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는 출생신고를 부모가 하지 않는다

Chapter 3. 해외 영유아 건강검진 제도 운영현황

by Victoria

이제 출생신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2015년 우리나라에서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국내 병의원의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가 의료계의 극심한 반대에 직면한 일이 있습니다. (부좌현 의원 외,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2015.8.13.) 상기 발의안에 따르면 미국ㆍ영국ㆍ캐나다ㆍ독일 등에서는 아동의 부모 외에 별도로 의료기관에도 출생통지의무를 부여하여 출생신고의 누락이나 거짓 출생신고를 사전에 예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국내 출생신고는 부모가 병원 혹은 인우보증인이 작성한 출생증명서를 첨부해 1개월 내에 출생지에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출생신고가 지연되거나 아예 누락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2-3세대 전에는 전쟁 및 질병으로 인한 높은 영유아 사망률 등으로 출생신고가 길게는 1-2년까지도 지연되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에 그런 일이 있다면 새로 태어난 아이의 작명에 고심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혼외자이거나 부모가 양육 의사가 없어 출생신고를 고의적으로 누락하는 경우 등일 것입니다. 고의적 누락의 경우 출생 사실 자체가 알려지지 않아 정확한 수치를 집계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영유아 살해, 불법 입양 혹은 유기 등 범죄로 이어져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출생신고서는 부모의 학력, 직업, 모친의 출산이력까지 통계적인 목적을 위해 기록하게 되어 있어 다분히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기도 합니다.


핀란드의 경우는 어떨까요? 핀란드의 출생신고에서 특징적인 점은 아직 이름도 지어지지 않은 아이가 병원에서 출생 후 퇴원하기도 전에 출생 관련 기본정보 기록과 주민번호 부여가 이루어진다는 점입니다. 핀란드의 출생증명서에 기록되는 정보에는 아이 이름과 부친에 대한 내용은 없으며, 모친의 정보(주민번호, 이름, 병원 명, 주소지), 출생일시, 신생아의 주민번호, 성별, 체중, 신장만이 기록됩니다.

또한 핀란드에서 출생신고의 주체는 아이의 부모가 아니라 보건인력(산파, 의사 등)으로, 이는 병원에서 태어나거나, 병원 이외의 집 혹은 다른 장소에서 보건인력의 도움으로 태어나거나, 아예 보건인력의 도움 없이 태어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우 부모가 다니던 산전후 검진센터나 보건인력에게 신고하여 그들을 통해 출생신고를 하게 됩니다.


그럼 핀란드 아이들에게 이름은 언제 주어지는 것일까요? 핀란드에서도 신생아 작명에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 이름은 출생 후 최대 2개월 이내에 인구등록센터(Population Register Centre, Maistraatti)에 아이의 이름을 신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의료진에 의해 태어난 것은 알려졌는데 이름이 주어지지 않는 아이가 있다면, 그 행방에 대해 정부 당국이 추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입니다. 출생자녀의 부모는 우편으로 배달된 출생신고지와 안내서를 참조하여 인구등록센터에 제출하는데, 출생신고지의 내용은 신생아의 주민번호, 이름, 주소, 보호자의 서명, 전화번호, 이메일 정도로 우리나라에 비해 매우 간소합니다. 또한 사회보장보험(Kela)과 인구등록센터 데이터베이스가 연계되어 있어 별도로 신청하지 않아도 보험카드가 집으로 배송됩니다.


핀란드식 출생신고 방식이 그렇지 않아도 바쁜 의료진의 행정부담과 비용을 늘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안정적이고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이런 제도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복지제도가, 사회적 안전망이, 높은 곳에서 끝도 없는 수렁으로 떨어지는 아이들 아래에 놓인 얇은 그물망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한겹으로는 떨어지는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더라도, 여러 겹이 층층이 쌓이면 어쩌면 그 아이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