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쯤 전에 핀란드에서 우리가 처음 살던 집은 투르쿠 시내 중심가에서 두어 블록 떨어진 곳이었다. 의료보험 카드, 양육수당 등 각종 사회보험 관련 민원을 신청할 수 있는 사회보험청(KELA), 여권과 신분증을 신청할 수 있는 경찰서, 실업급여 신청이나 구직활동을 도와주는 고용경제사무소(TE toimisto), 우체국 등이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있어 앞으로의 생활이 편리할 것 같았다. 당시 해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고향인 투르쿠에 다시 자리 잡으려고 했던 남편의 구직활동은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어린 딸아이까지 세 가족이 몇 년을 다시 타지 생활을 하다 돌아와 보니 같은 동네인데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우선 외국인 거주허가(Resident Permit) 관련, 투르쿠 시내의 경찰서가 아니라 인근 도시인 라이시오 경찰서 옆에 있는 이민서비스 지점에 신청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시내버스가 다니는 곳이고, 차로 이동하면 겨우 10분 거리지만 핀란드 사람들도 여권이나 신분증을 신청하러 드나드는 경찰서와는 달리 외국인들만 출입하는 이민서비스 지점을 찾을 때면 내가 이방인임을 확실히 느끼곤 한다. 이렇게 자국인과 이민자 서비스를 분리하는 것이 보안이나 효율성, 직원의 전문성 함양 측면에서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약간의 소외감도 든다.
별도의 건물에 있던 투르쿠 고용경제사무소는 라이시오, 카리나, 파라이넨 등 인근 서비스를 통합하면서 아우라 강 건너편 투르쿠 정부청사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예전에 고용경제사무소 앞을 지날 때면 줄을 선 실업급여 및 구직서비스 신청 대기자들을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코로나의 여파인지 시청을 지날 때도 줄은 보지 못했다. 그리고 정부청사는 예전 사무소보다 주차가 수월한 편이라 잘된 것 같기도 하다.
표지 사진의 노란 기왓장이 붙은 것 같은 건물은 사회보험청(KELA)이다. 이 겨자색 저층 건물은 지역 무가지에 "이곳은 어딜까요?"라는 퀴즈 문제로 등장하기도 할 정도로 특색 있는 건물이었다. 핀란드어로 노란색을 뜻하는 'keltainen'이라는 단어와의 연상작용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기도 했다. 어느 순간 KELA 민원은 마켓 스퀘어 근처나 스칸시 쇼핑몰의 Monitori라고 불리는 민원센터를 통해서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Monitori는 여행자와 노인을 대상으로 한 정보제공을 비롯해 기타 민원도 상담하는 곳이다. 하긴 대부분의 민원이 인터넷을 통해 신청 가능해지기도 했다.
2019년 초에 멋들어진 노란색 건물은 부동산 사업을 하는 민간기업의 소유가 되었고, 사회보험청은 현재 해당 건물을 임차해 쓰는 중이다. 2022년에 Kupittaa 지역에 투르쿠 시 소유의 8층짜리 비즈니스 건물이 완공되면 그중 4층을 사회보험청이 15년 기한으로 임대하여 쓸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번 글에 쓴 것처럼, 시내 우체국은 슈퍼마켓과 무인로커들로 그 역할이 이관되었다. 시대변화와 기술 발달로 대면 업무 비중이 줄게 된 관공서들은 최대한 몸집을 줄이고 다른 기관 혹은 기능과 통합하고, 현상 유지나 규모의 성장이 예측된다면 시 외곽으로 나가는 모양새다. 추억의 장소들이 사라져 가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사용자 편의성이나 사회적 비용 측면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