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투르쿠를 처음 방문한 것은 역대급으로 더웠다는 2003년 여름, 고등학교 친구와 유럽 배낭여행을 하면서였다. 우리는 일반적인 배낭여행 루트와는 달리 북유럽과 동유럽만 방문하는 일정을 짰는데, 투르쿠는 헬싱키에서 버스를 타고 와서 스톡홀름으로 향하는 실자라인 유람선을 타기 위해 잠시 지나치는 항구도시였다. 이곳의 패스트푸드점을 들렀다가 노르웨이에서 산 그림책을 두고 나오는 바람에 가던 길을 다시 돌아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낮은 건물들로 둘러싸인 마켓 스퀘어에는 햇빛이 쨍쨍했던 모습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여행자가 아니라 생활의 때가 묻은 거주자로서 사계절을 몇 번이나 보냈다. 여름철이면 이동식 트럭들이 딸기와 완두콩을 팔고, 지금은 투르쿠에서 사라진(그러나 언제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는!) 트램 차량처럼 생긴 아이스크림 키오스크가 광장의 한편에서 예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던 이곳은 광장의 사방에 위치한 버스 정류장들로 인해 서민들에게는 더욱더 친근한 곳이었다.
2017년 8월 18일, 이 광장에서 국내에도"투르쿠 흉기 테러"라고 여러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건이 발생했다. 양손에 식칼을 든 모로코 난민이 행인 십여 명을 다치게 했고, 희생자 중 두 명의 여성이 사망했다.광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30대 여성의 남편은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 오지 않는 아내를 기다렸다. 광장 주변에서 일하던 60대 여성의 딸은 병원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확인한 후에도 몇 번이고 현장을 방문했다고 한다.예기치 못한 죽음이 그토록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익숙한 공간이 두렵게 느껴진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동안 광장 모퉁이에는 촛불과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품들이 놓여 있었다.
투르쿠 시의회는 이미 몇 년 전부터 교통의 중심지인 마켓 스퀘어에 지하 주차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2017년 11월의 마지막 날 건축허가가 났고, 이듬해 광장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다. 여기저기 나무판으로 만든 임시 구조물들이 세워졌고, 광장의 사방에 늘어서 있던 버스 정류장들은 주변의 다른 길로 옮겨갔다. 자연스레 중심가에서 직진을 할 수 없게 된 버스 노선도 구불구불 복잡해졌다. 한동안은 땅 속에서 1600년대의 촛대, 1700년대의 프랑스 동전 등이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자동차 600여 대가 들어갈 수 있는 지하 주차장 Toriparkki는 2021년 1월 1일 문을 열었다. 여전히 광장의 일부와 인근 도로에 트레일러들이 서있긴 하지만, 소형 상점들을 비롯한 지상의 광장은 2022년 경에야 새로운 모습을 찾게 된다고 한다. 새로운 광장이 10여 년 전 배낭여행객이던 나를 첫눈에 사로잡았던 마켓 스퀘어의 모습과 너무 다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