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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ia Feb 21. 2021

헬싱키의 사라져 가는 풍경을 사진에 담은 미스 브란데

서점 할인 서적 매대에서 오랜만에 내 스타일의 만화책을 발견했다. 2001년 핀란드 교육문화부로부터 예술상을 수상한 만화가 티모 먀켈랴가 그린  "미스 브란데"(

"Neiti Brander", Arktinen Banaani, 2018)는 헬싱키 시의 기억위원회의 요청으로 1907년부터 1913년까지 헬싱키의 사라져 가는 풍경과 사람들을 사진기에 담은 시그네 브란데(Signe Brander,1869-1942)에 관한 책이다.

도심화로 30년 간 인구가 3배로 늘어 10만을 넘어선 1900년대 초 헬싱키에선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나무로 만든 집들이 사라지면서 "유겐양식"이 불리는 아르누보 양식의 다층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너무 낮거나, 잘못된 곳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사라지기 시작한 나무집들, 거리를 누비는 남루한 차림의 소년들, 시대적 배경엔 반 세기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의 소설 "목로주점"의 주인공 제즈베르처럼 세탁일을 하던 가난한 사람들. 리고 37세에 새롭게 태어나는 도시와 사라져 가는 것들을 찍기 시작한 포토그래퍼 브란데.

헬싱키 시에서 발간하는 신문에 연재되었던 만화를 엮은 이 책에는 사라져 가는 장소들과 사람들에 대한 사진가의 애정이 담겨 있다.


세탁부의 삶을 궁금해하는 미스 브란데에게 마부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난한 사람들을 고된 육체노동을 한 후 밤마다 자잘한 동전들이 생존에 충분할지 세어 보곤 한다고. 그래서 죽음이 문 앞에 도착하면 그들은 오히려 안도한다고.

그러나 부자들은 죽기 전에 가진 돈을 다 쓰고 싶어도 그럴 수 없기에 피할 수 없는 죽음이 다가오면 오히려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난은 큰 축복이라는 마부의 말은 가난한 자의 정신승리처럼 느껴져 서글플 수도,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경계하는 인생의 진리를 담고 있는 말이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900장이 넘는 헬싱키의 옛 얼굴을 카메라에 담는 일이 끝나자 브란데는 약 한 세기 전인 1808-1809년에 러시아와 스웨덴이 핀란드를 놓고 격전을 벌였던 옛 전쟁터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1910년부터 20년 간은 핀란드 곳곳의 대저택들을 카메라에 담았는데, 그 결과물이 2천 점이 넘는다고 한다.


미술교육을 전공했지만 사진사가 되어 핀란드 역사와 사진사의 한 페이지를 써 내려간 여인 브란데. 이 같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란데의 노후는 비참했다. 1930년대에 그녀는 백내장으로 인해 시력을 거의 잃었고, 1940년대 초반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헬싱키에 폭격이 시작되자 입원했던 일반병원에서 정신병원 건물로 옮겨가야 했다. 수확량 부족과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굶주린 겨울"이라고도 불린 1942년 핀란드에서 식량부족이 최악에 달한 해로, 그녀는 그 해 굶주림으로 사망한 백여 명의 망자들 중 한 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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