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자가 없는 나의 길에서

by 이비댜

어릴 적 나는 매일 엄마의 그림자를 따라다녔다. 엄마는 나의 세계였고, 동시에 나를 가둔 울타리였다. 그 울타리는 언제나 높고, 반듯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둘러쳐진, 빠져나갈 틈 없는 투명한 울타리. 엄마가 웃으면 나도 웃었고, 엄마가 화를 내면 나도 울음을 삼켰다. 엄마가 가는 이라면 어디든, 엄마의 손이 닿는 일이면 무엇이든, 나도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엄마를 따르고 또 따랐다. 아빠보다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엄마의 기분이 내 하루의 날씨를 결정했다. 어떤 선택도, 어떤 질문도 나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엄마는 운동선수였다. 국가대표 육상선수였.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 빠르고, 승부욕이 강한 사람, 날카로운 시선과 흔들림 없는 말투. 그래서였을까. 아직 꿈이 뭔지도 모르던 어린 시절, 나는 자연스럽게 엄마를 따라 운동을 시작했다.


엄마는 자주 말하곤 했다.
“사는 건 원래 이겨야 의미가 있어.”
“실수는 한 번이면 돼. 두 번은 변명이고 게으름이야.”
“강해야 살아. 강한 사람이 이긴다고.”


엄마의 말은 늘 정확했다. 마치 트랙 위에서 수천 번 훈련한 스타트 자세처럼 빈틈이 없었고, 흔들림도 없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한편으로는, 그 단단함에 눌리는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그땐 아직, 그 눌림이 무언지 설명할 수조차 없던 나이였다. 그 이후로 내 삶은 아주 단순한 목표 안에 갇혔다. 빨라져야 했고, 이겨야 했고, 넘어지면 안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를 실망시켜선 안 됐다. 운동이 내 전부가 되기 전부터 나는 이미 엄마가 그려놓은 선 위를 조용히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즐겁기도 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 내 발로 기록을 세운다는 뿌듯함. 하지만 그 기분은 점점 책임이라는 이름의 무게로 바뀌었다.


낮에는 운동장, 밤에는 책상.

몸이 지쳐도 공부는 빼먹지 않아야 했다.

기록도 놓치지 말아야 했다.

학교 성적도 포기할 수 없었고,

금메달도 따야 했다.

몸이 아플 틈도,

마음이 흔들릴 여유도 없었다.

내 일상은 그렇게 반복되었다.

나는 매일 최선을 다했고,

늘 더 잘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더 잘할 수 있었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엄마는 내 코치였고, 동시에 내 심판이었다.

나는, 그 심판에게 인정받기 위해

내 모든 감정과 시간을 쏟아야 했다.


엄마와 나는 대화가 많지 않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운동 이야기를 할 땐 눈이 반짝이는 엄마였지만, 내가 “오늘 좀 힘들었어.”라고 말하려 하면 엄마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지금 약해지면, 진짜 약한 선수되는 거야.” 엄마는 그렇게 내 말을 자르곤 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마음을 숨기고 표현하지 않았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고, 힘들다고 느낄 새도 없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마음이 쑥 꺼지는 기분이 들 때면 나는 그 감정을 무시하고, 훈련 일지에 그날의 시간을 기록했다.


사춘기가 왔을 땐, 그 시절의 모든 소녀들처럼 나도 어딘가 불안정하고 예민해졌다. 몸이 자라고, 마음이 흔들리고, 자꾸만 질문이 생겨났다.
‘나는 누구지?’
‘이게 정말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게 뭘까?’


하지만 그 질문들은 곧장 내 안에서 길을 잃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질문을 꺼내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건 허용되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엄마는 내 앞에 ‘삶의 정답’을 펴두고 있었다. 잘 그려진 노선표처럼. 실패하지 않도록, 흔들리지 않도록 이미 방향이 정해진 인생. “너는 이걸 하면 돼. 그럼 다른 건 고민 안 해도 돼.” 엄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어쩐지 그 말을 들을수록 나는 내 안이 허전해졌다.

어느 날 밤,

불 꺼진 방 안에서

혼자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작게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그 말은 소리조차 되지 못한 채

입 안에서 가라앉았다.


엄마는 늘 완벽을 요구했다.

내 학교성적표, 내 말투, 내 앞길까지.

나는 사랑받기 위해 '좋은 딸'의 옷을 입었다.

그러나 그 옷은 나에게 점점 무거운 갑옷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잃은 채

나의 길을 찾기보단 살아내는 법부터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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