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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ia Dec 10. 2021

탐페레를 사랑하는 만화가 이야기, 나와 미코와 안니키

Minä, Mikko ja Annikki (2014)

언뜻 제목만 보면 삼각관계에 관한 만화 같다. 여자 이름인 '안니키'가 여기서는 탐페레의 목조건물 지역을 뜻한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말이다. 독자들에게 보다 정확하게 책의 주제를 알리기 위해서인지 영문판에는 '핀란드 도시의 커뮤니티 러브 스토리'(A Community Love Story in a Finnish City)라는 부제가 붙었다.


커뮤니티란 무엇인가. 내 생각에 그건 '동네'다. 거주민들이 매일 각자 퇴근해 자기 집 철문을 닫고 잠이 들며 재개발이나 집값과 관련된 이슈가 생기기 전까지는 이웃과는 아무런 용무가 없고 어쩌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거나 층간소음, 주차 문제로 다툴 뿐인 오늘날의 공동주택(주로 아파트)이 아니라 <응답하라 1988> 같은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골목마다 아이들이 함께 놀고 서로 음식도 나눠먹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던 곳 말이다.


이렇게 말하지만 나도 안다, 각박해진 현대사회의 바쁜 일상 속에서 우연히 한 동네에 살게 된 이웃들에게 시간과 정성을 쏟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핀란드에서도 저렴하지만 화단을 정리한다든지 눈을 치운다든지 하는 공동체 활동(talkoot)이 필요한 연립주택(rivitalo)이나 땅콩주택(paritalo)보다는 이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단독 주택이나 관리회사가 따로 있는 아파트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말이다.


책은 아주 먼 옛날 탐페레 지역에 빙하기가 끝나 강이 모래와 돌을 나르며 자갈로 된 능선(harju)의 좌우로 호수가 생겨나고, 중세시대에 Tammerkoski 마을이 영지로 바뀌었다가 1779년 스웨덴의 구스타프 3세가 Tammerkoski 시를 만들 때까지를 두 페이지로 압축해 보여주며 시작된다.


'나', 티투는 젊고 유망한 만화가이다. 예술가답게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면도 있는 그녀는 만화를 읽는 긴 머리 공대생 미코를 만난다. 여러 번의 축제와 파티에서 마주치던 두 사람은 같이 살게 되고, 안니키 지역의 오래된 목조건물(puutalo)을 분양한다는 소식에 입주 신청서를 내게 된다. 이 책은 이런 '나'와 미코의 연애사와 지난한 내 집 마련하기 스토리에 산업화로 도시가 형성된 탐페레와 안니키 지역의 역사를 교차시키면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1809년 핀란드가 러시아 제국의 일부가 되면서 대량생산 수요가 생겨나자 1820년엔 스코틀랜드 엔지니어 제임스 핀레이슨(James Finlayson)이 탐페레 지역에 공장을 세우고,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드며 산업화되는 지역사가 그려진다. 당시 여성과 어린이들은 값싼 노동력 정도로 여겨졌는데, 1897년에서야 기혼여성이 직업을 가질 수 있었고, 1930년 혼인법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기혼녀의 재산은 남편이 처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지나치게 감상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탐페레의 명소 중 하나인 나시네울라(Näsinneula) 전망대가 보이는 곳에서 티투는 미코에게 탐페레 예술대학교가, 공업고등대학교가 없었더라면 두 사람은 만났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며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이런 성격의 티투이기에 바닥도 없고, 칠도 다시 해야 하고, 벽도 터야 하는 옛날 집을 덜컥 샀을지도 모르겠다. 목조주택은 티투 커플과 이웃들의 무수한 땀과 노력으로 점차 집으로 변해간다.


도시의 성비 불균형 심각해 미혼남녀 비율이 1:2였, 주방이 5개인 공동주택에 200여 명이 모여 살기도 했던 과도기를 거쳐 1900년대 초반에는 개별 부엌과 수도를 갖춘 집들이 생겨난다. 마당에 별도로 마련된 화장실은 여전히 재래식이었지만, 공동으로 쓰는 공간이 아니라 문에 집 번호가 적혀있었단다. (오늘날의 세대별 창고 같은 느낌...?)


1917년 러시아 혁명과 함께 수요가 사라지면서 공장 근로자들이 많던 탐페레 지역에는 실업이 만연하게 된다. 핀란드 내전 이후 회복되는 듯했던 도시는 겨울전쟁을 맞이하고, 60~70년대 재개발과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목조주택은 점차 슬럼화 된다. 이후 해당 지역을 양로원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2000년대 시와 박물관청, 환경부의 오랜 서류 싸움 끝에 백지화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중세 벽화처럼 그려놓았는데 작가의 풍부한 유머감각이 느껴진다.

작가는 60년대를 이렇게 표현한다.

그것은 앞만, 단지 앞만 보는 세상이다.
학교와 교육, 도시, 스웨덴(*선진국), 우주를.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은, 절대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끊이지 않는, 공짜 기름을 채굴하는 세상이다.
플라스틱에 미래가 있고,
자유로운 인간은 말 대신 자동차를 타는 세상.
효율과 개선이 주도하는 세상이다.
일, 집, 여가, 쇼핑, 도로, 건설
효율적으로! 빠르게!
더 많은 것이 요구된다.
더 많은 1인당 공간이 필요하다.
옥내 수도, 샤워, 온수가 필요하다.
합성섬유로 만든 옷들이 가득 찬 옷장,
중앙난방,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물건을 모은다.
이런 경향은 새집을 지을 때도 드러난다.
집엔 항상 수납공간에 많아야 한다.
붙박이장, 수납장, 옷방, 창고 등.
이런 저장공간에 물건들을 숨긴다.
보기 싫다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고 하니, 잡동사니를 사고, 숨기고, 잊어버리고, 새로운 걸 또 산다.
옛날 집엔 저장공간이 훨씬 적었고,
사람들이 물건을 아주 드물게 샀다.
물건을 아끼고, 보이는 데 놓고,
망가지면 고쳐 썼다. 지금이랑은 달랐다.
집은 우리가 오기 전에도 여기 있었고 우리가 떠난 뒤에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앞선 모든 사람들처럼 여기 잠시 머물 뿐이다.


티투 타칼로 Tiitu Takalo

1976년 생인 티투 타칼로는 Sarjakuva Finlandia (2015), Puupäähattu (2017), 프랑스 Grand Prix Artémisia (2021) 등 국내외의 만화상을 휩쓸며 공감할 수 있는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온 인물이다. 2018년 뇌출혈 발병 이후 자신의 투병기를 그린 『메멘토 모리』(2020)를 발표했고, 2021년 핀란드 예술진흥센터로부터 State Prize for Comic Art를 받았다.

http://www.tiitutakalo.net/english.htm


Bibliography

"Minä, Mikko ja Annikki" (2014) / Suuri kurpitsa / Tiitu Takalo

"Me, Mikko, and Annikki: A Community Love Story in a Finnish City" (2019) / North Atlantic Books / Tiitu Takalo


Others

https://www.annikinkatu.net/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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