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 해외 영유아 건강검진 제도 운영현황
핀란드를 비롯한 북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복지제도 및 유연근무제도 등으로 인해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나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일례로 핀란드의 사회보험기관 KELA에서 출산 전에 제공하는 베이비 박스(äitiyspakkaus, 사진 참조)의 경우 신생아부터 돌 무렵까지 입힐 옷(배냇저고리, 점퍼슈트, 장갑, 양말, 스타킹 등)과 유용한 도구들(손톱가위, 칫솔, 머리빗, 체온계, 애착인형과 그림책, 생리대, 로션, 콘돔)이 포함되어 있어 처음 부모가 된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을 사러 다니는 시간과 노력을 덜어 주고 있습니다. 이 베이비 박스는 당분간 커버를 씌우거나 요를 깔면 훌륭한 어린이 침대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해당 제도는 캐나다, 스코틀랜드, 호주 등 서구 뿐 아니라 일본, 이란, 인도, 남아공 등 타문화권 국가들과 개도국에도 지역의 특성을 살려 적용되어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관련기사 : 송민섭, 핀란드 '베이비박스' 전세계 양육 지원 모델로 각광, 세계일보, 2016.4.4)
제가 생각하는 핀란드가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인 또다른 이유는 핀란드식 영유아 건강검진제도(Neuvola)입니다. 핀란드식 영유아 건강검진제도는 어떤 것일까요? 그 특징은 임산부 때부터 취학연령 전까지 맺어지는 장기적인 관계, 아이의 신체적 건강 뿐 아니라 가족의 생활습관과 정신건강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총체적 접근법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핀란드 최초의 영유아 건강검진제도는 1920년대에 도입되었으며, 1949년까지는 임산부(산전후) 및 영유아 건강검진제도가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2000년대에는 영유아 뿐 아니라 (부모, 양육자 등) 가족 내 다른 구성원들의 복지에 대해서도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핀란드 언론사 Yle는 2017년 12월 12일 '일본 의사결정권자들은 네우볼라에서 부모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핀란드의 네우볼라가 일본 전역에 전파된다'(Japanilaiset päättäjät ällistyivät, kun näkivät äidin ja isän puhuvan neuvolassa – Suomen neuvola leviää koko Japaniin)라는 제목으로 일본이 핀란드의 영유아 건강검진제도를 도입할 예정임을 보도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일본은 2016년 각 지역에서 영유아 건강검진제도를 시험해 보았고 2020년까지는 일본 전역의 모든 어머니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가족(건강)센터를 운영할 예정입니다.
일본은 다른 국가들보다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고, 2013년 부터는 출산율 증진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본의 영유아 건강검진제도 도입은 이런 흐름의 일환입니다. 일본 가족센터의 설립 목적은 임산부와 영유아 관련 정기검진, 특수진료, 산파, 사회복지서비스 등을 한데 어우르는 데 있다고 합니다.
일본은 2000년대 초반에 이미 핀란드의 영유아 건강검진제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부모의 마약 복용 여부, 알콜중독 및 우울증 여부 등을 점검하기 위한 예비부모를 대상으로 한 문진표가 일본어로 번역되면서 주목을 받은 것입니다. 최근에는 핀란드의 영유아 건강검진제도를 알고자 일본의 의사결정권자들(고위공무원들)과 연구자들 등이 앞다투어 핀란드를 찾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우선 핀란드의 영유아 건강검진(산전후검진 포함)이 거의 모든 영유아와 임산부를 대상으로 하는 점을 높이 샀습니다. 기존 일본 어린이들에게는 포괄적이고 규칙적인 건강검진이 제공되지 않았으며, 공공의료제공도 지역별로 격차가 있었습니다. 영유아기에는 통상 3-4회의 단체검진이 제공되었는데, 이는 핀란드가 모든 영유아 가정에 최소 15회의 검진을 제공하는 것과 비교하면 크게 뒤떨어집니다. 또한 일본에서는 영유아의 건강검진 참여여부를 추적하지 않으며, 검진은 영유아의 신체발달 면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일본의 관점에서 핀란드 영유아 건강검진제도의 또하나의 장점은 주치의와 비슷한 개념으로 동일한 간호사(terveyshoitaja, 혹은 영유아 보건에 특화된 산파katilö 교육과정 이수자)와 임산부 때부터 임산부 정기검진으로부터 아이가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6세, preschool 입학연령) 맺어지는 장기적인 관계입니다. 일본 가정에는 부모가 필요 시에 마음 편하게 접촉할 수 있는 주치간호사가 없으며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지 않아 적기에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핀란드를 방문한 여러 명의 지자체장들이 영유아 건강검진제도를 참관했을 때, 그들은 핀란드의 가족과 공공보건인력 간의 대화 문화에 대해 많은 이들이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부모의 실업, 중독 등 입으로 꺼내기 어려운 화제에 대해서도 영유아 건강검진 실시자와 부모들이 신뢰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입니다. 핀란드의 평등한 의사소통 방식에 비해 일본의 진료 문화는 권위적이고 의사 위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단체 검진이라면 민감한 소재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영유아 건강검진센터를 통한 정기적인 면담은 가족의 공공보건에 대한 신뢰를 증대시키고, 발생 가능한 문제를 초기에 예측하고 발견하게 해줍니다. 우리가 오래 알고 정기적으로 만나 온 사람이라면 작은 변화도 쉽게 눈치챌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체벌, 가정폭력, 학대 등의 문제는 외부 지원이나 관찰자가 없을 경우 더욱 악화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핀란드와 일본의 영아(3-5개월)를 둔 엄마들의 비교연구에 따르면 핀란드 엄마들은 더 오래 자고 더 잘 지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본 엄마들은 대개 인터넷에서 스스로 육아 정보를 찾아보는 반면에 핀란드 엄마들은 영유아 건강검진센터로부터 지식과 정서적 지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공공의료정책의 핵심이 치료보단 예방의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볼 때 핀란드 영유아 건강검진센터 제도는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예방에도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도 핀란드의 영유아 건강검진센터 같은 제도가 도입될 수 있을까요? 동 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문화적 차이 및 인구 구조의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와 비슷한 문화권인 일본의 경우 출산 직후 산모와 아이는 조부모의 집에 가는 외에는 외출을 삼가하고 집에 머물며, 아버지들이 핀란드의 아버지들처럼 자녀의 일상에 많이 참여하지도 않습니다. 일본은 보통 근무시간이 길고 낮에는 말 그대로 아이들을 보지 못하니까요. 요즘은 일본에서도 평등한 가족모델을 가르치려 애쓰고 있다고 합니다.
상기 기사에서도 일본은 1억 2천만이 넘는 인구가 있고, 따라서 핀란드 같은 영유아 건강검진제도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유아의 발달과 가족 심리에 초점을 맞춘 적절한 과정 개발을 통한 충분한 교육과 숙련된 인력 확보도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핀란드와 같은 영유아 건강검진제도의 도입을 위해서는 일본의 경우처럼 많은 연구와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적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 동 매거진은 특정 직업군을 비난하거나 특정 이익집단의 이해관계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제 자신이나 가까운 직계가족 중에는 의사나 간호사, 한의사가 없습니다. 다음 세대를 보다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방안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고자 미취학 아동의 양육자 입장에서 쓰는 글입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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