답함이 서복공원을 가로 지나 4.3 유적지 위령공간에 가니 침통함으로 변한다.
겨울 추위에서도 견결하게 꽃을 피우는 제주도 정신을 상징하는 동백꽃, 그 아래 큰 글씨로 쓴 4.3이 날아와서 마음속에 꽂힌다.
원래는 당시 학살이 발생한 정방폭포와 소남머리 해안절벽 부근에 위령비나 위령공간을 만드는 게 맞으나, 위령공간 설치를 반대하는 일부 주민과 상인들의 반발로 서복전시관 한편에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통계에 따르면 정방폭포에서 희생된 피해자는 255명, 그중 젖먹이 다 보니 이름도 안 적힌 3살 그리고 4살짜리 애기도 보이고, 7살짜리 어린이도 눈에 띄인다.
유죄추정(有罪推定)이 난무하던 때라 지만 애들은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인가?
둘러보다 학살터로 예상되는 해안절벽을 내려 보았다. 바다 밑에 깔린 용암이 칠흑 같은 어둠을 연상시켜서 마음이 무거운데, 그 위에 소복이 핀 유채꽃이 당시 무고히 살해된 영혼들을 기리는 같아서 한참 묵념하고 돌아 섰다.
역사적으로 민족이나 종족에서 발생한 아픔은 한순간에 우연하게 혹은 단발적으로 발생했을지 모르지만, 그 아픔은 세대를 넘어 길이길이 전해지고 있다.
일제가 식민지기간에 저지른 악행이 그러하다. 한반도 위안부문제가 그렇고 중국에서 행해진 대량학살이 그러하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의해 살해된 12만 6천 명의 조선사람의 코가 묻혀있는 귀무덤도 그러하다.
역사 증거를 다 소멸해 버리고 역사책을 통째로 고치지 않은 이상에 말이다.
거대한 태풍처럼 제주도를 휩쓸고 갔던 4.3 학살사건이 제주도에 남긴 아픔과 상처도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4.3 학살 그리고 더 나아가 6.25 전쟁 같은 사건들이 다시 재발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물론 625 전쟁 등이 발생한 원인 등에 대해서는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정리해 놓았으니 여기서 구구하게 쓰지 않으련다.
개인적으로 냉전의 한축으로서의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이익다툼의 희생품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미국이나 소련 입장에서는 각자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좋게 말하는 대변인 나쁘게 말하면 괴뢰나 꼭두각시가 필요한 것이었지, 민족과 통일을 우선시하는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은 그 강대국의 영향력이 한반도 정치에 투영되고,
특정 정치세력의 특정 정치목적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면서 선동되고 확대되고 또 재해석되면서, 결국 팩트 체크도 없는 fake news까지 대량으로 만들어져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도 한다.
문제는 과거 77년이 지난 지금에도 똑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냉전의 당사국인 소련도 해체되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도 36년이 되는데, 이곳은 여전하다.
아직도 케케묵은 이념놀이를 하는 짓거리를 보면 참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대다수 국가들은 이젠 이념보다는 국익을 위주로 돌아가는데 말이다. 특히 한국의 일부분 정치인들이 가장 숭배하고 열렬히 따르는 트럼프와 미국도 국익을 위해서는 이념이 다른 국가들이나 전제주의 국가들과도 손을 잡는데 말이다.
현재 좌와 우로 선명하게 갈라진 여론과 시위행진 대오와 정치인들을 보면서, 77년 전의 43 사건이 생각나는 것은 노파심일까. 안타깝고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