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변하는 것이 강산뿐이겠는가.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바뀌기도 하고, 평지 위에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가 들어서기도 한다. 사람의 세상도, 마음도, 사랑도 그렇게 변한다. 일편단심이라 믿었던 마음은 세월의 풍파 속에서 바래고, 님은 남이 되었다가 끝내 원수가 되기도 한다. 활화산처럼 뜨겁던 사랑은 어느새 남극의 얼음처럼 차갑게 식어버린다.
언어와 문자도 다르지 않다.
세종대왕이 1443년에 창제하고 1446년에 반포한 우리 글은, 백성을 향한 사랑에서 태어났지만 약 육백 년에 가까운 시간을 지나오며 수없이 흔들렸다. 변화의 원인은 언제나 글자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권력과 계급, 외세와 교육이었다.
1. 천대받은 문자, 권력을 건드리다
훈민정음이 세상에 나왔을 때, 가장 격렬히 반대한 이들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지배층이었다. 사대주의에 깊이 젖은 양반과 지식인들은 “언문은 나라의 근간을 해친다”, “체통을 망친다”는 말로 한글을 몰아냈다. 그러나 그 말들은 명분이었고, 실상은 두려움이었다.
한문을 독점하는 자가 지식을 독점했고, 지식을 독점하는 자가 권력을 쥐었다. 과거시험은 한문이었고, 관료의 문서는 한문으로 오갔다. 글자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계급의 울타리였다.
연암 박지원은 이 썩은 풍토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새벽 오경에 일어나 무릎을 꿇고 앉아 『동래박의』를 외우는 장면은, 학문이라기보다 의식에 가까웠다. 글은 살아 있는 생각이 아니라, 얼음 위를 굴리는 박처럼 미끄러져야 했다.
이 기이한 풍토는 오래도록 잔향을 남겼다. 오래전, 서울의 한 대학 강의실에서 칠판 가득 적힌 정체 모를 한자를 보며 느꼈던 씁쓸함이 아직도 기억난다. 간체도 번체도 아닌, 사전에서도 찾기 힘든 글자를 학생들 앞에 늘어놓으며 권위를 세우는 모습은 우습기도 하고, 어딘가 애잔하기도 했다. 글이 소통이 아니라 거리두기의 장치가 되는 순간이었다.
2. 말살의 시대를 지나 살아남은 말
1894년, 고종의 칙령을 통해 법률과 공문서에서 국문을 본으로 삼는 원칙이 세워지며 한글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우리 말은 ‘천대’의 단계를 넘어 ‘말살’의 위기에 놓였다. “내선일체”, “황국신민” 같은 구호 아래 조선어는 교육과 행정에서 밀려났고, 말은 사적인 공간으로 쫓겨났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정체성의 저장고였기에, 더 철저히 통제되었다.
광복 이후 한글은 국어의 지위를 회복하고 제도화되었지만,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구라, 바게쯔, 노가다, 시다바리 같은 말들이 생활 속에 남았다. 말은 죄가 없지만, 그 말이 들어온 역사적 경로는 기억해야 한다.
3. 마구재, 단어 하나에 남은 국경의 그림자
시간의 척도에서 한국어의 역사가 권력과 외세의 굴곡이었다면, 공간의 척도에서는 디아스포라의 경험이 또 다른 흔적을 남겼다. 중국 연변, 연해주, 중앙아시아로 흩어진 사람들의 말은 고향의 언어와 현지의 언어, 그리고 시대의 폭력이 뒤섞인 결과였다.
그중 하나가 “마구재”다.
어떤 설명에 따르면 마구재는 저고리 위에 덧입는 웃옷, 마고자를 가리키는 사투리다. 실제로 강원도 방언 자료에서는 그렇게 쓰인다. 그러나 연변에서의 “마구재”는 전혀 다른 의미로 기억된다. 그것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고, 동시에 공포를 부르는 신호였다.
할머니는 “마구재”라는 말을 할 때마다 혀를 찼다. 일본이 항복한 뒤 마구재들이 들어왔고, 해가 지면 여자들은 밖에 나가지 못했다고 했다. 밤은 길었고, 침묵은 깊었다.
‘이해’라는 이름의 면책
전후 독일에서 소련군에 의한 대규모 성폭력과 약탈은 오랫동안 금기처럼 다뤄졌다. 피해 규모는 지금도 논쟁적이지만, 그 참상이 컸다는 사실만은 부정하기 어렵다. 이 맥락에서 자주 인용되는 말이 있다.
“피와 불과 죽음을 헤치며 수천 킬로미터를 행군해 온 병사가 잠시 여자와 즐기거나 작은 장신구 하나쯤 챙기는 것을 왜 이해하지 못하느냐.”
이 말이 사실 그대로였는지, 의역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사고방식이다. 고통을 근거로 폭력을 이해시키는 순간, 폭력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허용된 규범이 된다.
중국 동북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약탈과 군기 문란이 이어졌고, 이를 제지하려던 중국군 장교가 거리에서 목숨을 잃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해가 지면 여자들은 숨었고, 남자들은 시계와 가죽옷을 벗었다. 말은 입에서 사라지고, 공포는 단어가 되었다.
그 단어가, 마구재였다.
맺음말
술자리에서 오래전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떠오른 “마구재”는, 단어 하나가 어떻게 역사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강산이 변하듯 언어도 변하지만, 어떤 변화는 진화이고 어떤 변화는 상처다. 상처는 종종 잊힌 단어의 뒤편에서, 조용히 숨 쉬며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오래된 단어를 다시 불러야 한다. 그것이 남긴 공포와 침묵까지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
마구재는 그렇게, 잊히지 말아야 할 말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