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각: 아는만큼 보인다!

El sabor de conocimiento

by 유동재

우리 속담에 "아는 것이 병이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는 것을 폄하하는 말이다. 그러나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재밌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은 늘 상대적이다. 두 가지 이상의 개념과 객체를 상호 비교하고 차이를 발견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차이를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은 알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아는 것은 구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후원한 사람은 15세기 스페인의 이사벨 (ISABEL) 여왕이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사람은 영국의 엘리자베스(ELIZABETH) 여왕이다. 스페인어로 이사벨은 영어로 엘리자베스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마치 스페인(SPAIN)과 에스파냐(ESPAñA)가 동일어라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사람에게 외국어는 오직 영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서점의 절반 이상이 수험서이고, 수험서 절반 이상이 영어 관련 책이다. 그래서 영어 이외에 알파벳을 쓰는 서양 외국어, 가령 스페인어, 불어, 독일어 철자나 발음은 다소 생경하다.


근대철학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경험주의르네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로 양분된다. 베이컨은 변호사이고, 데카르트는 수학자이다. 베이컨은 글자 밥을 먹었던 사람이고, 데카르트는 숫자 밥을 먹었던 사람이다. 그래서 베이컨은 서론, 본론 그리고 결론을 도출하는 귀납법을, 데카르트는 머리글에 결론을 두고, 문제원인을 유추하는 연역법을 도입한 것이다.


한편, 프란시스코 베이컨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법률고문이었다는 사실도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아는 것이 힘이다. (Knowledge is Power)라는 말은, 원래 하느님이 힘이다(God is Power)라는 종교적 절대 권력을 경험주의적 지식으로 대치해야 된다는 당위성을 부과한 말이다. 중세 종교시대가 저물고, 근대 과학시대가 열리는 시발점이었다.


60년대 끝자락에 태어나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언제나 학교 수업은 선생님이 판서하고, 학생들은 열심히 받아 적었다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기계적인 수업이었다. 당연히 질문과 토론 그리고 사고는 없었다. 가끔씩 모르는 것이 있어도, 수업 시간에 질문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수업이 방해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서 수업이란 교사가 학생에게 지식이나 기능을 가르쳐 줌 또는 그런 일라고 정의한다. 수업이란 단어 자체가 일방적인 의미를 갖는다. 소통과 대화는 없다. 주입식 교육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까지 약 20년간 계속된다. 일방통행이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는, 그래도 나름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우리는 온라인으로 거의 모두가 연결된 거대한 인터넷 지구촌에 살고 있다. 지리상 거리는 더 이상 소통과 교류에 장애가 되지 못한다. 온라인 세상은 현재 팬데믹 코로나 시대에 더욱더 진가를 발휘한다. 집합 제한 혹은 금지라는 전염병 확산 방지 대책으로 가능한 모든 분야에서 온라인 비대면이 대세다. 재택 수업, 재택근무 그리고 온라인 쇼핑과 편리한 택배 등을 통해서 우리는 직접적으로 비대면이 가능 분야를 체험한다.


주입식 교육은 이제 교실에서 퇴장할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상당수의 수업들이 주입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학교는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학원이 아니어야 한다. 질문을 있지만 정답은 없다는 명제 하에, 사고하고 토론하며 질문하는 창의적인 수업이 되어야 한다. 당연하다 그런데 왜 그렇지?라는 사고의 확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학교의 본령이다.


산업혁명 후, 상업자본주의 시대가 산업자본주의 시대로 발전하였다. 가내수공업이 공장식 기계공업으로 탈바꿈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생산공정이 분업화되고 전문화되어 대량생산이 가능하다고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역설했다. 인류는 한 번도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물질적 풍요를 맞이했다. 물건이 귀한 시대는 저물고, 흔한 시대가 도래했다. 흔하면 천대받는다. 이것은 상식이다. (희소성의 법칙)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농촌에서 도시로 몰려온 많은 노동자들은 천대받았다. 자본가들은 투입된 자본과 노동으로 최대 이윤을 추구하려고 갈수록 노동착취가 심해졌다. 부족한 노동력은 여성과 아동의 노동참여를 독려했다. 남녀노소 노동자는 평균 일일 17시간 이상의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산업혁명은 물질풍요는 가져왔지만, 그 반대급부로 노동을 인격으로 대하지 않고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취급하는 우를 범했다. 전제군주시대에 귀족과 농노로 구분되었던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자본가와 노동자로 재편되었다. 부의 편중은 갈수록 심해져, 자본가와 노동자의 빈부 격차는 극에 달했다.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변증법적 정반합으로 사회문제의 답을 찾으려 했다. 변증법적 유물사관의 칼 마르크스는 산업혁명 자본주의가 불러온 빈부격차가 사회적 불신과 반목을 일으켜, 사회계급투쟁일 일어날 것이라 주장했다. 소수 자본가들에 대해 다수의 노동자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그의 저서 자본론에서 역설했다. 이런 공산주의 사상이 현실화된 것이 1917년 레닌에 의해서 건국된 소비에트 연방이었다.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념대결이 시작되었다.


1929년 미국의 블랙 먼데이에서 시작된 세계 대공황은 전 세계를 강탈했다. 대량생산은 대량소비로 이어져야 경제가 순환한다. 대량 생산된 상품을 더 이상 소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의 뉴딜정책과 독일의 군비 사업 육성으로 대공황을 해결하려는 도모했다. 급기야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사적 최대 비극을 맞이했다


1945년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고, 세계는 이념 경쟁에 치달았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냉전이었다. 이런 냉전이 거의 50년이 지난 후, 공산주의가 붕괴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는 체제경쟁에서 자본주의가 승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산업혁명 이래를 근대시대 혹은 모더니즘(Mordernism)이라 한다. 대량생산시대이다. 표준화된 획일화가 필요하다. 심플해야 한 번에 대량 생산할 수 있다. 개인의 개성은 철저히 무시되고, 트렌드 혹은 유행이라는 미명 하에,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상품을 소비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각자의 취향과 다양한 치수에 맞는 맞춤 상품이 아니라, 정형화된 기성 상품이 범람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은 삶의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전락했다. 나 자신보다 남을 더 의식하고, 내가 없는 나의 삶을 살기에, 언제나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시달리게 되었다.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은 이제 물질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에 더 집착한다. 채울수록 공허하다. 이것이 허영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내 자신에 대해 과연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새삼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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