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만 잘 보는 망난이 교육은 당장 폐지해야 한다
시험만 잘보는 망난이 교육은 그만
말죽거리 잔혹사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내가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닐 때였다. 학교는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에 철저히 지배당했었고 힘센 놈들이 판치던 세상이었다. 시험성적을 기준으로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구분 지어 우등반과 열등반으로 갈라 쳐 수업이 진행되었다. 개인별 학력 수준에 맞춰진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될 놈만 밀어주고 안될 놈은 철저히 배제시키는 차별적 교육제도였다. 열등반에는 대부분 공부는 뒷전이고, 놀기만 좋아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학교와 선생님도 포기한 학생들은 불량생 취급을 받았으며, 학업과 영영 멀어졌었다. 행복은 성적순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래도 친구들끼리 우정은 있어, 함께 어울려 놀았었다. 우등생들과 열등생들은 잡담도 하고, 교실에서 장난을 치며 험하게 놀았었다. 그런데, 문제는 함께 장난을 쳤어도, 처벌은 성적에 따라 달랐다. 우등생은 몇 마디 꾸중으로 그쳤지만, 그렇지 않은 나머지들은 엄청난 체벌을 감내해야 했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던 시절이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선진국이 되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아직도 변하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되는 성적 위주 학교생활이다. 10대 학창시절은 늘 에너지가 넘쳐, 가만히 있기가 힘든 시기다. 학교에 가면, 자리에 앉아 수업 준비를 하기보다 반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잡담을 떨던지 장난을 치기 마련이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딸아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 학교에서 장난치다가 선생님께 혼났다. 그런데, 우리 반의 1등도 함께 장난쳤는데, 선생님이 그 아이한테는 별말 없고, 나머지 우리들만 혼내는 거야! 너무 불공평하지 않아? 딸아이의 불평을 들으면서, 내 고등학교 시절이 불현듯 머리 속에 떠올랐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야구부가 있어 운동장이 굉장히 컸다.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대학입시와 관련해 담임선생님과 학부모간 상담이 시행됐었다. 일반적으로 상담은 교무실에서 하루에 약 20여 명씩 10분 정도 시간을 정해 3,4일간 진행되었다. 그 당시 한 반의 학생수는 대략 70명이었다. 1학년 담임은 미술 선생님이었기에, 상담은 미술실에서 진행되었고 학부모당 약 1시간 정도 할당되었다. 학부모 상담은 단순히 상담시간이 아니었다. 촌지가 오가는 뇌물의 시간이었다. 일주일 상담이 끝나고, 촌지에 따른 교실 자리이동이 있었고, 담임선생의 편애가 노골적으로 시작되었다. 촌지를 주지 않았던 나는 1년 동안 정말 지옥같은 시간을 보냈었다. 지금도 그때의 불공정과 부조리를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지긋지긋했던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이 되었다. 2학년 담임은 군사훈련을 가르치던 군출신의 교련 선생님이었다. 1학년 담임과 달리, 2학년 담임은 공식적으로 촌지를 거부했었고, 우등생이나 열등생 모두에게 공평하게 대해 주셨다. 특별히 선생님에게 받은 기억은 없지만, 적어도 불평등한 대우는 받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자연스럽게 공부에 집중할 수 있어고, 성적도 많이 올랐었다.
학교에서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학생의 미래가 달라진다. 그래서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였다. 교육은 국가와 사회발전의 초석이기에 백 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선생님의 작은 관심과 공평한 대우는 배움을 정진하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입시위주 교육은 공부만 잘하면 만사가 용서될 수 있다는 개차반 인성의 미성숙 엘리트들을 양산해왔고, 이런 교육이 지속되는 동안 계속 양산될 것이다. 선함이 없는 지식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강조하는 미국의 고등학교 하버드, 필립스 에시터가 있기에, 미국의 발전과 세계의 공영에 이바지하는 수많은 하버드 인재배출이 가능한 것이다.
반면,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입시비리와 시험기술등 불법과 편법으로 포장된 가짜 지식인들과 오로지 개인의 영달만을 위해서 자신의 지식을 악용하는 자들의 선함이 결여된 지식의 횡포로 온갖 특혜를 누리는 일을 사회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사람을 살리는 소명보다 환자의 건강을 담보로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일부 몰지각한 의사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불편한 사건들이 판치는 법정 소송을 좌지우지하는 판검사와 변호사들, 사실을 왜곡하고 가짜 뉴스로 여론을 호도하고 조작하는 기레기 기자와 언론사주들, 한 해 수백 명이 죽어가는 산업현장에도 중대재해 처벌법을 반대하는 수많은 재벌들...
이 모든 원인은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게 용서된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공부가 중요하다지만, 결국 사람이 먼저다. 인성이 안된 지식보다 차라리 지식 없는 인성이 사회에 덜 해로울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개차반 인성의 망나니 지식인들이 양산되는 현 교육을 개선하고, 혼자가 아닌 우리를 위하며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착한 인성을 갖춘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현장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적어도 앞으로는 공부를 잘해도 혼날 수 있다. 혹은 공부만 잘하면 그뿐이다 라는 세상을 맞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