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기원부터 오늘까지
브랜드라는 단어를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나온다.
브랜드의 유래는 네이버 지식백과에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조사를 해본 분들이라면 <그림 2>와 같은 많은 자료들에서 브랜드(Brand라는 단어)가 불(fire)이나 타오르다(to burn)에서 유래되었다고 보셨을 터이지만 이는 사실과 조금 차이가 있다.
고대 노르웨이어 ‘brenna(불타다)’가 고대 독일어 ‘bærnan’을 거쳐 영어의 ‘burn’이 된 것은 맞다. 그러나 브랜드라는 단어는 고대 노르웨이어인 Brandr(불타는 나무장작이나 막대 따위)를 기원으로 하고 있다. 이후 횃불, 화염이나 불꽃 등의 의미들이 보태어지면서 고대 영어인 ‘brond’ 혹은 ‘brand’가 되었다.
이 시기의 ‘brand(혹은 brond)’라는 단어는 ‘bran~’, ‘bron~’이 의미하는 ‘burn’을 내포하고 있지만 스틱 형태의 나무 따위를 말하는 접미어‘~dr’가 붙어 Brandr라는 단어의 원형을 거의 유지하며 확산되어 현대에 ‘brand’라고 전해지게 된 것이다. 고대 프랑스에서는 빛을 반사하여 눈부시게 빛나는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brandiss(칼, 곤봉 등 무기를 휘두르다; 고대 프랑스어의 동사형은 -iss. 현재의 형태로는 brandir)’라는 동사로 사용했고, 이는 영어의 ‘brandish’가 되었고 ‘brand’가 명사형 ‘날을 가진 기다란 무기’의 의미 또한 갖게 된다. 다만 brand는 칼 등의 무기를 지칭할 때는 그 대상이 검(sword)으로 제한되는 것은 앞서 설명한 고대 프랑스어의 기원에서 기인한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더 자세한 언어학적 분석은 *1)Two Old Germanisms of East Romance (Adrian Poruciuc, 201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는 가축(간혹 사람)의 소유권을 표기하는 도구로 불에 달궈진 쇠막대를 이용했는데, 이때 쓰는 불타는 금속 막대를 Brand라 불렀고, 이 막대가 남긴 낙인도 자연스레 브랜드라 불리게 된다. 유럽의 낙인 관습은 가축뿐만 아니라 양조장이나 와이너리에서의 화인으로도 사용되었고, 후에는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한 본래의 용도와 달리 죄인을 벌하는 도구로도, 나치 독일의 수용소에서는 유태인에게도 사용되었다.
바다를 건너 서부 개척시대의 미국에는 유럽에서 이주한 많은 이들이 가져간 것 중 ‘브랜드’라는 관습도 함께 넘어왔다.
1800년대의 미국은 산업화와 함께 상업화도 가속도가 붙었다. 공산품 내지는 생산품들은 거래(trade)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거나 경쟁제품과의 차별성과 오너쉽을 주장하기 위한 마크(심벌 또는 이름;브랜드)가 필수였다. (거래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표기한)이 표식들이 ‘trademark’, ‘particular mark of goods’라는 용어로 마케팅의 한 귀퉁이에 정립(Oxford Dictionary)되어 생산자와 소비자의 보호와 행정, 산업 육성 등을 위한 법적/제도적 시스템으로 정착된다.
Brand is a legal statement of ownership (Crainer, 1985), also a mark to designate the ownership (Broadbent and cooper, 1987). Oxford dictionary (2009) has defined brand as “a particular sort or class of goods, as indicated by the trade mark on them”. Now the question arises, what is the extent and basis of legal protection? How valuable are they? Evidently, Legislation offers protection up to some extent (Isaac, 2000)
*2) European Journal of Business and Management, 2012
인간은 소유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난 후에는 늘 소유를 주장하고 관철시키려 해왔다. ‘원시적인’ 개념의 브랜드의 역할은 (그저 이름을 써두는 것 정도의) 소유주를 확인시키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사회는 점차 복잡해졌고, 분화되었으며 특정인이나 세력이 보여준 신뢰의 상징(e.g. 고대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의 교역품이나 생산물에 표기한 심벌)으로 이용되었기 원시 브랜드는 통상이라는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좋은 기반 개념이었다. 물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뿐만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묻기 위한 도구(e.g. 고대 이집트 건축물의 벽돌에 있는 생산자 표기)이기도 했다.
브랜드는 동양문화권에서도 서구권과 비슷한 형태의 진화를 거치며 자리 잡게 된다. 서예나 서화 등의 낙관이나 도공들이 남긴 서명, 상단의 이름 외에도 가축이나 소유물에 남기는 낙인도 이용되었다. 부득이한 경우 다른 대안도 등장했는데 대표적으로 ‘시치미 떼다’ 할 때의 *3)시치미도 그러한 도구였다.
한편 중세시대의 서구에는 집단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이익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길드라는 조직이 튼튼히 자리 잡고 있었다. 이들은 1600년대에 비해 크게 쇠퇴한 1700년대의 상공업 경기 속에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길드 소속원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정한 표기를 통해 독점권을 행사했는데, 이는 훗날 상표법의 유래가 되었다. 이 시기부터 생산품에 상표를 표기하는 것이 관행화되기 시작했다. 20세기의 저작권, 특허 관련 법령의 모태가 되는 법령들이 이 시기를 전후하여 이탈리아(Patent Law, 1474)와 영국(Copy Right Law, 1709) 그리고 프랑스(Trade Mark Law, 1857)에서 제정되었다.
이후 산업혁명과 경제성장, 인구의 증가는 공급자가 제공하는 물리적인 상품뿐만 아니라 그것의 속성이나 품질, 공급자(를 대표하는 사람이나 구성원, 지역 등)의 이미지에 이르는 모든 것이 무형의 자산으로 법적 의미가 확대되어 공급자와 소비자의 보호, 산업의 육성에 이르는 기능을 수행하며 오늘날에 이른다.
Next : 브랜드의 구성
*1) Adrian Poruciuc. Two Old Germanisms of East Romance (Romanian ateia ‘to dress up’ and brânduUå ‘crocus’) confirmed by West Romance cognates, The Journal of Indo-European Studies, Volume 39, Number 3 & 4, Fall/Winter 2011
*2) European Journal of Business and Management Vol 4, №3, 2012
*3) 시치미란 백제시대부터 행해졌다는 매사냥에 쓰이는 매에 매어놓은 뿔로 만든 편 형태의 태그인데, 수할치(응사;매사냥꾼)의 정보를 이곳에 남겨두어 배가 불러 도망간 매를 타인이 발견하면 시치미를 보고 ‘임자가 있는 매이니 놓아’ 주거나 주인을 찾아 주었다. 더러는(아마도 많이) 이 시치미를 떼고 자신의 시치미를 달고 모르쇠 하여 ‘시치미를 떼다’라는 속담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