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 + 홀리데이
많은 분들이 이미 워킹홀리데이에 관해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짧게 설명드리면, 워킹홀리데이는 협정 체결 국가 청년(대체로 만 18~30세)들에게 상대 국가에서 체류하면서 관광, 취업, 어학연수 등을 병행하며 현지의 문화와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외교부 산하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의 설명을 빌리자면 ‘넓은 세계에서 Working!, 기억에 남는 Holiday!'로 아주 짧지만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 취지에 맞게 1년간 즐겁게 여행할 것이고, 그 여행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번엔 제가 일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 해요.
집도 구했으니, 언제까지 동네 구경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초기 자금을 넉넉히 가지고 온 편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빨리 일을 구해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캐나다는 한국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뽑습니다. (물론 이건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직업군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아르바이트를 위한 이력서에도 사진을 꼭 붙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장 이력서를 내야 하는데 붙일 사진이 없어서 애먹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캐나다는 사진 붙이는 공간이 아예 없고, 자신의 이메일, 주소, 휴대전화 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기본적으로 적고, 그 아래에 학력이나 이력, 자신만의 강점 등을 쓰면 끝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보다 간단하다고 느껴질 만큼 단출 한 이력서가 완성이 되는 거죠.
하지만 문제는 이제 시작입니다. 캐나다에도 물론 일자리를 구하는 사이트가 있지만 그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구인 글만 바라보고 있으면 일자리 구하기가 100배는 더 어려워집니다. 직접 이력서를 들고나가서 매장을 돌아다니며 “나 좀 뽑아주세요!”라고 얘기하는 편이 훨씬 좋습니다.
길을 걷다 보면 매장 유리에 ‘Help wanted'나 'We're hiring!'이라고 써 붙인 곳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그런 매장에 들어가서 준비한 이력서를 내면 끝! 참 간단하죠? 하지만 저에겐 참 어려웠습니다. 일단 직접 이력서를 들고 매장에 들어가 본 경험 자체가 없었고, 처음 일자리를 구할 때만 하더라도 영어로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에 자신감이 많이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이 곳까지 와서 소심하게 문 앞만 서성거릴 수는 없었기에 정말 큰 맘먹고 첫 가게를 들어갔습니다.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요. ‘Rise & Grind’라는 이름의 카페였는데 턱수염이 멋있게 나있는 남자 사장님이셨어요. 당연히 제가 손님인 줄 아셨겠지만, 제 손엔 이력서와 한국에서 만들어온 명함이 들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수줍게 “지금 사람 구하시나요?”라고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순수한 미소와 함께 물어봤었죠. 돌아오는 대답은 “음.. 아직은 뽑지 않는데 일단 너 이력서 좀 볼 수 있을까?”였습니다. 저는 냉큼 이력서 한 장과 명함 한 장을 같이 드렸죠. 첫 반응은 상당했습니다. 제 명함을 보고는 아주 놀라면서 “오! 이런 걸 받은 건 처음이야!”라는 반응을 보였고 제가 지내는 집이 여기서 가깝다느니, 카페에서 일한 경력이 있어서 좋다느니. 와 같은 사람 설레게 하는 마법 같은 말들을 쏟아 내셨죠. 저는 그 자리에서 취업이 된 줄 알았습니다. 분위기가 너무 좋았거든요. 신나게 악수를 하고 가게를 나서면서 자신감이 붙은 저는 구인 글이 붙어 있지 않은 가게도 마구 문을 열어 이력서와 함께 명함을 뿌리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이틀 만에 열 곳이 넘는 카페와 레스토랑에 지원을 했고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나름 자신감도 있었기에 더 이상 이력서를 들고 돌아다니지 않았어요. 3월의 빅토리아는 생각보다 많이 춥기도 했고, 연락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 일이 지나도 그 어느 곳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제 손을 붙잡고 웃어주시던 사장님한테서도, 갑작스러운 면접으로 저에 대해 속속 캐물었던 사장님에게서도, 어머니와 같은 따뜻한 미소로 직접 나가는 문까지 열어주시던 사장님께서도 연락을 주시지 않았어요. 저는 당연히 좌절했고, 마음은 조급해져 갔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저는 초기 자금을 넉넉히 챙겨 온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빨리 일을 구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렇기에 마음은 다급해져 갔고 결국엔 이곳에 오기 전 스스로 다짐했던 것 까지 깰 뻔하기도 했어요.
사실 저는 두 가지를 다짐하고 캐나다에 왔어요. 첫째는 마음 급하다고 한국식당에 지원하지 말자, 둘째는 한국인 커뮤니티에 들어가지 말자였습니다. 한국식당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한국인들과 함께 지내는 게 나쁘다는 것도 절대 아닙니다. 그저 개인적으로 조금이라도 영어를 더 쓰는 환경에서 지내고 싶었기에 내린 결정이고, 다짐이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다짐이 깨질 위기였던 거죠.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질 않으니 한국식당 유리창에 한글로 적힌 ‘서버 구해요!’라는 문구가 제 눈을 떠나지 않았거든요. 정말 마음속으로 수십 번, 수백 번 고민했지만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처음부터 스스로의 다짐을 깨고 싶지는 않았기에 ‘다행히’ 문을 열고 들어가진 않았어요.
언젠가 연락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때, 인도 형님 Z가 다른 룸메이트를 소개해 주겠다며 멕시코계 캐내디언 J를 제 방 앞으로 데리고 왔어요. 저희 둘은 밝은 미소로 서로 인사하고 이런저런 가벼운 얘기들을 나눴는데 인도 형님이 갑자기 J에게 제가 일을 구하고 있다는 얘기를 하시면서 “네가 일하는 데도 사람 구한다 하지 않았어?”라고 하는 거예요. 자세히 보니 J는 방금 퇴근하고 온 것 같았고 티셔츠는 어느 매장 유니폼처럼 보이긴 했어요. 인도 형님의 말을 들은 J는 “맞아! 우리 매장에서 지금 사람 구해! 아 너 한국인이라고 했지? 우리 매니저도 한국인인데! 아마 싸우쓰 맞을 걸?”라는 얘기를 저에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너 어디서 일하는데?”라고 물었고 J는 “Johnny Rockets!”이라고 답했어요. ‘자니로켓...? 그거 한국에도 있는 식당인데..?’라는 생각과 동시에 ‘아 매니저가 한국사람이라고? 그럼 안가!’라는 스스로의 결론을 내려버렸죠. 하지만 선의로 저에게 제안해준 J의 면전에 대고 그대로 표현할 순 없었고, 얼떨결에 “기회 되면 매니저에게 나에 대해 얘기해줘!”라고 말해버렸어요. 그렇게 저와 J의 첫인사는 끝이 났고 며칠간의 구직에 지칠 대로 지친 저는 방으로 돌아와 내일은 다시 새로운 곳에 지원하러 돌아다녀야겠다고 다짐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발신인은 J. 내용은 ‘우리 매니저가 너 한번 보고 싶데, 오늘 이력서 들고 매장으로 와!’였습니다. 이럴 수가. 일이 커져버린 겁니다. 저는 그저 흘러가는 얘기로 한 건데 J는 매니저에게 다음날 바로 얘기를 해줬던 거죠.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마운 일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J의 호의를 그냥 무시할 수 없었기에 저는 이력서를 들고 매장으로 찾아갔고, 매니저와의 인사와 동시에 면접은 시작됐습니다.
사실 면접까지 하는 줄은 모르고 간 터라 아무런 준비가 돼있지 않았는데 매니저는 바로 그 자리에서 면접을 진행했고, 속사포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곳엔 왜 왔니, 비자 만료일이 언제니, 여행 계획은 있니, 한국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뭐니, 네가 생각하는 팀워크란 뭐니 등등. 30여분 면접이 진행됐는데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너무 긴장했었습니다. 알고 보니 매니저는 캐나다로 이민 온 지 30년이 넘은 교포였고, 한국에서 산 시간보다 이 곳에서 산 시간이 훨씬 긴 분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면접은 100% 영어로 진행되었고요.
결과는 그 자리에서 바로 나왔습니다. 저의 첫 직장이 결정된 거죠.
저의 자신감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한국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해 주시면서 앞으로 잘해보자고 악수를 청하셨습니다. 면접 후 카운터에서 일하던 J와 눈빛으로 ‘나 붙었어!’라고 말하고 나온 후 저는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어요. ‘정말 붙었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영어로 인터뷰를 한 제 자신이 너무 대견하더라고요. 기쁜 마음으로 바로 어머니와 할머니께 전화를 하고 난 후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집으로 걸어가던 발걸음은 아마 세상에서 제일 가벼운 발걸음이었을 겁니다.
첫 시작이 좋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