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파과>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조형과 부착으로 이루어진 콜라주였고 지금의 삶은 모든 어쩌다 보니의 총합과 그 변용이었다. "
<파과>에 나오는 구절이다. 주인공과 대치하는 투우라는 인물이 왜 킬러가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사실 설명하지 못한다는 게 맞는데, 위에서 역설하듯 삶은 '어쩌다보니'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투우에게 남은 악랄한 복수심도 그가 '킬러'의 삶을 택한 이유를 설명하진 못한다. 상관관계가 조금은 있겠지만, 전적인 원인과 결과 관계는 될 수 없다. 청부살해 피해자의 유족으로 사는 사람들 모두가 복수심 때문에 청부살해업자가 되는 건 아니니까. 정말 '어쩌다 보니' 흘러온 삶이 이랬다. 킬러가 됐다. 킬러가 돼서, 사람을 죽이고 다녔다.
삶은 어쩌다 보니의 총합과 변용이었다. 나는 모든 게 필연적일 것만 같고 뚜렷한 인과관계가 있을 것 같은 무의식적인 믿음이 있다. 그게 종교적 환상인 줄 알면서도 어느새 필연을 찾고 퍼즐조각을 짜맞추는 오류를 반복한다. 아마 내 삶과 자아에 거대한 의미부여를 하고 싶어서, 나는 하나의 신화를 만들고 싶었나보다. 우연의 것들로 이루어진 삶이라면 그 무상함을 견딜 수 없으니까. 호모데우스에 나온 말처럼 자유의지로 선택하고 책임진 삶이 아닌, 선택당한 삶을 이어가다 나의 ‘이야기하는 자아’가 거기에 걸맞는 해설을 입히는 식의 삶이었다.
가끔 그 이야기하는 자아가 너무 커,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하나의 이야기 선상에 놓으려 한다. 그 복잡하고 방대한 사건들을 자르고 다듬고 이리저리 덧대고 해서 예쁜 문장으로 아우르고 싶다. 이야기가 자기모순을 내재하고 있으면 다시 지우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거기서 또 자기모순을 발견하면 지우고 새로 쓰고를 반복해버린다. 끊임없이. 이 이야기하는 자아가 앞으로도 '어쩌다보니'로 이루어질 내 인생을 책임지겠지. 그게 허상이라도 우연에 압도당하지 않기 위해선 필요하니까.. 적어도 삶이 계속되는 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