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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ia Jan 07. 2021

변하는 것들, 변하지 않는 것들 1

투르쿠 중앙 우체국 업무 이관에 관한 소회

남편의 고향인 핀란드의 중소도시 투르쿠에 이사 온 지 4년이 다 되어간다. 초등학생인 아이가 태어난 2012년에도 이곳에서 일 년 정도 살았으니 이제는 투르쿠가 내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보낸 대구나 대학을 다니고 직장생활을 했던 서울만큼이나 익숙한 곳이 되었다.


크리스마스를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작년 12월의 어느 날, 우편으로 투르쿠 중앙 우체국 업무 이관 안내서가 왔다. 한동안 쇼핑몰과 슈퍼마켓 체인점들,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 단지 등에 비밀번호가 달린 우편함(스마트 포스트)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는데, 이제는 중앙 우체국이 문을 닫고 우편물 접수 및 보관, 전달 기능도 인근 슈퍼마켓 체인점으로 이관한다는 것이었다. 스마트 포스트의 활성화는 비단 투르쿠에서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헬싱키 시내에 있던 중앙 우체국(Postitalo)도 작년 여름, 82년 만에 보험사에 건물을 내어주고 스마트 포스트만 남겨두었다고 한다.


핀란드에서, 특히 상업적 인프라가 다양하지 않은 중소 도시에서 우체국은 편지를 보내고 받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다. 시내의 모든 신발 가게를 뒤져도 아이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과 사이즈를 찾을 수 없다면, 길에서 자기랑 같은 H&M 셔츠나 바지를 입은 사람을 마주치고 싶지 않다면 인터넷 쇼핑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좀 두툼한 서류나 일간지가 겨우 통과할 정도 높이의 아파트의 길쭉한 편지 투입구나 주택의 우편함에 들어갈 수 없는 소포는 '도착 통지서' 한 장으로 주민에게 소포의 도착을 알린다. (요즘은 우체국 애플리케이션의 알림이 도착 통지서보다 빠르다.) 그러면 도착 통지서를 받은 사람은 도착 통지서와 신분증을 들고 우체국에 가서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려 소포를 찾는 것이다. 한국에서 아무리 집까지 배달해 달라고 EMS를 보내더라도 거의 예외 없이 우체국으로 찾으러 가게 된다.

우편물을 보낼 때도 요즘은 미리 인터넷으로 라벨을 출력해서 우체통이나 우체국 접수함에 넣는 방법도 있지만, 나는 우체국 창구를 방문해 접수하는 편을 선호했다. 우편물 무게와 크기를 재어 규격에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도 번거롭고, 집에 뒹구는 상자가 표준규격 인지도 정확하지 않아서 우체국에 들러 보낼 물건의 크기에 맞는 상자를 사서 요금을 확인해 보내는 것이 마음이 편한 것이었다.


중앙 우체국 창구에는 굉장히 연로하신 백발 할머니 한 분과 친절한 중년의 아주머니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듯한 20대 젊은이들이 있다. 처음 오렌지색 우체국 티셔츠를 입으신 할머니를 뵈었을 때는 은퇴하시고도 남았을 연세인데 어떻게 아직 일을 하고 계실까 의아했는데, 이 분이 당신보다 반 세기쯤 어려 보이는 젊은이들에게 (노령으로 인해) 떨리는 목소리로 이것저것 가르쳐 주시는 모습은 무언가 직업인의 자세로서 주는 울림이 있었다.


계절이 지날 때마다 젊은 사람들의 얼굴은 자주 바뀌었지만, 할머니와 중년 아주머니 두어 분은 자리를 지키셨다. 이제 그분들을 슈퍼마켓 계산대 옆에서 뵙게 될는지, 다른 곳으로 가셨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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