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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규 Apr 24. 2019

다수를 위한 디자인 VS 모두를 위한 디자인

당신이 속한 곳은 다수인가 소수인가? 다수라면 축하한다. 허나 소수라면?

요즘을 살아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바꿔서 이야기해보자.
몇 가지의 조건을 ‘소수인 누군가’의 것으로 변경하면 당신의 삶을 그야말로 극악의 난이도로 바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휠체어를 타고 지금 다니는 직장에 출근해야 한다면? 그리고 직장에서 회의도 하고 밥도 먹고, 황사로 목이 칼칼해 근처 약국에라도 들러야 한다면 그 일을 지금처럼 쉽게 해내기란 여간 어집지 않을 것이다. 휠체어 하나 때문에 교통수단도 그간 다니던 길도 모두 바뀔 것이며 그간 쓰던 여러 가구들이 얼마나 불편한가를 느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상황과 환경에서 타인을 바라보고 이해한다. 건축, 인테리어, 사무용 가구 등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 또한 이를 사용하는 다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디자인을 한다. 자본주의에서의 효율을 추구하다 보니(다시 말해 돈이 되다 보니) 다수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수혜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주차장을 설계한 사람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많은 차들을 주차장에 넣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렇다 보니 옆 차를 긁지 않을 정도의 공간으로 차들을 배치한다. 만삭인 임산부나 유모차를 가진 다수가 아닌 사람들에겐 다수의 주차장이 조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불편한 곳이 될 터이다.

‘평균'이라 여겨지는 사람들의 평균치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함께 사용하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들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노인들을 위한, 임산부를 위한, 어린아이를 위한, 장애인을 위한, 왼손잡이를 위한 등 다수라 여기는 특징에서 조금 벗어난 사람들도 함께할 수 있는 세상. 우리는 이를 경계 없는 디자인(Barrier Free Design), 통칭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라고 한다.
* Barrier Free Design은 처음부터 장벽이 존재함을 가정하고 시작했고, Universal Design은 처음부터 보편성을 중심으로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그 의미는 조금 다르다.

도시는 편리함을 추구하는 문명이 집합되어 있는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 불가피한 공간이다. 도시에 거주하는 모든 이에게는 모든 시설과 공리를 쉽게 이용하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평등한 권리가 있다. 이를 공간 영유의 권리라고 한다. 한편, 장애인의 공간 영유의 권리를 위해 시작된 무장애 디자인 혹은 유니버설 디자인은 1950년대의 미국 공민권 운동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이후 로날드 메이스(Ronald Mace;건축가/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유니버셜 디자인센터 소장)라는 장애인 건축가가 1974년 UN 장애인 생활환경 전문가 회의에서 주창한 유니버셜 디자인의 개념을 통해 본격화가 이루어졌다. 메이스는 장애의 여부, 성별과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과는 무관하게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사용하기에 용의 해야 하며, 그로 인해 사회의 모든 구성원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애인 접근성을 위한 배리어 프리 디자인’이라는 책을 통해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의 개념을 이렇게 정의했다.

‘물리적 장벽을 포함해서 환경, 제도, 정책 등 다양한 방면의 장애물을 허무는 디자인, ‘경계가 없는 디자인(Barrier Free Design)’

이 그것이다.

유모차나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타고 내리는 환승 경로를 알려주는 무의의 ‘서울 지하철 프로젝트’ 도 이런 배리어 프리 디자인( Barrier Free Design)의 개념을 적용한 것이다.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디자인들을 별도로 만드는 것보다 처음부터 누구에게나 편하도록 만든 보편(Universal)적인 개념이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직까지 많은 것들이 그렇지 못하다.

서울 지하철 프로젝트의 시뮬레이션 플로우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이너

디자이너가 이런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는 공감(empathy) 단계가 필수다. 내가 디자인한 물건과 서비스를 다양한 관점과 그 대상에서 바라보는 공감이야말로 배리어 프리 디자인( Barrier Free Design)과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노인이 되어 하루를 체험해보는 노인생애체험의 경우도 이런 적극적인 공감 단계이다. 타자가 관찰을 하는 시선과 직접 ‘대상’이 되어 삶을 살아보는 것은 굉장한 차이가 있다.

노인생애체험 프로젝트의 한 장면(이미지:조선닷컴)

특히 이런 공감 능력은 정책 입안자들과 경영자들이 갖춰야 할 능력이다.

일본의 광역 및 기초지자체 남성 단체장들은 임산부들의 삶을 공감하기 위해 7.3kg의 특수 제작된 임부 체험 키트를 입고 임산부를 체험했다. 그들이 체험한 일상적인 흐름의 ‘다른 하루 체험’은 전혀 일상적이지 않은 다른 시각과 경험을 그들에게 제공했다.


https://youtu.be/oj6n8tlSGRg

日 남자 도지사들, 무게 7.3kg 옷 입고 임산부 체험 (영상 : Youtube SBS 채널)



파킨슨 환자를 위한 숟가락을 디자인하는 Liftware는 2014년 구글의 X팀에 인수되었다. 스스로 음식을 먹는 것조차 누군가에게는 상상할 수 없이 어려운 일이다.


https://youtu.be/WiVQcgmIi08

파킨슨병 환자를 위한 스마트 스푼 (영상 :Youtube)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은 종종 인간의 권리(또는 존엄. Human Right)와 함께 다니는 단어이기도 하다. 특정한 누군가를 배려하여 따로 도시와 삶의 일부를 디자인하기보다는 누구나에게 보편적일 수 있는 삶을 제공하는 것. 어찌 보면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의 개념은 다양성을 보편성으로 삼는 여유와 배려가 당연시되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휠체어도 두 다리로 성큼성큼 뛰어 올라가는 사람도 모두 좋은 계단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가수/시각장애인)도 사용하는 손목시계 브래들리는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의 아주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쿨해 ‘보이는' 시계 브래들리는 시각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는 *타임피스(Timepiece)이다.


*타임피스  브래들리는 시간을 보아야 하는 시계(Watch)가 아닌 타임피스(Timepiece)이다.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처음 등장할 당시에는 장애인과 노인 등 소수자의 거주환경 개선을 위한 물리적 장애를 제거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근자에는 물리적 장애에서 벗어나 무장애 공간, 주거, 환경, 도시 등으로 확장되어 ‘Barrier Free Life Style’로 발전, 제도적 장애를 포함한 모든 분야에 걸쳐서 사용되며,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을 표방하고 있다.


장애인과 노인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계단 대신 경사로를 설치하고, 문턱이나 단차를 없애는 것, 통로와 문의 적정 간격을 유지하거나 제품의 사용성을 높이는 다양한 설계의 변경을 반영하고 있다. 손잡이의 위치와 모양은 물론 기능적인 개선 등 노인과 장애인을 배려하던 개념의 과거와 달리 어떠한 사용자도 사용하기 쉽고 편리하게 제품이나 환경을 디자인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적용 범위의 폭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유니버셜 디자인센터(美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에서 공표한 유니버셜 디자인을 위한 7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유니버셜 디자인을 위한 7가지 원칙

1. 공평한 사용 (equitable use)

    누구라도 차별감이나 불안감,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공평하게 사용 가능한가?

2. 사용상의 융통성 (flexibility in use)

    서두르거나, 다양한 생활환경 조건에서도 정확하고 자유롭게 사용 가능한가?

3. 간단하고 직관적인 사용 (simple and intuitive)

    직감적으로 사용방법을 간단히 알 수 있도록 간결하고, 사용 시 피드백이 있는가?

4. 정보 이용의 용이 (perceptive information)

    정보구조가 간단하고, 복수의 전달수단을 통해 정보 입수가 가능한가?

5. 오류에 대한 포용력 (tolerance for error)

    사고를 방지하고, 잘못된 명령에도 원래 상태로 쉽게 복귀가 가능한가?

6. 적은 물리적 노력 (low physical effort)

    무의미한 반복동작이나, 무리한 힘을 들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자세로 사용이 가능한가?

7. 접근과 사용을 위한 충분한 공간 (size and space for approach and use)

    이동이나 수납이 용이하고, 다양한 신체조건의 사용자와 도우미가 함께 사용이 가능한가?



유니버셜 디자인 개념을 정리한 로널드 메이스.  그는 1급 소아마비를 갖고 있다.



References

https://www.liftware.com/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22/2010102201180.html

http://www.wearemuui.com/kr/specialproject/

https://www.youtube.com/watch?v=oj6n8tlSGRg

https://ko.wikipedia.org/wiki/%EC%9C%A0%EB%8B%88%EB%B2%84%EC%84%A4_%EB%94%94%EC%9E%90%EC%9D%B8

https://www.kickstarter.com/projects/eone/the-bradley-a-timepiece-designed-to-touch-and-see


풍년사를 운영하고 강아지와 함께 살아갑니다. 자전거를 좋아하고 덕질을 덕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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