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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 단어자체로 온몸에 소름이 돋고 체기가 든 것마냥 속이 울렁거렸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문을 닫고 노트북으로 영화부터 켰다. 좋아하는 놀란 감독의 영화를 백색소음 삼아 공부했고 주말이나 공휴일엔 어디 안 나가고 방에 틀어박혀 영화만 봤다. 일기나 학교 과제들은 영화 얘기로 채웠다. 대학 입시가 다가왔다. 학교와 학과를 정해서 원서를 써야 하는데, 학교선생님 학원선생님 형제 친구 부모님 전 사회가 동원돼서 논의하는 그 과정을 부모님은 나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혼자서 곧잘 해온 나에게 믿음이 있으셨던 것 같다.


여느 때처럼 저녁을 먹고 엄마와 소소한 얘기를 나누다, 문득 어떤 충동이 들어 고백하듯 말했다. 엄마 저는 영화가 좋아요, 나 영화과로 가고싶어. 처음 말해봤다. 매일 영화를 보고 영화 시나리오를 뽑아서 읽고 영화 얘기를 하고 다녔지만 ‘좋아한다’는 응축된 문장으로 뱉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마 나는 부모님의 믿음을 깨고 싶었던 것 같다. 반항하지 않고, 방황하지 않고, 안전한 선택에 기대왔던 삶을 이제는 살지 않을 거에요. 철저히 실패하고 망가지겠습니다. 일종의 그런 암시를 주고 싶었던 거 같다.


결국 영화과는 진학하지 못했다. 부모님의 반대, 라는 확실한 인과관계가 있는 명분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영화과 시험을 붙고 마지막 남은 면접을 보러가던 길, 지하철을 잘못 탔다. 딱 그 이유였다. 여기에 조금의 인과관계를 보태자면 그곳은 내가 지원한 6개 대학 중 영화과를 쓴 유일한 대학이었다는 것, 또 나는 지하철이 없는 도시에서 자라 서울의 복잡한 지하철 체계가 익숙하지 않았다는 것, 동행한 엄마도 마찬가지였다는 것 정도. 뒤늦게 고사장을 찾았지만 이미 문은 굳게 닫혔고 영화 쪽 진로에 대한 환상도 꿈도 그때 함께 닫혔다.


속이 쓰려 2년간 영화를 보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내가 영화와 멀어진 이유를 두고 누구를 탓하지 않을 수 있어 좋다. 그 장난같은 운명 덕분이었다. 영화는 내게 우연처럼 왔고 우연처럼 다시 갔다. 그렇다면 그 이후는 그걸 필연으로 되돌려놓는 과정이어야 했다. 혼을 갈아서 영화동아리, 영화스터디 같은 것들을 했다. 촬영하면서 욕을 쏟고 조무래기 일을 하느라 밤을 샜다. 날씨 좋은 9월의 한강에서는 영화를 두고 토론하다 밤늦도록 싸우기도 했다. 모두 영화를 좋아하려 혹은 영화를 싫어하려 애쓴 낯선 시간들. 한마디로 나는 노력했다. 그토록 영화에 집착했던 과거가 무상할 정도로. 이것의 결론이 예전처럼 영화 쪽 진로는 아니었다. 난 그냥 그날 저녁 엄마한테 뱉은 고백처럼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생채기를 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를 이룬 모든 것이자 내가 발판삼아 디뎌온 것들, 공부도 착한 성격도 자본주의적 성공에 집착하는 신념도 한번쯤 다 무식하게 해체해버리고. 영화가 좋냐? 글쎄 그런 것 같은데 싫을 때도 있다. 이 대답을 위해 정말 먼 길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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