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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ia Dec 12. 2018

토끼 인형을 기우며

오래된 애착인형과 기억

 힝, 또 떨어졌어.

제 방에서 놀던 아이가 울상이 되어 토끼 인형을 들고 거실로 나온다. 너무 오래되어 천에 얼룩이 지고 양 겨드랑이 실밥이 터진 토끼인형을 또 고쳐달라는 말이다.

 이제 못 고쳐. 지난번에도 기웠는데 또 떨어졌잖아.

거실에서 신문을 보던 남편에게 은근히 내 편을 들어달라고 눈짓을 한다. 일요일 저녁에 아이의 낡은 인형을 고치는 것 외에도 엄마가 할 일은 많다. 유치원에 가져갈 옷가지도 챙겨야지, 부엌의 그릇들과 건조대의 빨래도 정리해야지, 주말 내내 사방에 벌여 놓은 아이 장난감도 치워야지.

 그래, 엄마 말이 맞아. 천이 너무 낡았어.

아이는 아빠 말을 듣고도 입을 비죽거린다. 월요일은 유치원에 장난감을 가져오는 날인데, 바로 이 토끼 인형을 가지고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고쳐 줘. Plea~se!

자기를 예뻐하는 엄마가 조르면 안 들어줄 리 없다는 걸 아는, 못 말리는 아이의 고집이다. 영어학원에 다니면서도 영어 한 마디 쓰는 법이 없더니 그래도 please가 애걸복걸할 때 쓰는 표현이란 건 익힌 모양이다.

 알았어, 그럼 오늘은 너무 늦었고 내일 고쳐 줄게.

못 이기는 척 하루 시간을 벌어 본다. 어차피 버릴 수는 없는 인형이고, 더 이상 기워서는 고칠 수도 없지만 방법을 찾아 봐야겠다.


 토끼 인형은 사실 아이의 증조할머니, 그러니까 남편의 할머니가 주무실 때 가지고 계시던 인형이다. 남편의 조부모님은 우리가 사는 투르쿠에서 차로 8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살고 계셨다. 마을에 새로운 얼굴이 보이면 누구의 손자손녀, 혹은 조카인가를 알아 맞출 정도로 작은 동네라고 했다.


 나는 그 동네에 여태까지 겨우 두 번 가 보았다. 첫 번째는 아이를 가져 배가 불룩하던 여름, 둘째를 임신 중이던 시누이 가족과 함께였다. 젊을 때 전기 기술자다는 남편의 할아버지는 여든이 넘으셨지만 선글라스를 끼고 운전도 하시고, 아이들과도 잘 놀아 주셨다. 시조부모님 댁에 머물던 며칠 동안 식사를 하고 돌아서면 후식을 권하시고 후식을 먹고 나면 또 식사 때가 돌아왔다. 너무 잘 먹어서 두 임산부의 배가 더 나올 지경이었다. 아이를 낳고서는 한국으로, 러시아로 이곳저곳 옮겨가며 바쁘게 사느라 먼 길을 다시 갈 여유를 내지 못했다.


 두 번째로 갔을 때는 시할아버님의 부고를 받고서였다. 몇 달 전에 그렇게 정정하시던 분이 어느 날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고, 언제 한 번 가봐야지 싶다가도 막상 험난한 여정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투르쿠에서 출발한 시누이 네와 러시아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한 우리 가족이 비슷한 시간에 도착했다. 그나마 마을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어 고향에 살고 있는 시삼촌이 우리를 픽업하러 역까지 나오셨다. 예전에는 시조부모님 댁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혼자 계신 시할머님댁 대신 시숙부님 댁에서 잤다. 루터교 목사님이 주관하는 전형적인 핀란드식 장례식이었다. 나는 교회 안이 춥게 느껴져서 장례식 내내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예배와 비슷한 본식이 끝나고서는 모두들 옆 건물로 옮겨 차를 마시며 고인에 대한 기억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거의 매년 아이들을 데리고 할머님 댁에 머물렀던 시누이의 남편이 시할아버님이야기를 했다. 말수가 적으신 자그마한 몸집의 시할머님은 관이 마을 묘지에 묻힌 후에야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셨다. 아이들은 철없이 오래된 비석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장례식 다음날 다시 시숙부님 차를 타고, 기차로 갈아타러 먼 길을 떠나는 우리에게 시할머님이 무언가 주고 싶으셨던 모양이다. 아이가 태어나던 다음 해에도 주물로 된 곰인형 모양의 예쁜 저금통을 보내셨던 분이다. 시할머님은 아이와 비슷한 나이의 시누이네 아이에게 주려고 지난번 방문했을 때 가늠한 수치로 손수 뜨개질해서 드레스를 만들고 계셨는데, 우리 아이도 덩치가 비슷한지 물으셨다.

 작별인사를 드리고 나오려는데 아이가 시할머님 방에서 토끼 인형을 발견하고는 놓으려고 하질 않았다. 시할머님이 주무실 때 안고 자는 인형(Unikaveri)이라고 해도 울음보를 터트렸다. 지금처럼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도 아니라 어떻게 손에서 빼낼까 난처해하고 있는데 시할머님께서 가지고 가라고 하셨다. 아마 멀리 사는 우리가 또 언제 아이를 데리고 올까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 이 토끼가 그렇게 사연이 있는 인형이었다. 아이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토끼 인형을 보면 나는 시할머님과 시할아버님 생각이 동시에 난다. 친척 분께 전해 듣기로는 시할머님은 요즘 들어 기억을 많이 잃으셨다고 한다. 그것이 노환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인지, 의학적 치료를 필요로 하는 질환인지는 모르겠다. 우리가 그곳을 다시 찾게 된다면 시할머님은 우리를 기억하실까?


 작년에 친정어머니가 다녀가시며 가져다 주신 자투리 천가방을 꺼낸다. 천이 다 해어진 인형의 팔을 고치는 대신 옷을 만들어 입히기로 했다. 색이 고운 분홍색 한복 천이 이런 용도에는 제격이다. 참을성 없는 엄마가 엉성하게 만든 옷을 입은 토끼 인형을 아이는 좋다고 유치원에 가져갔다. 집에서 가져온 장난감 갖고 노는 시간이 아니라 아니라 매일 낮잠 시간에 안고 자기 위해서. 아이가 시할머님의 바느질 솜씨처럼 정갈한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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