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안에서

by 이비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시절까지, 나는‘모범생’이었다. 선생님들 눈에 띄는 아이였고, 부모님에게 자랑스러울만한 딸이었다. 초등학교 때 교실은 A, B, C~F까지 반이 나누어 있었고, 나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늘 A반이었다. 가장 똑똑한 아이들 틈에서 내가 있었다. 그건 내 자랑이기도 했고, 동시에 내 의무이기도 했다. 그 무렵, 나는 수학 올림피아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학교 대표로 나가게 된 건 명단에 내 이름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친구가 학교 대표로 선발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믿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그 친구의 엄마가 교장선생님께 선물을 드렸다는 뒷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마음 한가운데가 푹 꺼졌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안 돼”. 두려움이 먼저 밀려왔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배신감과 혼란. 교무실에 남아 혼자 공부를 하며 코피까지 흘렸다. 눈치채지 않기 위해, 아무 일 없던 아이처럼 담임 선생님 책상 앞에 앉았다. 나는 너무 어려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고, 내가 억울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결국 선생님이 엄마에게 연락했다.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학교로 왔다. 나는 그 미소가 무서웠다. "오늘은 어떻게 혼나게 될까?" 먼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엄마는 갑자기 날 안아주며 괜찮다고 말했다. 그렇게 따뜻한 줄은 몰랐다. 그날, 나는 엄마를 더 믿어보려 했다. 엄마가 하라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다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게 믿음과 사랑이라 믿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도 나는 여전히 ‘모범생’이었다. 1학년 때는 전교 2등을 했고, 성적표에는 늘 '성실함', '노력형' 같은 말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 칭찬들이, 나를 따뜻하게 하지는 못했다. 나는 한 번도 ‘즐거운 아이’였던 적이 없었다. 성실함은 내 본모습이 아니라, 내가 살아남기 위해 걸친 가면이었다.


나는 책임감으로 움직였고, 의무감으로 웃었다. 친구들과 노는 순간에도 마음속에서는 늘 훈련 시간을 계산했다. 몇 시까지 돌아가야 엄마가 화나지 않을까. 하루하루는 엄마의 기대를 채우는 퍼즐 같았다. 빈칸이 생기면 안 되는, 조심스럽고 예민한 퍼즐. 그리고 나는, 그 퍼즐 속에서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갔다.


경기 날이 다가오면

가슴이 뛰는 게 아니라,
배가 아팠다.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다른 선수들은 출발선에서 긴장을 풀기 위해

몸을 흔들고, 웃기도 했지만,

나는 단단히 굳은 마음으로 서 있었다.

엄마의 눈빛은 늘 내게 말했다.

“너라면 할 수 있잖아.”

“금메달, 따야지.”

엄마는 나를 믿었고, 나는 그 믿음이 무서웠다.

그 믿음을 배신하면 안 되니까.


나는 도망칠 곳 없는 믿음을 짊어진 채,
출발선에 섰다.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달릴 때마다
내 심장은 ‘기쁨’이 아니라 ‘불안’으로 뛰었다.
그런 내 모습을
아무도 몰랐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 감정이 무슨 이름인지 알지 못했다.

그 무게는 생각보다 컸다.


엄마는 폭력적이셨다. 언어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나는 내가 맞은 날들이 생하게 머릿속에 아직도 남아 있다. 남동생 둘이 있다. 둘이 싸우면 가장 먼저 혼나는 건 나였다. 렇게 작은 케이스부터, 아빠한테 실망하고 나에게 화풀이하는 것까지 나는 늘 맞았다. 엄마게 내 머리채를 잡혀 벽에 머리를 박힌 날도 있었고, 설거지를 늦게 했다는 이유로 매를 맞은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게 정상이라 여겼다. 그게 옳은 삶이라고 믿었다. 그래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어, 국 공부는 포기했고 선수의 길을 택했다. 스프린터부터, 허들까지, 그리고 배구로 종목을 갈아탔다. 처음엔 학교 성적도 좋았고, 메달도 땄다. 엄마의 기대에 조금은 부응했다는 기쁨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나는 점점 학교에서 멀어졌고 친구도 없어졌다. 대신 훈련, 경기, 또 훈련. 힘이 들었다. 나는 낯선 고요함에 갇혔다. 외로움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싶어졌다.


어느 날, 우연히 본 한국 드라마 '드림하이'의 OST가 마음에 끌렸다. 가사는 마치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글. 작고 단정한 그 글자가 콩나물처럼 귀엽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한국’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아주 조용하지만 간절한 갈망이었다. ‘나의 길’을 상상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


하지만 그건 내게 허락된 세계가 아니었다. 우리 집은 운동만 하는 집이었다. 국가대표였던 엄마 아빠부터 집안의 대화, 관심도, 칭찬도 모두 운동 안에서만 주어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운동 이야기로 하루가 시작되고 끝났다. 누가 몇 초를 줄였는지, 어떤 훈련 프로그램이 효과적인지, 다음 경기 일정이 언제인지. 나도 애초에 운동선수가 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몰래 한국어를 독학하기 시작했다. 작은 공책에 한글 자음을 써보고, 드라마 대사를 따라 말해보는 식이었다. 그러나 결국 들켰고, 혼났고, 맞았고, 울었다. 그 꿈은 잠시 접어야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새겨진 ‘한국’은 점점 더 진해져 갔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다시 조용히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게 비밀스럽게, 조심스럽게. 내가 선택한 유일한 것.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했던 공부. 그렇게 나만의 세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씨앗처럼, 바람이 스치면 흔들리는 그 여린 마음이, 내 진짜 목소리를 되찾게 해 줄 거란 희망이 생겼다.


나는 엄마가 만들어준 길 위를 걷고 있었다.

스스로의 선택이라 말할 수 없는 하루들이었고,

어쩌면 그게 더 편하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지금, 엄마의 그늘 속에 있다는 걸.

오래된 나무 아래에서 햇빛 한 줄기조차 허락받지 못한 채

자라고 있다는 걸.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늘은 때때로 안락하다.

차갑지만 익숙하다.

나를 보호해 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늘에 너무 오래 머물면,

스스로 빛을 내는 법을 잊게 된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누군가의 그늘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부모일 수도, 세상일 수도, 혹은 오래된 상처일 수도. 그늘은 나를 쉬게 해 주지만, 그 속에 오래 있으면 내 그림자마저 잃는다. 우리는 언젠가는 그 그늘에서 나와야 한다.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두렵더라도. 조용히,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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